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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내부피폭 인정 않는 원폭 피해 조사


 

원폭 75년 기획 _ ABCC와 내부피폭 


내부피폭 인정 않는 원폭 피해 조사



ABCCthe Atomic Bomb Casualty Commission, 원폭상해조사위원회혹은 원폭상해위원회로 불리는 조직으로서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미군이 1946년 히로시마에 설치한 기관이다. ABCC의 핵심 목적은 소위 초기방사선이라 불리는, 원자폭탄의 폭발 직후 방출하는 방사선이 인체에 끼치는 의학적·생물학적 영향을 조사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전까지는 ABCC의 군사적 성격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각종 매체에서 ABCC를 특집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현재는 ABCC의 군사적 성격에 대해선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ABCC가 조사한 핵폭탄 폭발로 인한 방사선의 영향은 단순히 군사 분야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핵을 이용하는 모든 산업에서 ABCC의 조사를 참조한다. 방사선 피폭은 사실 군사적 측면이나 산업적 측면이나 본질은 같다. ABCC는 한마디로 현재의 방사선 피폭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미국이 일본 히지산에 설립한 ABCC 연구실



지금 원폭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없다

 

19458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츠즈키마사오都築正男라는 도쿄의과대학 교수를 단장으로 해서 조사단을 파견했다. 일본의 조사단은 핵폭탄 폭발 직후 1개월 동안에 나타났던 결정적인 피해 상황, 그중에서도 핵폭탄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살해하는지를 확인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영국의 신문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이때의 상황에 대해 히로시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원폭증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미지의 이유로 아직 해명하지 못한 비참함 속에 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194595일자). 또한 미국의 [뉴욕타임즈]원자폭탄은 아직도 사람들을 매일 100명의 비율로 사망케 하고 있다고 서술했다(194595일자). 미군은 원폭제조계획인 맨해튼 계획의 부책임자였던 토마스 파렐(Thomas Francis Farrell)준장을 96일 도쿄에 파견해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파렐은 기자회견에서 죽어야 할 사람은 이미 다 죽었다. 따라서 9월 초순인 지금 원폭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맨하튼 계획의 미군 최고책임자였던 레슬리(Leslie Richard Groves)99일에 트리니티 핵실험장에서 미국 언론사 기자 30명을 대동하고 핵실험장에 잔류방사능이 남아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때부터 미국의 언론사는 이런 주장을 사실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19459, 미군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합동조사단을 보내 원폭의 의학적 영향을 조사하게 했다. 이때의 책임자들은 육군대령 애슐리 오터슨(Ashley W. Oughterson), 해군대령 쉴즈 워렌(Shields Warren), 맨해튼 공병부대의 대령 스태포드 L. 워렌(Stafford L. Warren) 등이었다. 미국은 일본의 츠즈키마사오를 비롯한 의사와 과학자들 90명 이상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작업을 돕게 했으며, 미국의 전문가는 60명 이상이 참가했다. 당시의 활동에 대해 해군장군 제임스 포러스틀(James Vincent Forrestal)사전조사에서 대략 14천 명 정도의 일본인에 대해 원자핵분열로 인한 방사선 피폭을 조사했다. 이는 방사선의 의학적 생물학적 영향을 조사할 귀중한 기회이며, 미국에게 극히 중요한 내용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은 향후 4~20년 사이에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장차 소련과의 핵전쟁에 대비해야 했다. 만일 소련이 핵공격을 해온다면 얼마나 피해를 보고 살아남아 반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평가가 당시엔 대단히 중요했다. 말하자면 미군의 관점에서 볼 때 원자폭탄의 폭발로 인한 초기효과가 대단히 중요했으며, 잔류방사선으로 인한 만발성효과=내부피폭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1947년에 작성한 최초 보고서에 대해 방사선피폭의 역사라는 책의 저자 나카가와 야스오(中川保雄)미군합동조사위원회가 내렸던 주요한 결론두 가지에 대해 설명했다. “(1)방사선 급성사망에는 문턱선량이 존재하고, 기준치는 1시버트이다. 기준치 이하로는 사망하지 않는다. (2)방사선 급성장애에도 문턱선량이 존재하고, 기준치는 250밀리시버트이다. 기준치 이하의 피폭이라면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나카가와에 따르면 이 같은 결론은 19459월 초까지의 급성사망만을 대상으로 시행한 평가에서 나타난 것이다. 194510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 급성사망은 평가에서 제외했다. 또한, 급성 증상에 대해서도 탈모, 자반, 구내염만을 인정했다. 이는 예컨대 직접 피폭자를 진료했던 의사 히다슌타로(肥田舜太郞)가 밝힌 급성 방사능 증상의 5가지 특징, 즉 고열과 출혈, 부패, 자반, 탈모 중 고열과 출혈을 제외한 것이다.


ABCC1949년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비공식조직에서 공식조직으로 출범하였다. 피폭자들은 당시까지 ABCC가 시행한 피폭자 조사에 대해 치료는 전혀 없고 마치 실험동물처럼 검사만 했다고 증언했다. 즉 피폭자를 지프차에 태워 강제로 끌고 가, 완전히 옷을 벗긴 상태에서 검사를 하였으며, 환자에게 어떠한 의료행위도 제공하지 않았다. 의료행위를 하게 되면 피해의 증거가 남기 때문이었다. ABCC의 최초 보고서인 미군합동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이런 피폭자 검사를 토대로 했다. ABCC는 공식조직 출범을 계기로 다음 해인 1950년부터 본격적인 대규모 피폭자 역학조사를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피폭자 수명연구’(Life Span Study ; LSS)였다. LSS는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조사로서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방호정책의 토대를 제공한 대규모 역학조사이다. 현재는 국제노동자연구(INWORKS, 30만 명의 핵시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역학조사) LSS와 비교할 만한 역학조사가 있으나, 당시 상황에서 LSS는 가장 많은 자료를 확보한 최초의 피폭자 역학조사였다.

 

지금도 국제적으로 영향력 끼쳐

 

ABCC가 수행한 LSS의 자세한 문제점을 모두 언급하는 것은 지면상 불가능하다(독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방사선피폭의 역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다만 필자는 소위 '검은비'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검은 비()는 원자폭탄 투하 직후에 내리는, 원자폭탄 폭발로 인한 진흙이나 먼지, 검댕그을음 등을 포함하고 있는, 중유와 같이 끈적끈적한 성분의 굵은 입자를 함유한 비로써, 우라늄-235 등 방사능을 강하게 방출하는 이른바 낙진을 일컫는다. 히다 슌타로의 증언에 따르면 히로시마에서는 원폭투하 당일 바로 검은 비가 내렸다


검은 비소송지역 피폭자 분포 (출처: 일본 '검은비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검은비는 내부피폭의 주요 원인으로서 호흡이나 음식물을 통해 신체 내부의 내장기관에 들러붙는다. ABCC는 처음부터 검은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ABCC가 이렇게 한 이유는 두 가지다. 1)피해를 축소하고자 하는 점과, 2)내부피폭의 은폐에 있다. (참조 _ 검은비를 통해 피폭자가 된 사람들은 지금껏 원폭 피해를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야 끈질긴 소송을 통해서 비로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점들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자 나중에 미국은 원자폭탄의 선량을 재평가하는 과정에서 검은비의 영향력이 전혀 없었다고 다시 주장하고, 당시 발생했던 마쿠라자키(枕崎) 태풍을 핑계로 제시했다. 19459월에 발생한 태풍 당시 히로시마의 경우 1m의 대홍수 후에, 나가사키에서는 1300mm의 호우 후에 과학자들을 대거 동원하여 측정하였고, 겨우 잔존해 있던 먼지 상태의 방사성 강도를 이용해서 처음부터 방사성 먼지는 이것밖에 없었다라고 발표했다. 이리하여 검은 비는 효과가 전혀 없는 방사성강하물이 되어버렸다.


미국과 일본은 1975ABCC를 해체하고, 이를 계승한 방사선영향연구소(Radiation Effects Research Foundation ; RERF)를 공동출자로 설립한다. ABCC1962LSS 첫 번째 보고서를 발간하였으며, 이를 계승한 RERF는 현재 LSS14번째 보고서를 발간했다. RERF는 지금까지 LSS의 토대가 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내부피폭을 인정하지 않았다. ICRPLSS의 결론을 유일한 기준인 것인 양 인용하면서 합리적 방호기준인 것처럼 주장하며, 자신들의 방호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일본의 반핵 시민단체는 RERF에게 원 자료의 전면공개와 내부피폭 은폐와 피폭자 축소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찬호 한국반핵의사회 운영위원

탈핵신문 2020년 8월(80호)

 

글쓴이 박찬호는 최근 방사선피폭의 역사(나카가와 야스오, 무명인출판사, 2020)를 공동번역해 출간했으며, 생명을 살리는 반핵_내부피폭과의 투쟁,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히다슌타로·오쿠보겐이지,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5) 등을 번역해 출간했다. 1991년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녹색병원 설립부터 실무자로 참여했으며 현재 녹색병원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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