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33주기를 맞아, 1986년 사고 발생 당시 한국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되짚어 봅니다. - 글쓴이 주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1986년 방사능 비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에서 사고가 일어났지만, 이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당시 소련 정부가 보도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선진국들은 핵무기 실험이나 핵전쟁을 우려해 방사능 감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 직후인 4월 27일과 28일 스웨덴과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의 방사능 측정 수치가 최대 6배까지 폭등했다. 체르노빌에서 1천km나 떨어진 곳이지만, 방사성 물질이 날아간 것이다. 스웨덴이 즉각 이 내용을 발표하자 몇 시간 뒤 소련 관영 타스통신이 체르노빌 사고를 공개했다. 국내 언론은 이들을 종합해 4월 29일 일제히 소련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사고를 알렸다.
1986년 5월 3일자 경향신문 7면
하지만 국내에서 체르노빌 사고 소식은 국제면에 한정된 ‘남의 나라 소식’이었다. 외신 기사를 인용해 소련에서 수천 명이 사망한 것 같다는 보도가 나올 때도 체르노빌 기사는 국제면에 국한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사 옆에는 항상 ‘한반도 영향 없을 듯’, ‘국내 원전과는 원자로형이 달라’ 같은 제목의 기사가 빠지지 않고 실렸다.
충북, 빗물에서 방사능 검출
당시 우리나라는 핵발전소를 계속 건설하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은 해외 사고로 국민들이 동요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5월 6일 과학시루부가 충북지역 빗물에서 1리터당 55.5베크렐(Bq)의 요오드가 측정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이 기사에도 건강에는 영향이 없다는 내용이 따라다녔다. 이 수치는 현재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음용수 기준 1리터당 10베크렐을 훨씬 뛰어 넘는 수치다. 언론에는 나지 않았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은 높아졌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고 여파로 각 학교에는 결석률이 부쩍 늘었다”는 내용이 일부 언론에 짧게 소개되는 정도였다.
사업가 안철수에게 기회가 된
체르노빌 바이러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환경운동이 활성화되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를 기억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1996년 한국에서는 체르노빌 10주기를 맞아 다양한 행사가 벌어졌고 반핵운동의 주요한 기념일로 체르노빌 사고일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더 많은 기억을 남긴 사건은 의외로 ‘체르노빌 바이러스’였다.
1985년 5월 1일자 매일경제신문 11면
대만 프로그래머가 만든 이 바이러스는 4월 26일 컴퓨터를 부팅하면 컴퓨터 기본입출력을 담당하는 바이오스(BIOS)가 파괴되는 기능을 갖고 있다. 1999년 4월 26일 약 30만대의 컴퓨터가 피해를 입었다. 마침 그날이 월요일이어서 피해는 더욱 컸다. 파괴된 바이러스는 일반인이 수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전국 컴퓨터 수리점과 백신 업체는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다. 당시는 컴퓨터 보안에 대한 인식이 낮아 백신 업계 1위이던 ‘안철수 연구소’조차 매년 적자에 허덕이던 때였다. 이후 안철수 대표는 체르노빌 바이러스 덕택에 연구소는 흑자로 전환되고 국내 백신 시장이 무려 4배나 커졌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1999년 한바탕 난리를 겪은 이후 몇 년간 4월 26일을 전후로 백신프로그램을 다시 깔았고, 그 덕에 4월 26일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체르노빌 소재로 한 게임
죽음 난무하는 기억
재난 상업화에 대한 비판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수많은 다큐멘터리, 소설, 사진집, 드라마,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체르노빌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는 게임도 있다. 그중 대표작은 2007년 우크라이나 GSC 게임월드가 만든 ‘스토커 : 섀도 오브 체르노빌’이다. 이 게임은 돌연변이, 괴물 등이 나오는 호러게임의 특징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에도 폴란드 게임업체 ‘Farm51’이 체르노빌 사고 당시 실종된 연인을 30년 만에 찾아 나선다는 주제의 ‘체르노빌라이트’를 출시했다.
반핵진영도 기형아 사진 활용
인권 논란으로 사용 자제
우쿠라이나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 전시실 모습. 박물관에는 체르노빌 사고 당시 희생당한 소방관과 군인들의 사진, 그들의 사고 수습 기록이 전시돼 있다. ⓒ이헌석
한때 반핵운동 진영도 방사능으로 인한 다양한 기형아 사진을 홍보물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인권 감수성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면서 이제 탈핵 단체 홍보물에서 기형아를 찾아보기 힘들다. 피해당사자와 가족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우크라이나에 있는 체르노빌 박물관에는 기형아 사진이나 형상은 하나도 없다. 기형으로 태어난 동물의 사체가 딱 1점 있기는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은 목숨을 걸고 사고를 수습했던 소방관·해체작업자들의 모습과 체르노빌 사고로 사라진 마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벌써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지 33년이 지났다.
당신에게 남아있는 체르노빌의 기억은 무엇인가? 그리고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야 할 교훈은 어떤 것일까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탈핵신문 2019년 5월호(66호)
'기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특집2] 일본 유통식품에서 기준치 이상 세슘 검출 (0) | 2019.09.09 |
---|---|
[일본특집1] 후쿠시마에서 출발하는 ‘부흥의 불’ 올림픽 성화 (0) | 2019.09.09 |
한국원자력연구원 60년을 돌아본다 (0) | 2019.05.12 |
[기획] 원자폭탄 피해 한국에서도 현재진행형 (0) | 2019.03.02 |
<10호>교과서를 펴보면, 핵은 안전한 에너지? (0) | 2013.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