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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밀양, 보상이 아니라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

밀양, 보상이 아니라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승수(변호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파행으로 끝난 밀양송전탑 전문가협의체

밀양송전탑 전문가협의체는 파행으로 끝났다. 40여일동안 진행된 전문가협의체에서는 실질적인 토론이나 표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국전력(이하 한전)측 위원들이 한전 자료를 베끼기 해서 보고서 초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쟁점이 분명해졌고, 한전이나 정부가 그동안 거짓말과 과장을 일삼아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금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쟁점은 단순하다. 밀양을 지나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가 지금 당장 필요하냐는 것이다. 현재 고리에 4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신고리 1,2호기가 가동중에 있다. 6개의 핵발전소가 가동중이다. 이 핵발전소들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기존의 3345kV 송전선로(고리-울주, 고리-신울산, 고리-신양산)를 통해 송전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14년과 2015년에 신고리3,4호기가 완공될 예정이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송전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탈핵 입장에서는 다 지은 핵발전소도 가동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보지만, 지금 그것을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신고리3,4호기를 가동한다고 해도 기존 송전선로를 통해 송전을 할 수 있다면 새로운 765kV 송전선로를 급하게 건설할 필요가 없다.

밀양 765kV 송전선로 대신 기존 345kV 송전선만으로도 가능!

그런데 40일간의 전문가협의체 활동을 통해 나는 새로운 765kV 송전선이 없어도 기존 3345kV 송전선을 통해 신고리3,4호기에서 생산될 전기를 송전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한전도 정상상태에서는 송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기존 3개 송전선로 중에서 고리-신울산 노선의 경우에는 용량을 증대할 수 있다(이 점은 한전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 한전쪽 자료에 따르더라도 신고리3,4호기까지는 송전하는데 문제가 없다. 한전이 매우 자의적으로 한전쪽에 유리하게 한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르더라도, 최악의 상황에서도 송전선 이용율은 100%를 넘지 않는다. 송전이 가능한 것이다.

흔히 전기품질에서 핵심을 주파수, 전압, 그리고 공급신뢰도(reliability)라고 한다. 그런데 고리-신울산 1개 노선만 용량을 증대하면 전기품질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파수나 전압에 문제가 없다. 신뢰도는 정전, 특히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인데, 설사 송전선에서 고장이 난다고 해서 곧바로 정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광역정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전은 2011915일에 일어난 것이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이 정전은 전력거래소와 정부의 전력계통운영 능력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송전선 문제 때문에 정전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송전선 문제 때문에 부분정전이라도 일어난 경우는 2000년 이후에 단 한건도 없었다.

게다가 낡은 고리1호기 등 폐쇄 시, 송전선에 더 여유가 생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고리의 낡은 핵발전소들을 폐쇄하면 기존 송전선에 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고리1호기는 이미 설계수명이 끝났고, 고리2,3,4호기는 수명을 40년으로 잡아도 2023~2025년이면 수명이 끝난다. 이렇게 발전소들이 수명이 끝나서 문을 닫아야 하는데, 송전선을 새로 건설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고리1호기 하나만 당장 폐쇄해도 송전선에는 더 여유가 생긴다. 결론적으로 765kV 송전선을 건설하지 않아도 전력계통의 신뢰도에는 문제가 없다.

정부·한전 공사재개 수순밟고, 한전 편에 선 밀양시장 중재나서

이런 것이 쟁점이다. 이런 쟁점은 일반 시민들도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부와 한전은 이 쟁점에 대한 토론을 피하고 있다. 마냥 전문가들도 다른 대안이 없다고 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런 쟁점에 대해 제대로 된 검토를 해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정부와 한전은 공사재개를 밀어붙이고 있다. 8월에 공사가 재개된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환익 한전사장이 밀양을 오르내리며 공사재개 수순을 밟고 있다.

밀양 시내에서 찬성주민들 명의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다. 한전도 밀양 시내에 플래카드를 도배하고 있다. 주민들을 배신하고 한전 편에 선 밀양시장은 보상협의체를 구성해서 중재를 하겠다고 나섰다.

밀양주민들 보상 필요없다. 이 잘못된 시스템을 바꿔라!’

그러나 정작 송전선이 지나가는 마을 주민들은 보상은 필요없다라고 외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시골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이 잘못된 시스템을 바꿔달라는 것이다라고 얘기하신다.

그래서 밀양은 대한민국의 전력시스템 전반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밀양 송전탑 문제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은 바닷가에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어서 초고압 송전선로를 통해 전기를 소비지까지 끌어가는 시스템이다. 소비지는 대도시와 대공장들이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핵발전소는 그 자체로 위험하고, 석탄화력발전소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한다. 초고압송전선은 시골의 마을과 논·밭을 지나며 전자파와 소음을 내뿜고 삶터를 파괴한다.

단지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수많은 시골주민들이 피해를 보았고, 환경이 파괴되었다.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상 앞으로 제2, 3의 밀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미 동해안에 새로 건설될 핵발전소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765kV 송전선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새로운 송전선, 변전소 건설이 전국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지역분산형 에너지로 전환하면, 초고압송전선 필요없다!’

생각을 바꾸면 대안은 있다. 전기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있고, 전기소비가 무분별하게 늘어나기 때문에 초고압송전선을 자꾸 건설하는 것이다. 전기소비를 줄여나가면 송전선은 그만큼 필요가 없어진다. 필요한 전기를 바닷가의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곳 가까이에서 생산하면 초고압 송전선은 필요가 없어진다. 이른바 지역분산형 전원이라고 부르는 재생가능에너지, 가스발전을 늘려나가면 된다. 이런 발전방식은 초고압 송전선이 필요없게 만들고, 사고위험이나 환경피해도 줄이는 방식이다. 핵발전소나 석탄화력발전소는 당장에는 싸다고 하지만, 결국 나중에 막대한 피해를 주게 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분산형 전원으로 전환해나가야 한다. 밀양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정리하면 대안은 분명하다. 장기적으로는 지역분산형 전원으로 전환해나가면 된다. 그렇게 하면 초고압송전선은 필요가 없다. 단기적으로 신고리 3,4호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기존의 송전선으로 송전을 하면 된다. 새로운 765kV 송전선이 없어도 송전이 가능하다.

정부·한전의 논의 거부 및 공사 강행은, ‘국가폭력

이렇게 분명한 대안이 있기 때문에 정부와 한전은 졸속으로 공사를 강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대안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기존 정책의 잘못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뿌리고, 주민들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나쁜 행태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가 강행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불의와 거짓이 승리하는 잘못된 역사를 또 하나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의 잘못된 시스템을 고칠 기회를 잃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기존의 전력시스템은 시골 주민들뿐만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롭지 않다. 이런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사고위험, 기후변화로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공사강행은 무엇보다도 8년을 싸워 온 밀양어르신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하는 일이다. 국가폭력이 선량한 사람들의 삶을 짓밟는 비극이 벌어지게 된다.

사회적 공론화 기구 및 TV 공개토론 등을 제안한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사회적 공론화이다. 정부와 한전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국민들을 속여왔다는 사실이 햇볕아래에 드러나게 해야 한다. 밀양반대대책위가 TV공개토론을 제안하고, 사회적 공론화기구 구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공론화를 피하면 우리가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밀양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각자의 모임, 각자의 블로그/카페/SNS를 통해 진실을 알려나가면 좋겠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은 영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진실을 알려나가면 큰 힘이 된다.

곧 전국의 초고압 송전선, 변전소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끼리 연대조직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힘없는 풀뿌리들이지만, 풀뿌리가 엮이면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그 힘으로 정의롭지 못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이 잘못된 시스템을 이번에는 바꿔야 한다.

 

발행일 : 201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