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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9호>밀양 송전탑 공사중지 이후의 과제

밀양 송전탑 공사중지 이후의 과제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녹색당, 변호사)


국회 중재 합의 이끌어낸, 밀양 주민들과 시민들의 저항

뜨거운 땡볕과 쏟아지는 비속에서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끝까지 765kV 송전선로 건설을 막았다. 작년 1월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과 공사중단, 그리고 작년 여름의 공사재개 및 치열한 반대운동에 의한 공사중단을 거쳐, 지난 520일 다시 재개된 공사였다.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 그리고 연대하는 시민들은 포크레인에 몸을 묶고, 산 위에서 밤을 새워가며 공사현장을 지키고, 알몸으로 저항하며 공사를 막았다.

여기에 대해 한전 부사장은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탈핵단체와 천주교에 세뇌당했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원전 때문에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해서 물의를 빚은 끝에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그리고 지난 29() 국회의 중재로 40일간 공사를 중지하고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밀양 주민들, 그리고 연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전혀 없는, 잠정적인 합의일 뿐이기도 하다.

아직 해결된 것은 없다. 시민들의 힘과 눈이 필요하다

전문가협의체는 한전 추천 3, 밀양대책위 추천 3, 국회 추천 3(여당 1, 야당 1, ·야 합의 1)으로 구성되어, 밀양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로 되어 있다. 올해 연말에 가동한다는 신고리3호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주민들이 제안해 온 기존 송전선의 용량을 늘려 기존 선로로 송전하는 방안 우회노선을 모색하는 방안 지중화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문가협의체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검토의견을 국회에 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권고를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한전과 주민대책위는 그 권고를 따라야 한다.

이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한전과 정부가 일단 중재합의를 받아들였지만,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는 두고봐야 한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든지, 중지하기로 한 공사를 다시하려 한다든지 하면 언제든지 합의가 깨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전문가협의체가 과연 그 내부에서라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평행선을 달리다가 끝날 수도 있다. 국회 상임위(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고의견을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이런 과정이 모두 매끄럽게 진행되어 한전과 정부가 공사를 포기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40일후에 또다시 공사가 재개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다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은 포크레인과 젊은 용역·경찰과 몸으로 맞서야 한다.

그래서 아직은 해결된 것이 전혀 없다. 40일이라는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그리고 전문가협의체와 국회에 많은 역할이 주어졌다. 겉보기에는 그렇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물론 전문가협의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권고의견을 내게 되어 있는 국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밀양 송전탑문제를 지켜보고 어르신들과 연대하려는 사람들이 없다면, 전문가협의체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고, 국회도 진지한 논의를 회피할 것이다. 결국 시민들의 힘과 시민들의 눈이 있어야만 이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0일간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한, 밀양송전탑의 진실

그래서 40일이라는 시간 동안 밀양 송전선로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것은 더 많은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이 문제에 대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알려야 할 진실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밀양을 지나는 765kV 송전선로는 우리가 흔히 보는 154kV 송전선로보다 18배나 많은 전기를 보내는 초고압 송전선로이다. 철탑의 높이는 최대 140미터에 달한다. 이런 송전선로가 밀양의 마을과 학교주변, ·밭을 지나간다. 보상을 한다지만, 송전선로의 끝선에서 좌우 3미터까지가 보상범위이다. 4미터가 떨어져 있어도 보상이 없는 게 현재의 법제도이다.

주민들은 마을도, 땅도 잃어버릴 위기에 몰렸다. 그래서 8년동안 싸워온 것이다. 젊은 용역들의 힘에 밀리면서도 겨울산을 오르내리며 공사를 막아 왔다. 작년 1월에는 70대 농민 한분이 분신자살을 하는 비극까지도 있었다.

정부와 한전은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영남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765kV 송전선로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건설중인 신고리 3~4호기가 가동된다고 해도 기존 선로를 통해 송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신고리 5~6호기는 아직 착공도 안 했고, 8년은 있어야 가동이되기 때문에 지금 765kV 송전선로를 건설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주민들은 8년동안 우회선로나 지중화같은 대안을 검토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대도시와 대기업들이 많이 쓰는 전기 때문에 시골농민들에게 일방적인 피해를 강요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송전선로를 건설하려면 정당하게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당하게 보상하면 765kV 송전선로를 건설할 수 없다. 보상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비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전의 경제성을 맞추기 위해 시골농민들의 땅을 강탈해도 되는가?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시골농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765kV 송전선로 건설은 그 자체로 정당하지 못하다.

더 이상 핵발전소나 석탄화력발전을 대규모로 지어 대규모 송전철탑을 건설하여 대도시와 대기업공장으로 전기를 끌어오는 시스템은 안된다. 밀양을 계기로 이런 시스템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따라서 밀양 765kV 송전선로를 백지화하고 다른 대안을 찾고, 이번 기회에 국가의 발전-송전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잦은 부품비리와 사고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핵발전소는 이제 더 이상 지어서는 안 된다.

밀양송전탑 문제의 돌직구’,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역할을 찾는 것

지금 이야기한 것이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야 할 진실이다. 결국 밀양 어르신들과 함께 하려는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자기가 속한 동네에서, 모임에서, 인터넷에서, SNS에서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그리고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농활을 가서 농사일을 도울 사람은 그렇게 하고, 인권단체들은 밀양에 가서 그동안 벌어진 인권침해조사를 한다고 한다. 용인 시민들은 용인에서 촛불집회를 했고, 앞으로도 곳곳에서 이런 촛불집회가 열릴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는 것이 밀양 송전선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돌직구이다.

발행일 : 201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