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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0호>교과서를 펴보면, 핵은 안전한 에너지?

교과서를 펴보면, 핵은 안전한 에너지?

이지언 편집위원

 


 

 

그림 : 고등학교 한국지리(이승호 외, 두산동아.107쪽)

 

국내 한 교과서를 보면, 핵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는 주변 해조류에 도움을 준다. 온배수를 이용해 핵발전소 내에 양식장을 운영해보니 자연 상태보다 2~4배 정도 빠른 성장이 확인된다고 긍정적인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는 최근에는 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온배수를 이용한 진주조개 시범양식이 성공을 거둬 지역 주민들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방사성물질 오염 등의 문제도 없어 온배수의 청정성과 유용성이 입증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이 내용은 고등학교 한국지리(두산동아) 107쪽을 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자원 개발에 따른 지역의 변화의 예시를 다룬 해당 기사의 애초 제목은, ‘원자력발전소의 온배수로 인한 주변 환경의 피해였다. 핵발전소에서 증기와 열교환에 의해 물을 끌어올릴 때보다 7도 정도 높아져 바다로 배출되는 온배수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소개하던 기존의 맥락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은 핵발전에 우호적인 국내 교과서 서술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고 사회과학 교과서를 보면 핵발전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유용한 에너지다. 교과서에 따르면, 핵발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고등2 지구과학1(중앙교육진흥연구소)), 우라늄은 풍부하고 저렴해 경제적이고(고등 한국지리(교학사)), 핵발전소는 강진에도 견딜 수 있어 안전하다(1 과학(지학사)).

 

교과서 수정에 목매는 원자력문화재단

놀라운 사실은 핵발전에 대한 긍정 일색의 교과서 내용 수정이 우연이 아니라, 원자력홍보기관에 의해 장기간 주도면밀하게 추진됐다는 점이다. 원자력문화재단은 1996년부터 각급 학교 원자력 관련 수정 반영을 위한 교과과정 개편 추진 기본 계획을 마련하고, 다음해부터 교과서 수정 내용의 반영을 교육부에 요청해왔다. 핵발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교과서를 직접 저술하는 교육부의 교육과정 편수관을 대상으로 울진의 핵발전시설을 시찰토록 했다. 통계 수정이나 단순 의견을 제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2005년부터 원자력문화재단은 교과서 개정 요구안을 만들고 이와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원자력문화재단이 교과서 수정에 이렇게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원자력문화재단의 원자력 관련 교육과정교과서 이해 교육 개발 연구(2010)를 보면 원자력에 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의 방식이 효과적인 대안이라며, 교과서 수정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원자력에 대한 인식이 막연하게부정적 태도로 치우쳐져 있다는 관점이 깔려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DDT나 고엽제의 문제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어떤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객관적으로 안전성이 확인되는 경우에도 주관적인 불안감으로 인해 과학기술을 거부하거나 도입에 반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자력의 경우 후자의 문제를 겪고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원자력문화재단은 교과서 내용 수정의 방향을 원자력 이해 교육에 두고, 이를 대안적 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의 장·단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으로 정의한다. 원자력문화재단의 요청에 따라 수정된 교과서 내용을 보면, 핵발전에 관한 잘못된 어휘나 통계를 바로잡거나 균형 잡힌 관점을 소개하는 것을 제외하면 핵발전의 긍정성만을 나타낸 내용이 대부분이다.

 

원자력에 우호적인 교과서 사례들

핵발전의 친환경성을 강조하는 대목은 가장 흔한 교과서 수정 내용이다. 고등학교 화학1(교학사)에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활용되는 방법들로 풍력의 이용대신 원자력의 이용이 제시됐고, 사진도 교체됐다. 고등학교 경제(법문사)에서 경제주체의 합리적 선택단원에서는, “정부는 (중략) 강 하류 지역의 홍수 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목적 댐을 건설하기로 하였다에서, “정부는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하였다로 내용이 수정됐다. 모두 원자력문화재단의 요청에 따라 수정됐다. 이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기후변화의 대안으로서 핵발전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는 원자력 르네상스주장과 맞닿아있다.

고등학교 1학년 과학(지학사)환경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온실 기체의 발생량을 줄이는 것이다. ,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석유, 석탄 등의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재생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이, “신재생 및 원자력 등 저탄소 에너지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로 수정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고등학교 물리2(상문사)원자와 원자핵단원에서는 원자력 발전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효과적으로 줄이면서 에너지 수요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서술한다.

환경적으로 깨끗할 뿐 아니라 원전이나 방사능폐기물이 안전하다는 내용도 원자력문화재단에서 가장 주목하는 수정 방향이다. 고등학교 화학1(천재교육)에서 현재 방사능 폐기물은 폐광이나 지하 깊은 곳에 보관하고 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방사능 폐기물이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표현은, “방사능 폐기물의 대부분은 위험성이 크지는 않지만, 안전한 관리를 위해 보호 시설이 갖춰진 지하 깊은 곳으로 운반하여 저장한다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후쿠시마 핵 재앙 이후에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2013년에 발간된 중학교 기술·가정2(교학사) 222쪽을 펴보면, 2011년 도쿄전력 핵발전소 사고에 대해 최근 원전 사고로 인해 더욱 안전한 원자력 에너지 이용 방법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로 심각성에 비해 매우 가볍게 서술했고, 뒤이은 내용에서 핵융합 에너지의 안전성과 청정성을 단정적으로 기술했다.

2012년판 고등 물리2(교학사)에서 원자로를 다룬 생활 속의 물리에서는 체르노빌 사고를 언급하며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뒤이어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가압경수로에 대해 화재의 위험이 없으며”,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설계됐을 뿐 아니라, “방사능 차폐 시설은 다섯 겹의 방호벽으로 되어 있어 방사성 물질의 누출을 철저히 차단해 환경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나타냈다. 과거 다른 나라의 원자로보다 우리나라 것이 기술적으로 우월하다는 핵산업계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왔다.

안전성뿐 아니라 국가 주도의 핵발전 추진에 따라 정부 논리를 교과서에 고스란히 반영한 서술 유형은 경제적 측면도 마찬가지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올해 출판한 고등학교 공업과학215쪽에서는 국내 연구용 원자로 기술의 요르단 수출 관련 내용이 폐기물단원의 방사선 폐기물의 처리 방법에서 함께 소개됐다. ‘원전 역사 50년 만에 국산 원자로 첫 수출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는 기술 수출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장밋빛으로 그렸다. 2010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수주한 해당 원자로 수출사업은 최근 핵발전소 부품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성능 검증업체가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의 검증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논란을 빚고 있다. 비슷한 예로, 고등학교 경제지리(지학사)에서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업의 사례가 조선공업에서 원자력발전으로 교체되고 UAE 핵발전소 수출 내용이 실렸다.

이밖에도 고등학교 한국지리(교학사)에서는 동력자원에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이 있다는 내용이 동력자원에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들이 있다. 우라늄은 원자력의 원료가 되며 매장량이 고르고 풍부하여 값이 싸 경제적이다로 수정됐다. 중학교 3학년 기술가정(지학사) ‘원자력 발전과 원자 폭탄 비교단원에서, 핵폭탄에 관한 내용이 삭제되고 대신 방사성 동위원소를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그림설명 : 중학교 <기술.가정2> (교학사, 2013년 발행, 222쪽) :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대해 "최근 원전사고로 인해 더욱 안전한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 방법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하여, 규모의 심각성에 비해 매우 가볍게 서술했다. 뒤이은 내용에서 핵융합 에너지의 안전성과 청정성을 단정적으로 기술했다.

 

찬핵발전 홍보식 교육을 멈춰라

실제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원자력문화재단은 초중등 교육과정 교과서에 대해 매년 각각 309, 240, 269, 271, 161건의 수정 의견을 제출했고, 이 가운데 95, 35, 77, 65, 34건이 받아들여져 이듬해 교과서 내용에 반영됐다. 2007년 수정 의견 제출이 최대 31%라는 반영 성공률을 나타내자 원자력문화재단은, ‘획기적인 발전이라며 이전까지는 어느 기관에서도 교과서 개정의견을 이렇게 받아들여서 이렇게 개선하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스스로를 높이 평가했다.

원자력문화재단이 매년 대국민 홍보사업에 쓰는 예산은 100억 원에 이른다. 그 중에서 교과과정 수정과 교재개발, 교원직무연수, 원자력탐구올림피아드, 원자력페스티벌, 체험전시를 비롯한 차세대 이해증진사업2005~2010년까지 6년 동안 사용한 액수만 179억에 이른다. 지식경제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최근 4년간 원자력문화재단의 원자력 홍보사업에는 총 442억원이 사용된 반면, 반면 신재생에너지센터의 신재생에너지 홍보사업에는 총 119천만원이 사용됐다. 정부가 핵발전과 재생가능에너지 홍보에 대해 매우 차별적으로 투자한 셈이다.

핵발전을 둘러싼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핵발전 안전 신화는 크게 흔들렸다. 원자력문화재단에서 201120122013년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핵발전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40.1%, 34.8%, 43.6%로 이전(71.8%, 2010)보다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핵발전을 찬성하는 여론은 다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이는 사회적 토론이나 합의 과정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핵발전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홍보나 교육적 영향력의 확대가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핵발전이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부지의 확보 과정에서 매번 결정적으로 드러났듯, 핵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은 핵산업계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

원자력문화재단의 일방적 독주를 막기 위한 사회적 감시 운동이 최근 어느 때보다도 가장 활발하다. 20119월 원자력문화재단이 세계원자력대학(WNU)과 공동주최한 국제원자력올림피아드 대회에 대해 위험한 핵 기술의 해외 수출을 장려하는 의도로 청소년들을 이용하고 있다환경운동연합지구의 벗이 비난하고 나섰다. 올해 생명을 구하는 원자력의 매력이란 주제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원자력공모전에 각 시·도 교육청이 후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항의가 이어진 것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원자력문화재단에 전기요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현행 제도를 바꾸기 위한 법 개정도 국회뿐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 토론에 부쳐져야 한다. “자연친화적인 신·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신·재생에너지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을 설립하려는 취지의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서영교 의원 대표발의)이 현재 논의 중이다.

무엇보다 원자력문화재단에 의해 오염된 교과서를 바로 잡고 학생들에게 가치 판단할 수 있는 대안적 교과과정을 만들고, 수업에서 실천하는 일은 교육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시급히 노력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원자력문화재단이 주도하는 교사연수 프로그램과 핵발전소 방문견학과 같이 강요받아왔던 핵발전 안전신화를 학교에서부터 끊어내야 한다.

 

발행일 : 201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