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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11호>캐나다의 핵폐기물 공론화와 단계적 관리방식

캐나다의 핵폐기물 공론화와 단계적 관리방식

이영희(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박근혜 정부는 국정과제로 올초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발족과 임기 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부지 선정과 착공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정부계획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탈핵운동 내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된 바 있다. 탈핵신문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문제를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갔는 지 3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10호에서는 영국 사례를, 이번 호에서는 캐나다 사례, 다음 호는 독일 사례이다.

 

 

폐쇄적 핵폐기물정책과 광범위한 주민 저항

캐나다는 1962년부터 핵에너지와 그 부산물인 핵폐기물을 생산해오고 있는데 현재 18기의 핵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1970년대 말까지도 캐나다의 핵폐기물정책은 몇몇 정부기관 내에서 폐쇄적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광범위한 주민 저항을 야기하였고, 그 결과 1977년부터 폐쇄적 접근방식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7년 정부가 의뢰하여 작성된 애이킨 보고서(Aikin Report)는 다양한 핵폐기물 처리 방법들을 검토한 후 심지층 처분방식(deep geological disposal)을 권고함과 아울러 기존의 핵폐기물 관리정책의 결정과 실행과정이 정부와 관련 회사들만 참여하는 매우 폐쇄적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향후 연방 정부는 국가핵폐기물 프로그램을 확정하기 전에 공공적 토론에 부칠 것을 권고하였다. 1978년에 정부는 보고서의 권고를 받아들여 캐나다 핵폐기물관리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캐나다의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심지층 처분 방법을 발전시키도록 했다.

핵폐기물 처분방식 10년 연구, 독립 패널 구성 후 또 10년간 검토

핵폐기물관리프로그램에 따라 원자력의 안전관리와 핵폐기물의 처분 업무를 관장하는 캐나다 원자력공사(AECL)가 최종적인 핵폐기물 처분방식에 대해 10년 이상 비공개적으로 수행한 연구를 통해 심지층 처분방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자, 1989년에 연방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독립적 패널을 구성하였다.

패널에 주어진 임무는 캐나다원자력공사에 의해 제안된 개념이 현재 존재하는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에게 어떠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함의를 갖는지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독립 패널은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과학 전문가들의 의견만이 아니라 캐나다 대중들의 의견도 광범위하게 청취하고자 노력하였다. 거의 10년에 걸친 검토 과정을 거쳐 1998년에 최종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독립적인 핵폐기물관리기구 설립과 광범위한 대중 참여 계획 요구

보고서에서 패널은 기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캐나다원자력공사가 제시한 심지층 처분 개념의 안전성은 개념적 발전 단계에 따라 적절하게 설명되어 있으나,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패널은 캐나다원자력공사의 심지층 처분 개념이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서 이 개념은 캐나다의 핵폐기물 관리를 위한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는 데 요청되는 사회적 수용성의 수준에 못 미친다고 결론짓고, 정부와 사업자로부터 독립적인 핵폐기물관리기구를 설립하고 광범위한 대중의 참여를 증진시킬 계획 수립에 착수하라고 요구하였다.

캐나다 정부는 패널의 권고에 대한 대응으로 2002년에 핵연료폐기물법을 제정하고 같은 해에 사용후 핵연료 처분의 전체적인 과정을 관리할 전담기구로 핵폐기물관리기구(Nuclear Waste Management Organization, 이하 NWMO)를 설립하였다. NWMO의 임무는 캐나다의 시민 대중과 함께 협동하여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하고, 기술적으로 안전하며, 환경적으로 책임질 수 있고,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장기적인 관리방안을 마련하여 정부에 추천하는 것이다.

대중 자문프로세스 설계해, 3년간 120여차례 회의와 전국적인 여론조사 등 진행

NWMO2002년부터 국가적 수준에서 대중적인 자문프로세스를 진행하였다. NWMO는 산업계 인사들과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의견만이 아니라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기반하여 대중 자문프로세스를 설계하였다. 대중 자문프로세스는 캐나다 국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무작위로 선발된 개인들, 핵폐기물 관리의 다양한 측면들과 관련하여 각종 경험과 전문성을 지닌 개인들, 그리고 핵폐기물 관리정책에 역사적으로, 또한 공적으로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는 개인, 조직 및 원주민 부족들이 견지하는 가치, 이해관계 및 원칙들을 포괄하도록 설계된 20 차례 이상의 대화 모임들로 구성되었다.

이 대중 자문프로세스는 또한 전국적으로 적어도 120여 차례 이상 개최된 정보공개 회의와, 캐나다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적인 여론조사, 워크숍, 토론회, 그리고 전문가, 청소년 및 대중들과 함께한 수차례의 전자 대화(E-dialogues)도 포함하였다.

NWMO3년에 걸친 대중 자문프로세스를 네 단계로 구분하여 진행하였는데, 각 단계별로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달리하여 대중과의 대화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문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NWMO는 숙의적 의사결정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제3(씽크탱크와 컨설팅 회사들)를 고용하여 자문 과정을 평가하도록 했다.

먼저 제1단계에서는 대중 자문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 관리를 위한 연구개발 프로그램 기대치와 목표에 대한 대중의 의견 수렴을 꾀하였다. 2단계에서는 첫 번째 단계에서 나온 대답들을 바탕으로 대안들을 분석하기 위한 주요 평가 기준들을 찾을 목적으로 NWMO가 이와 관련해서 작성한 문서 내용에 대한 대중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였다. 3단계에서는 앞선 제2단계의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평가의 틀을 통해 핵폐기물 처분에 대한 기존의 3가지 방안(심지층 처분, 소내 중간저장, 중앙집중식 중간저장)의 장점과 단점을 평가한 다음 제4의 대안(단계적 조정을 통한 관리방식, Adaptive Phased Management)을 마련하여 정부에 대한 권고안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마지막으로 제4단계에서는 대정부 권고안 초안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최종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였다.

NWMO는 네 단계의 대중 자문의 과정에서 웹싸이트(www.nwmo.ca)를 잘 활용하였다. 이 웹싸이트는 관련된 모든 배경 문서들과 자료, 3자 기관의 평가 보고서, 토론용 자료 제공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의견을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하였다. 20058월 말까지 5만 명 이상의 캐나다인들이 이 웹싸이트를 방문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광범위한 사회적 공론화로 결정된, 캐나다 사용후 핵연료 300년 관리 정책

캐나다 정부는 NWMO의 이 제안을 20076월에 공식적으로 수용하고 NWMO에게 제안된 계획을 실행할 책임을 부여하였다. 그 결과 향후 300년에 걸쳐 캐나다에서 진행될 사용후 핵연료 관리 정책은 다음과 같이 결정된 상태이다.

향후 30년간 지속될 1단계에서는 사용후 핵연료는 기존의 발전소 내에 저장한 상태로 집중형 중간저장시설 건설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 다음 30년간 지속될 2단계에서는 최종처분장에 대한 설계와 안전성 분석을 완료함과 함께, 집중형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기로 결정이 내려질 경우 각 핵발전소 부지별로 저장된 사용후 핵연료를 이동시키게 된다. 하지만 집중형 중간저장시설이 아니라 소내 분산 저장방식으로 결정될 경우 사용후 핵연료는 이동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마지막으로 그 후 240년간 지속될 3단계에서는 집중형이나 분산형 시설에 저장된 사용후 핵연료를 최종 심지층 처분장으로 이동한 다음 특수용기에 담아 지하암반층에 넣어두고 그 거동을 감시하게 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캐나다의 핵폐기물 관리정책의 형성과정은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에 의한 기술관료적 방식이 아니라 광범위한 대중의 다양한 방식의 참여를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론화가 잘 수행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발행일 : 201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