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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사용후핵연료 문제,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칼럼

사용후핵연료 문제,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김수진 정책학 박사

 

핵발전이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아직 그 폐기물을 제대로 처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30여 개국 중 최종처분장을 건설하는 국가는 핀란드가 유일하다. 핀란드는 아주 독특하게도 핵발전 사업자가 만든 처분장 합작회사가 책임지고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최종처분장 후보지를 선정했다. 핵폐기물에 대한 오염자부담원칙은 통상 폐기물 처분과 관리 비용에만 적용되는데(물론 이마저도 온전하게 실현되기 힘들다), 핀란드는 전통적으로 오염자부담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하여 핵폐기물 처분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1993년에는 핵발전 사업자가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하자 의회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설 승인을 거부했다. 이후 핀란드 핵발전 사업자는 합작회사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처분장 후보지를 물색했다. 그 결과 2024년경이면 세계 최초로 심지층 처분장 운영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핀란드처럼 핵발전소 사업자에게 사용후핵연료 관리와 처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최근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가 정부에 제출한 권고안에는 임시저장시설의 정의와 건설절차에 대한 법적·제도적 정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그 어떤 책임 있는 대책도 없이 핵발전소를 운영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관행적으로 핵발전소 건설과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를 분리시켜 왔다. 사업자 책임을 정부가 면제시켜 준 셈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핵폐기물 처분장 반대 운동이 매우 거세게 일어났지만, 정부는 이 문제를 핵발전소 건설과 연계시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정부는 선출된 위정자인가, 행정관료인가? 최근 산자부 장관이 2016년까지 월성의 사용후핵연료를 빼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한 적이 있다. 최소한 핵발전소 건설을 책임지는 주무 부처의 수장이 책임을 느끼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보다 책임 있는 방안은 법 규정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처분과 핵발전소 건설을 연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입법부의 몫이다.

 

국회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산자부와 한수원 관계자를 질타하는 말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산업부와 한수원에게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만 할 뿐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써 국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지금까지 하지 않고 있다. 왜 핀란드 의회처럼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발전소를 건설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걸지 않았는가? 법이 없다고? 그 법을 만들라고 존재하는 곳이 국회다. 명문화된 법 규정이 없으니, 산업부는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대로 핵발전소 건설과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분리했고 여전히 핵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는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아 최근에는 신한울 3·4호기 공사계획 인가 기간이 2023년 말까지 연장되었다. 늦었지만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지금 건설하고 있는 발전소라도 운영을 허가할 수 없다는 강력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국회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탈핵신문 2021년 5월(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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