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2) _ 해외 사례를 통해서 본 핵발전소 폐로
기술보다 사회적 쟁점이 더 많은 핵발전소 폐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된 전 세계 원자로 현황에 따르면, 영구 정지된 핵발전소(원자로)는 189기이다. 이는 현재 운영 중인 핵발전소가 440기임을 생각하면, 운영 중 핵발전소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탈핵 정책 영향도 있지만, 1950년대부터 시작된 핵발전소의 역사를 고려할 때 노후핵발전소가 많기 때문이다.
일률적인 폐로비용 산정 어렵다
핵발전소는 초창기 모델부터 최근 모델까지 크기와 종류가 다양해서 폐로는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최초의 핵발전소인 러시아 오브닌스크 1호기는 설비용량이 5MW에 불과하지만, 가장 최근에 영구 정지된 프랑스의 페셈하임 2호기는 880MW 용량이다. 폐로할 핵발전소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은 해체비용이나 발생할 핵폐기물의 양, 투입할 기술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폐로 과정은 원자로형도 중요한 변수다. 1960년대 영국과 독일에서 개발된 가스냉각로는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하여 이를 제거하는데 높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동일원자로가 여러 개 있을 경우, 같은 공법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으므로 폐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무시한 채 핵발전소 폐로 비용을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폐로 둘러싼 사회적 쟁점
핵발전소 폐로 과정에서 폐로 비용이나 기술적인 문제 이외에 많이 지적되는 것이 폐로를 둘러싼 사회적 쟁점이다. 핵발전소 폐쇄 이후 사라지는 일자리와 지자체 수입문제, 핵발전소 운영 중 나왔던 지역지원금 소멸과 지역경제 침체 문제는 핵발전소 폐로에서 큰 쟁점 중 하나다. 이는 대부분 핵발전소가 인구밀도가 적고 지역경제가 활발하지 않은 곳에 설치되는 점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 미국의 폐로중이거나 폐로 완료된 핵발전소 지도 (출처 : 미국 핵규제위원회)
또 다른 쟁점은 핵발전소 해체 과정의 안전성 문제다. 해체 과정에서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피폭노동과 해체 폐기물처리 방식을 둘러싼 안전성 검증 논란이 계속 제기된다. 특히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토양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복원할 것인가라는 점이 중요한 쟁점으로 제기된다. 어떤 용도로든 사용할 수 있는 ‘비제한적 사용’을 고려한 복원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지만, 산업 용지나 발전소 등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준을 조정하면 복원비용과 시간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뜨거운 쟁점, 사용후핵연료 보관문제
미국, 폐로 10곳 중 7곳 기존부지에 저장
다양한 쟁점 중 가장 큰 것은 사용후핵연료의 보관문제이다. 현재 전세계 어디에도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이 운영되는 나라가 없으므로 이를 어디에 보관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다.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를 해체하지 않을 경우, 폐로는 완료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저장 장소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세계에서 핵발전소 해체가 가장 많이 이뤄진 미국의 경우, 폐로가 완료된 10곳 중 7곳은 폐로 이후에도 기존부지 안에 사용후핵연료 독립저장시설(ISFSI)라는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여 관리하고 있다. 3곳은 인근의 다른 부지로 사용후핵연료를 옮겨놓은 상태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경우, 폐로를 통해 완전히 핵시설이 철거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을 둘러싼 논란은 어디나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는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노후핵발전소가 본격적으로 폐로되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어질 국내 핵발전소 해체를 두고 해체기술을 둘러싼 논쟁 이외에 폐로 과정에서 벌어질 다양한 사회적 쟁점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핵발전소 해체 용어풀이
《영구정지, 해체, 폐로》
가동이 끝난 핵발전소는 먼저 영구 정지(permanent shutdown) 절차를 밟는다. 영구정지는 더이상 핵발전소를 가동할 계획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영구정지 절차에 돌입하면, 원자로와 핵연료를 안전한 상태로 유지하는 조치가 취해진다. 폐로(decommissioning)는 규제기관의 규제가 해제되는 행정적·기술적 행위를 말한다. 핵물질을 사용하는 핵발전소 내부는 항상 원자력안전위와 같은 규제기관의 관리·감독을 받기 때문에 차폐 격리 방식을 제외하고는 해체 과정이 필수적이다. 해체(dismantling)는 말 그대로 설비를 철거하는 과정을 말한다. 엄밀히 말해 폐로와 해체는 별도의 과정이지만, 국내에서는 철거와 규제, 해제과정을 통틀어 해체라고 부른다.
《핵발전소 폐로 방식》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핵규제위원회(NRC) 등은 핵발전소 폐로 방식으로 △즉시 해체, △지연 해체, △차폐 격리 등 3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핵발전소가 영구 폐쇄된 직후 오염된 설비와 건물을 해체하는 즉시 해체는 최근 많이 선택되고 있다. 즉시 해체의 경우에도 해체 설계와 해체 실행, 복원 등에 15년 안팎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지연 해체는 일정 기간에 핵발전소를 폐쇄한 이후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 방식을 택하면, 반감기에 따라 방사성 물질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위험성이나 핵폐기물의 양이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 다만 오랫동안 규제 감독을 해야 하며, 해당부지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해체비용이 부족하여 지연 해체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차폐 격리는 핵발전소 설비를 전부 제거하지 않고 콘크리트 등으로 매립하는 방식이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대표적인 차폐 격리 방식이다. 폐로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해당 국가 규제기관이나 사업자의 판단에 따른다. 원자로의 상태나 재정 상태, 기술적 어려움도 해체 방식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폐로 중인 19기의 핵발전소 중 10기는 즉시 해체, 9기는 지연 해체 방식을 택하고 있다. 복수의 핵발전소가 위치한 곳에서는 여러 기를 모아 해체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해체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이헌석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0년 7월(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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