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의 교훈을 살리지 못하는 일본, 되돌아가는 에너지정책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논쟁중인 에너지기본계획
중·장기적인 국가 에너지정책의 뼈대가 되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넣고 뜨거운 공방이 오가고 있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똑같은 이름인 에너지기본계획이 곧 확정된다. 지난 해 12월 13일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종합자원에너지조사회 기본정책분과회를 거쳐 초안이 공식 발표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핵발전소를 안정된 전기 공급원으로 삼아 코스트(비용) 삭감, 지구온난화 대응 등의 관점에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활용해 나가야 할 중요한 기초적 전력으로 명기하고 있다. 심지어 ‘안전성이 확인된 핵발전소는 재가동을 추진’할 것도 명기하고 있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전 민주당정권이 내걸었던 ‘핵발전소 제로 목표’ 등 탈핵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움직임이 완전히 부정된 셈이다.
일본의 에너지기본계획은 핵발전소 증설, 핵연료 사이클 추진 등을 목표로 2002년 제정한 에너지정책기본법에서 정해진 것으로, 2003년에 책정된 후 3년 주기로 개정되어 왔다. 태생이 그렇듯,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기 전 2010년 6월에 발표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보더라도 2030년까지 핵발전소 비율 50%로 확대, 신규 핵발전소를 14기 이상 증설하기로 하는 등 명확한 핵발전소 확대정책을 명시해 왔다.
후쿠시마사고 후 민주당, 2030년 핵발전소‘제로’ 선언…그러나 현 자민당 정부는 100% 역행
그러나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자, 그 다음 해인 2012년 9월 민주당정권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내용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혁신적 에너지환경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대에 핵발전소 가동 ‘제로’를 선언하고, 그러기 위해 ‘가동 40년을 넘은 핵발전소는 정지하고 신규 건설은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명기했다. 탈핵운동진영에서 볼 때는 ‘즉각 탈핵’을 선언한 것은 아니어서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집권당인 민주당으로써는 여러 이해관계를 고려한 속에서 ‘최대한의 탈핵 정책을 펼치기 위한 노력은 기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자민당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크게 다시 반전되었다. 특히 이번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은 100% 역행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겪고 나서 탈핵으로 향하는 시대적 흐름을 완전히 부정한 것이다.
이번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의 골자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핵발전소 의존도는 가능한 한 줄이겠다’는 말을 마치 장식처럼 붙여놓고서는, ‘핵발전소는 앞으로도 중요한 기저전원(기초적 전력)’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둘째로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안전성을 확인한 핵발전소는 재가동한다’며, 후쿠시마 사고 이후 멈춰있는 핵발전소를 적극적으로 재가동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문구를 내놓았다. 세 번째로 이미 파탄난 ‘핵연료 사이클 정책’을 앞으로도 착실히 추진한다는 것도 명시되었다. 네 번째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최종처분장 입지 선정은 정부가 과학적으로 적합성이 높은 지역을 제시해서 추진한다.
이렇듯 핵발전소 비율, 신규 핵발전소 증설에 대한 전망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 외에도 핵발전소 수출 추진을 언급하는 등 핵발전소 확대 정책을 전면적으로 앞세우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도 모자라 자민당 전력안정공급추진의원연맹은 지난 12월17일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에 대해 핵발전소 활용 확대에 대해 더욱더 적극적으로 명기할 것을 요구하는 제언을 발표했다. ‘가동 40년을 초과한 핵발전소 활용과 신규 증설 등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는 등 자민당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59% 국민이 반대…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아베 정권은 핵발전 확대정책
이번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에 있어 현 정권이 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2012년 ‘혁신적 에너지환경전략’이 책정될 당시 민주당 정권은 ‘퍼블릭코멘트(의견공모)’와 함께 ‘의견 청취회’, ‘토론형 여론조사’ 등 다양한 방식을 도입해 국민의 과반수가 ‘핵발전소 제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결과를 내고, 정책에 반영했다. 특히 ‘퍼블릭코멘트’에 약 8만 9000명의 국민이 참여하여, 그 중 90%가 핵발전소 제로를 선택한 것이 민주당이 핵발전소 제로 정책을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하는데 큰 힘이 된 바 있다.
그러나 현 아베 정권은 불과 1년 전 여론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번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려고 하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퍼블릭코멘트’ 공모를 이번 1월 6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실시할 뿐이다. 지난 6월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도 ‘경제발전을 위해 핵발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침의 여부’에 대해 국민의 59%가 여전히 반대를 표명하고 있지만, 아베 정권은 그러한 여론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 보인다.
애당초 이번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논의하는 경제산업성 산하 종합자원에너지조사회 기본정책분과회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구성원 중 명백히 탈핵을 주장하는 자는 15명 중 단 2명이다. 민주당 정권 하에서는 약 1/3의 탈핵파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자민당 아베 정권으로 바뀌면서 구성원을 핵발전소 추진파로 대폭 교체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후쿠시마와 같은 세계 최대 핵발전소 사고를 겪고나서도 당사국인 일본에서 에너지에 대한 국가정책에서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다. 현재, NPO법인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와 공익재단법인 자연에너지재단 등 각계에서 핵발전을 기저전원으로 삼는 이번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반론 제언이 발표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또한 시민들이 탈핵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퍼블릭코멘트 참여를 홍보하는 등 대응활동을 펼치고 있다. 탈핵으로 나아가야 할 세계 흐름에 한국도 일본도 역행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보다 더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
2010년 6월 |
민주당 정권 |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
- 2030년까지 핵발전소 비율을 50%로 확대 - 핵발전소를 14기 이상 새롭게 증설 -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은 약 20%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발생 (2011년 3월11일) | |||
2012년 9월 |
민주당 정권 |
혁신적 에너지환경전략 |
- 2030년까지 핵발전소 가동 제로 - 가동 40년 지난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없음 - 신규 증설 없음 |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압승 → 아베정권 | |||
2014년 1월 예정 |
자민당 정권 |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안) |
- 핵발전소는 중요한 기저전원 - 안전성을 확인한 핵발전소는 재가동 -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최종처분장 정부 제시 - 핵발전소 수출 추진 |
발행일 : 20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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