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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이이타테무라 주민 하세가와 켄이치 씨 별세

후쿠시마현 이이타테무라 주민 하세가와 켄이치(長谷川健一) 씨가 1022일 암 투병 끝에 68세로 사망했다.

 

하세가와 씨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약 50떨어진 이이타테무라에서 낙농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핵발전소 사고 이후 농장에서 짜낸 우유에서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키우고 있던 소를 모두 살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익숙한 땅과 생업을 잃어 가족과 함께 피난에 길에 나섰다.

 

장영식 사진가가 담은 하섹와 켄이치 씨. 2018년 12월 1일 자택에서의 모습니다. (사진=장영식)

 

하세가와 씨는 마을이 고농도로 오염되었는데도 은폐하려고 하는 행정과 도쿄전력에 맞서 싸웠다. 본인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 사람들과 함께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핵발전소 사고피해자단체 연락회(히단렌)’ 공동대표, ‘이이타테무라 재판외분쟁 해결수속’(ADR)신청단 단장 등을 맡아 활동했다.

 

하세가와 씨는 핵발전소 사고를 다룬 각가지 다큐멘터리 등에 적극적으로 출연했고, 본인 스스로도 저서 핵발전소에 고향을 빼앗겨서(다카라지마사), 마데이나 마을, 이이타테(나나츠모리쇼칸) 등을 출판해 핵발전소 사고의 비참함을 호소했다. 2013년에는 반핵아시아포럼(NONUKES ASIA FORUM)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세가와 씨는 2017년 봄, 이이타테무라 대부분 지역이 피난 해제되었을 때 마을로 돌아갔다. 사고 전에는 그의 장남 가족을 포함해 4세대 8식구가 함께 살았지만, 그의 아버지와 아내 총 3명만 귀촌했다. 그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서 농업을 재개해 부흥을 홍보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황폐해진 고향 땅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며 땅을 일구어 메밀 농사를 지었다.

 

그는 올해 봄 진행성 후두암 진단을 받았으며, 투병하다가 안타깝게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26일과 27일에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약 800명이 모여 너무 빠른 이별을 애도했고, SNS 등 온라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애도의 글을 올렸다.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11월(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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