부안, 역사는 다시 반복될까?
군수로 다시 재기한 김종규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의 함수
익명의 부안주민
선거운동 시 용서를 구하던 김종규 당선자의 태도로 봐서는 그럴 일은 없다!
2003년, 핵폐기장 사태로 엄청 데였던 그에 있어서, 핵폐기장 문제는 후보단일화로 대항하며 군민적 반발을 일으킨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는 잇단 군수선거 방송토론회에서도 연거푸 바짝 엎드리며 군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2003년 부안사태 당시 핵폐기장 반대를 했고 그와 각을 세운 이병학 후보가 향후 고준위 핵폐기장 이야기를 꺼내자, “당신이나 유치하세요” 투로 조롱하고 나설 정도였다. 당선되고 나서도 반대편 진영의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허튼짓 안하겠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감히 다시 또 핵폐기장 유치 추진을 할 염두나 하겠는가.
그러나, 모를 일이다, 결단코, 단정할 수는 없다. 그의 ‘말빨’ 수사학은 신뢰성을 상실했다고 평가되는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03년 부안사태의 촉발도 결정적으로는 군수였던 그의 배신행위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컸다. 사람들은 그걸 쓰라리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먼저, 의구심이 들 것이다. 그렇게 반대하였으면서도 부안 군민들은 그를 왜 다시 군수로 컴백하게 해주었느냐다. 그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해소됨과 동시에 그와 각을 세운 군민들에겐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돌발했다. 그와 각을 세운 이병학 후보와의 표 차이는 600표였다. 부안군 총 유권자 수 49,599명에 투표수가 34,440명이었다. 그중 그의 득표수는 16,471명이었고, 이병학의 득표수는 15,871명이었다. 민도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2006년도에도 그와 이병학이 맞붙었다. 당시에는 유권자 수 52,694명에 투표수 37,866명이었고, 그의 득표수가 12,617표였던 반면에 이병학은 17,012표를 얻어 4,395표차로 이병학이 크게 앞서 군수선거에 당선되었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 600표 차이로 앞서 지지율 47.8%로 당선된 것이다. 그의 지지율은 선거직전 급상승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간에 그의 당선으로 귀결된 것은 그에 대한 신뢰가 회복한 측면이 있고, 결과적으로 그의 11년 전 행위가 용납된 의미로 표출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그의 승리로 귀결되었지만 그러나 미미한 표 차이는 그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구속하는 영향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과오를 저질러 부안군민의 적이 되는 허튼짓을 하지 않겠다는 김종규의 공언이 진실일 수 있다. 강원도 삼척시의 무소속 후보는 핵발전소 반대를 정책공약으로 내세워 시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과오에 대해 용서만 빌었지 탈핵 내지는 반핵으로 돌아서겠다고 공약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용서를 구하면서도 무엇에 대한 용서인지, 그 사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능동적으로 확고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주권재민적 정치가는 아니다. 새만금 해수유통 반대만 보더라도 국가플랜에 의존하여 장밋빛 청사진에 얹어가려는 사람이다. 또한 핵폐기장 국책사업은 그의 의지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국가권력의 마수가 은밀하게 그를 유혹할 것이며, 그 마수는 매우 치밀하게 진행될 수 있다. 설령 그 유혹에 넘어가더라도 임기 4년내 당장은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후를 노리지 않을까. 그가 군수에 당선되자 핵폐기장 유치 사태를 다시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있다. 그냥 기우이길 바란다.
발행일 : 201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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