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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10호>밀양송전탑 전문가협의체 경과 보고 - 관료주의와 전문가주의를 넘어서자!

관료주의와 전문가주의를 넘어서자

밀양 송전탑 전문가협의체경과보고와 쟁점, 문제의식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밀양 765송전탑 싸움과 40일간의 전문가협의체운영

지난 529일부터 재개된 밀양 765kV 송전선로 공사는 한전의 의도와는 달리 강행될 수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20명이 병원에 실려가는 악몽같은 10일이 지나고 나서, 지난 529일 국회의 중재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40일 동안 공사를 중지하고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해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전문가협의체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전문가협의체의 활동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지만, 그동안의 진행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부와 한전의 자료제공 속도는 느렸고, 아직도 자료가 잘 제공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어떤 자료는 회의석상에서 여러 차례 격론을 벌인 끝에 겨우 일부를 받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에 걸맞지 않은, 한전 등의 뿌리깊은 관료주의·전문가주의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에서 관료주의가 얼마나 뿌리깊은 지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같은 정부조직은 물론이고 한전, 전력거래소 같은 공기업·공공기관에도 관료주의는 뿌리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관료주의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나는 조직이기주의’, ‘폐쇄성’, 그리고 공감능력의 상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무엇이 옳은지 보다는 일단 이 사업을 해야 한다는 조직이기주의가 너무 강하다. 자기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는 여기에서 밀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간에, ‘그건 안 된다는 답이 나온다. 지난 8년 동안 밀양 주민들이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해 왔지만, 정부와 한전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어쨌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정말 안 된다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한전은 그렇지 못했다. 주민들은 765kV 송전선로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그리고 사업추진과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자기 조직의 이익을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주민들이 이처럼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한번쯤은 스스로를 돌아볼 만도 하다. 그러나 한전의 태도를 보면, 그런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역지사지라는 말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내린 결정은 무조건 밀어붙여야 한다는 사고방식만 보일 뿐이다.

또 다른 부분으로 전문가주의가 있다. 관료들, 한전, 전력거래소, 그리고 그와 연계된 전문가들은 전력계통은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민들의 이야기는 무시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력이라고 해서 그들만의 리그일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주민들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눈높이에서, 주민들이 알 수 있는 언어와 방식으로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문가들은 주민들을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려 해 왔을 뿐이다.

전문가협의체에 들어와서 이런 관료주의와 전문가주의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8년 동안 밀양 주민들이 숱한 고통을 겪어 왔고, 70대 농민이 억울함을 참지 못해 분신하는 비극까지 발생했던 것이다.

 

전문가협의체 핵심 쟁점, ‘신고리 3~4호기가 생산한 전기, 과연 765kV 송전선로를 통해야 하나?’

전문가협의체에서 가장 큰 쟁점은 완공을 앞두고 있는 신고리 3호기~4호기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765kV 송전선로를 통하지 않고 송전할 방법이 있느냐이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결론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전은 그동안 과장된 시뮬레이션을 통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해 왔지만, 한전의 시뮬레이션은 실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기존 선로를 증용량하면 충분히 송전이 가능해 보인다. 물론 한전은 끊임없이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물리적으로 송전이 가능한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신고리5,6호기는 아직 착공도 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논의할 시간이 충분하다.

이렇게 결론이 간단할 수도 있는데, 왜 그동안 밀양주민들을 괴롭혀 왔을까? 그것은 자신들만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고, 자신들만이 전문성이 있다는 오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오류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업강행에만 골몰해 온 것이다. 앞으로 남은 전문가협의체 활동을 통해 이런 오만을 넘어서려고 한다. 마지막까지 진실을 더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발행일 : 201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