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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9호>체르노빌의 경고-지금도 희생은 계속된다.

체르노빌의 경고, 두번째

지금도 희생은 계속된다여성과 아동들의 피해

아사노 겡이치 교수(浅野健一, 도시샤대학 대학원)

 


일본도쿄전력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후를 이해하기 위해 체르노빌 시찰여행(NPO법인 식품과 생활의 안전기금주최)에 참가한 필자가 2회에 걸쳐 실정을 보고한다. 지난 4월호(탈핵신문 7)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사상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로부터 26. 체르노빌 핵발전소 주변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건강피해로 고통받는 사람들 다수가 존재한다. 출처 일본 주간금요일(週刊 金曜日)2012119(919). 번역 이영구

핵발전소 노동자와 그 가족 약 1만명이 살고 있던 체르노빌에 극히 가까운 쁘리뺘치시는 현재 유령도시가 되어있다. 땅속에 파묻혀진 집터에는 여기는 ○○집이 있다는 표식이 서 있다. 폐허가 된 보육원 내부에는 장난감과 낮잠 자는 침대, 마당에는 왼쪽다리가 떨어져나간 인형이 있다. 방사선오염이 극심하다.

폐촌이 된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각지로 강제 이주당했다. 키에프에서 남동 70km의 비오염지인 고바린마을을 찾아갔다. 핵발전소에서 서쪽으로 35km에 있는 노비밀 마을의 약 1천명 모두가 1992년 이 마을로 이주했다.

국가의 부담으로 만든 이주자저택은 10종류 정도가 있고, 가족수에 따라 넓이가 다르다. 토지와 주택은 먼저 살던 곳과 비슷하다고 했다. 스텐반츄 빠렌치나 촌장은 이주한 이는 270세대, 530. 나는 쁘리뺘치에서 왔다. 토지는 350, 집은 120. 가족구성에 따라 추가도 있다고 말한다. 마을 묘지에 가보니, 묘비에는 ‘1946~1996’ 등으로 적혀있어, 단명한 사람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 조교인 고이데 히로아키(小出裕章) 씨는 “26년 후, 반드시 후쿠시마 사람들의 고투는 계속된다. 아니, 비극은 26년으로 끝이 나지 않고 끝없이 계속된다.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들은 그 위중함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맡겨두면 미래는 파괴된다고 강조한다.

생존율 55%

아이들의 암이 많다. 국립암센터에는 소아병동이 40상 있고, 매년 250명의 아동이 입원. 생존율은 55%라고 한다. 그레고리 그림시구 의사는 체르노빌과의 관련과 유전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어렵다. 조사가 없었던 소련시대의 90년대 초부터 데이터를 집적하고 있다. 대다수가 골암이다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 국립의학 아카데미 방사선의학연구센터의 고스챤친 로가노후스키 교수(의학박사)는 의사(醫師)인 아내 가리나 씨와 태아의 방사능 피해를 연구하고 있다. 박사는 오염지역인 프리뺘치와 비오염지역인 키예프에서 사고 당시에 임신부였던 여성의 아이도 장기간 추적하여, 내부피폭의 영향을 비교하고 있다.

임신 1~3주간에 피폭한 경우는 죽음으로 연결된다. 4~8주에는 뇌에 장애를 일으킨다. 지적장애, 간질, 통합실조증(失調症) 등이 키예프보다 쁘리뺘치의 아이들쪽이 비교적 많다. 특히 좌뇌에 영향이 크다고 전했다.

핵발전소로부터 약 120km에 있는 비그니 마을의 나탈리아 오스타보빗치 씨(26)일곱살부터 갑상선에 이상이 있고, 신장이 나쁘고, 만성편도선염으로도 고통받고 있다. 동생 알렉산더는 작년 6월에 골암에 걸려 20세로 사망했다. 친구와 지인 중에는 몸에 이상이 많고 사망한 사람도 많다. 핵발전소 사고가 증오스럽다고 말했다.

여행에 참가한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의 구로다 세츠코 씨는 후쿠시마에서는 핵발전소 사고는 별것 아니라고 선전되고 있지만, 지금도 심각한 체르노빌 상황에서 배워야 한다. 체르노빌 사람들과 정보교환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들이 태어난 나라는 녹색이 많은 멋진 나라. 1986년에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 자연이 파괴되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고뇌가 많은 날들이 시작됐다. 사고는 우리들의 생활에 어둠을 남겼다. 그래도 사람들은 힘내고 있다. 26년이 지났으나, 아직 매년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지금도 체르노빌은 계속되고 있다.”

핵발전소에서 80km에 있는 피샤닛츠아 마을 학교에서, 11학년생 뷴소바 사쵸 씨가 대표로 인사했다. 스레판쵹 교장은 사고 후에 건강하지 못한 학생이 급증했다. 나 자신도 사고 당시, 핵발전소에서 60km 마을에 있다가 이주했는데 건강이 안좋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426일에 기념행사를 반드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여행 참가자는 세 학교를 방문해, 합계 101명의 아이들에게 발, , 머리가 매일같이 아픈가를 물었더니, 70%가 아프다고 대답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보고서에는 건강한 아이는 6%’라고 한다.

두배 가까운 세슘 검출

또 식품 오염도를 조사하기 위해서 오염지역인 모자리 마을과 비오염지역인 코바린 마을에서 아이들이 보통 먹고 있는 식품을 가져오게 하여, 그 지역의 보건소 등에서 세슘137을 검사했다. 모자리 마을에서는 호밀, 감자, 우유, 치즈에서도 검출됐지만, 코바린 마을에서는 버섯에서만 검출됐다. 모자리 마을의 버섯에서는 코바린 마을의 두배 가까운 수치가 나왔다.

여행단장이며 <식품과생활안전기금> 대표인 고와카 준이치(小若順一) 씨는 양 지역의 공간선량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장해의 원인은 식품에서 섭취하는 내부피폭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산림의 버섯과 딸기류를 채취해서 가공하고, 저장해서 먹는다. 그다지 세포분열을 하지 않는 뇌, 심장, 신장, 신경, 근육의 유전자가 방사능으로 상처를 입으면 잘 기능할 수 없던가, 세포가 죽는 일이 일어난다. 낮은 수치의 내부피폭으로 장기에 이상이 생겨, 신경에 장해가 일어난다고 생각된다고 말하고 있다.

앞서(4월호) 소개한 체르노빌연맹 대표인 안드레예프 씨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안전대책을 게을리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건강피해 데이터를 발표할 수 없게 했다. 미국 주도의 IAEA를 대신할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르노빌을 50번 방문·취재하고 있는 언론인 히로카와 유이치(廣河隆一) 씨는 아이들이 방사선 오염도가 높은 지역에 살아도 좋다고 하는 일본의 어용학자와 의사는 범죄자다. IAEA는 야마시타 슝이치(山下俊一) 후쿠시마 현립의과대학 부학장들을 동원하여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피해를 축소해 보여주고 있다. IAEA는 핵발전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기관이니까 정보를 은폐한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상황도 비밀로 해왔다고 한다.

체르노빌 시찰의 보고서는 식품과 생활안전기금의 홈페이지(http://tabemono.info/)에서 열람할 수 있다. 책자로 구입하는 것도 가능. 문의는 048-851-1212

지금도 차별과 대립강제이주한 부부한테 듣는다

이주마을 코바린 마을에서 수학교사였던 미하일 코와르쵸크 씨(73)와 부인 가리나 씨(61)세를 만났다.

미하일 씨는 살고 있던 장소는 당초에는 피난구역에 지정되지 않고, 6년 후에 기준이 바뀌었다고 마을전체가 돌연 이주명령을 받았다.” 가리나 씨는 남편은 47년간 수학을 가르치고, 나는 집단농장의 회계담당으로 일했다. 지금은 연금생활. 집은 100이고, 세 개의 방과 400의 밭이 있다고 말했다.

또 자기는 사고 직후에 갑상선 수술을 받고, 남편은 1994년에 심근경색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손자는 갑상선종, 손녀도 똑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미하일 씨는 사고 후 이주할 생각은 없었고, 싫었다고 눈물을 비쳤다. “원래 살고 있던 마을 사람들한테 체르노빌 사람이다. 방사선이 옮는다고 하여 고통스러웠다. 지금도 그러한 차별과 대립하고 있다. 집단농장과 지역 지도자들은 환영했지만, 마을사람들은 태도가 좋지 않았다. ‘여기는 우리들의 토지다, 강이다, 물고기다라고 자주 말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발행일 : 201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