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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독일의 탈핵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

독일의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의 역할을 중심으로

 

강윤재(에너지전환 대표)

 


 

2011530, 후쿠시마 원전재앙이 있고나서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 독일 정부는 전격적으로 17기의 원전을 모두 폐쇄한다고 공식발표했다. 원전지속정책을 선언한 우리의 경우와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오래된 원전 8기는 즉시 폐쇄하고, 나머지 9기도 2022년까지 완전히 폐쇄한다는 내용이었다. 독일의 이 결정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독일이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데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여기서는 윤리위원회의 활동을 살펴보고, 그로부터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 공론화와 관련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영국과 달리 독일은 고준위 핵폐기물처분장의 공론화 작업을 이제 시작 단계로 접어들었다. 작센 주의 아세 중저준위핵폐기물처분장에서 방사능 누출에 따른 이전 결정으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원전 폐쇄 결정과 함께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런 조건에서, 자국이 생산한 핵폐기물은 자국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핵폐기물처분장의 공론화 작업에 돌입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자 많은 독일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원전 폐쇄!”를 외쳤다. 독일은 이미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 낙진 피해를 심하게 입었던 트라우마가 있었다. 독일에서 원전반대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는데, 그것은 체르노빌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조건에서, 독일은 2000년 사회당-녹색당 연정(소위 적녹연정) 하에서 에너지기업들과의 원자력 합의를 통해 2021년까지 원전폐쇄 결정한 바 있었다. 그러나 기민련-자민련 연정이 집권하면서 원전 찬성주의자 메르켈 총리는 기존의 합의를 뒤집고 원전의 평균수명을 12년 연장하려고 시도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런 시도에 경종을 울렸고, 강력한 행동을 통해 총리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시민의식에 불을 붙였다. 시민들의 의지는 기민련의 텃밭인 비덴-뷔르템베르크 주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녹색당 주지사가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고, 이는 메르켈 총리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를 타개하고자 메르켈 총리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타협을 시도했다.

원자력 정책을 결정하는데 윤리라는 이름이 붙어서 좀 이상해 보이는 이 위원회에 대한 독일 사회의 기대는 사실 그리 높지 않았다. 녹색당과 반핵단체들은 정부의 들러리에 불과할 것으로 평가절하했고, 정부로서도 다분히 정치적으로 접근했다. 그렇지만, 윤리위원회는 예상을 깨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책 결과를 도출해냈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활동한 윤리위원회는 TV 토론이나 다양한 방식의 국민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서로의 의견을 모두 반영해낼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여기에는 토론문화에 익숙한 독일의 사정이 크게 작용했지만, 그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도 적지 않다.

보고서와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봤을 때, 윤리위원회의 성공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위원회의 인적 구성 및 방식, 토론의 주제와 접근방식. 윤리위원회의 경험은 고준위 핵폐기물처분장 공론화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던져줄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위원회의 인적 구성 및 방식이다. 위원은 모두 17(그래서, “17인 위원회로 불리기도 한다)으로, 에너지(원자력) 정책과 관련이 깊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총리가 일정 수의 위원을 선임했지만, 반원전측의 퇴퍼(전환경부장관)와 친원전측의 클레이너(M. Kleiner: 독일연구재단 이사장)를 공동위원장으로 선정한 후에 두 사람에게 나머지 위원을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더블 포스트 체제이다. 윤리위원회의 사무총장 바우만(G. Bachmann)에 따르면, 최소한 8명은 반원전 입장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찬반 양진영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어찌 보면, 이런 인적구성은 우리의 실정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지만,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이런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치열한 내부토론과 외부 TV 토론 등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고 심도 있게 조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었다.

둘째, 토론의 주제와 내용(접근방식)이다. 윤리위원회의 보고서를 분석해보면, 위원회의 주된 관심은 원전의 안전 여부가 결코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원전이 매우 안전하다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지만, 절대적 안전이란 보장될 수 없다. 이미 3차례에 걸친 심각한 원전재앙이 이를 잘 말해준다. 논리적으로,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는 더 안전한 에너지가 있다면 굳이 원전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이유로 위원회는 새로운 에너지원(구체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이 원자력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가를 토론주제로 삼았다. 위원회는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 독일의 현재 조건에서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나가면 태양력과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서도 충분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며, 이는 지속가능성, 경제성, 안전성이라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렸다. 여기에는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이 일자리와 국제경쟁력을 보장해주는 측면과 함께, 핵폐기물 처분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윤리위원회의 경험은 왜 에너지정책을 왜 윤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에너지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핵폐기물 처분문제도 단순히 기술적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윤리적(사회적) 차원에서의 접근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니까 괜찮다는 논리는 공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맹신(불신)에 빠져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개진된 의견들을 수렴하고, 생산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방식(일종의 3의 논리”)에 대한 모색과 개발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인적 구성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물론, 관련 주제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작업도 적극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윤리위원회는 시간 제약 속에서 활동했지만, 고준위핵폐기물공론화위원회(가칭)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발행일 : 201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