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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피폭 75, 이어지는 검은 눈물’

원폭 75년 기획 _ 2020 합천비핵평화대회 참가기


‘피폭 75, 이어지는 검은 눈물’



85일 이른 아침 서울 남부 터미널에서 일찍 출발해 거의 4시간 만에 도착해 걸어서 합천평화의 집 근처 사랑채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서 가까운 합천종합사회복지관으로 들어갔다. ‘피폭 75, 이어지는 검은 눈물이라는 주제가 눈길을 끈다. 참석 예정자 명단을 확인하고 입장했다. 대강당에서 1부에 해당하는 비핵 평화 문화마당이 시작되었다. 합천군수 등 내빈의 인사로 시작해 1세인 심진태 합천지부장의 증언에 이어 2세인 한정순 전 원폭 2세 환우회장의 증언이 이어졌다. 절절하시다. 여성으로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 오셨기에 더욱 그러리라 싶다.


원폭피해 75년을 맞아 합천원폭피해자협회 등은 제9‘2020 합천비핵평화대회를 열고, 86일 한국인원폭희생제 위령각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합천평화의집 



토론1 _ 합천 세계비핵평화공원 조성 방향과 내용

 

2부인 이야기 마당에서는 첫째로,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의 원폭피해자를 위한 세계비핵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발표가 있었다. 오랜 과거사 관련 활동을 해 온 경력답게 1931~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총동원된 민중이 전쟁 기간에 겪어야 했던 수많은 피해와 희생을 소개하면서 미국에 의한 원폭피해라는 이중적 피해 시각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한국의 피폭자는 일본 피폭자와 달리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역사적 산물이고 1965년 한일협정에서도 배제된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고, 피폭 후유증에 따른 고통에도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당했으며,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면서 이것이 대물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혜경 연구원은 피해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기념시설을 조성하는 것은 원폭 피해를 기념하는 기존의 일본 시설과 유사점과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비핵평화공원은 원폭 피해자의 기념시설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핵전쟁의 위험을 알리고 한국인 피해자를 통해 반전평화의 길을 제시하는데 필요한 공간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2009년 합천군이 마련한 ‘(가칭)세계비핵평화공원 조성계획안이 장소를 특정해 놓은 점은 지적했다. 공원 조성은 무엇보다 먼저 원폭 피해자 사이의 합의, 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마지막으로 장소 문제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원 조성 목적을 역사 정립, 정체성과 명예회복, 국내외 인식의 확대와 지원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 한반도 비핵평화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또 입지선정 기준으로 상징성·역사성·보편성·접근성이라는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합천이 유일한 피폭자 지역이 아니고 남한 전체와 이북출신 동포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주장에 대해 토론자인 김진태 지부장은 2009년 합천군이 제시한 평화공원 안에 기초해 원폭 피해자의 다수가 거주하는 영남지역의 합천이 되어야 할 당위성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반발하기도 했다.

 

토론2 _ 피폭1,2,3세 코흐트 구축과 유전체 분석연구

 

두 번째 발표자인 한양대 박보영 교수는 피폭 1,2,3세 코호트구축 및 유전제 분석연구라는 발표문에서 그동안 한국 피폭자에 대한 조사가 특별법 제정 이전부터 산발적으로 조사가 진행되다가, 특별법 제정 이후 2018~2019년 조사가 되면서 피해자와 피해 자녀들에게서 유의미한 차별화된 병 증세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미 1세 및 2세 피폭 사망자가 많아 너무 늦은 조사임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코호트(집단) 구축을 통한 유전체 분석은 전례 없던 새로운 조사이기에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특히 개인이 아닌 가계)를 조사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원폭 피해자가 본인과 후손의 질병 발생에 미치는 인과성 파악과 유전적 영향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며, 사망자까지 포함해 1~3세 사망자 가족을 포함한 전체 가족의 질병 발생과 사망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조사는 원폭 노출 피해와 질병과의 인과성 파악을 위해 5년에 걸친 피폭 3대 가족에 대한 체계적 조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토론자로 나온 이태재 원폭피해자후손회 부산지부장은 20여 년간 한일 피폭 2세 교류활동을 해 왔고 일본 방사능 연구소 등에서 여러 차례 조사했지만, 결론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세인 아버지가 평생 고통 속에서 살다 돌아가셨고, 2세로서 본인이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각종 질병과 약물에 의존하며 살아온 자신을 소개했다. 결혼 후 자식들이 태어난 후 아버지로부터 피폭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김형률의 사례 등 이미 조사 연구를 통해 드러났지만, 미국과 일본은 피해보상과 책임 문제로 외면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사 모집단 선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모집단 추출 희망자를 모집해 구성하면 보다 신뢰성과 정확성을 높일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두 번째 토론자인 김정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이자 청주의료원 환경의학과장은 이번 코호트연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잃어버린 75년을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현재 피폭자로 등록된 수가 적어 일본에서의 조사결과에 비해 한계가 있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의 수명(6.6)과 건강생활을 하는 사람의 수명(11.3)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제시하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각종 질환과 흡연 등 생활습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조사에 잘 반영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연구와 함께 코호트연구 참여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심리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며 정부와 지자체는 피해자에 대한 의료비 및 생계비 지원, 여가/의료복지/전담의료기관의 개설과 확대, 보건소 지정병원을 통한 가정방문서비스 제공 등 건강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사업을 조속히 진행해 달라고 촉구했다.

 

토론3 _ 전국 원폭피해자지원조례 현황과 내용

 

세 번째 발표자인 이대수 아시아평화시민넷 대표이자 경기도원폭피해자지원위 부위원장은 원폭피해자 지원과 연대를 위한 지역활동 방안이라는 주제로 한국에서 민주화가 진전되고 지방자치가 시행되면서 대구와 합천 등 피해자가 있는 지역에서 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수도권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사실을 통해 각 조례의 특징 성과와 한계를 제시하였다.


최초로 2002년 조례를 제정한 대구 동구(2002년 제정 2008년 개정)의 경우 피해자를 1세로 한정했지만, 원폭투하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는 의의가 있다. 2011년 제정한 경남의 경우 광역지자체로서는 2,3세를 포함했고 지원계획을 매년 수립하도록 했으며, 경남발전연구원을 통해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심리치료서비스를 시작한 의의가 있다. 2017년 제정한 대구시의 경우 2019년 개정을 통해 2,3세를 포함하도록 했다. 2019년 제정한 부산은 피해자 등을 위한 인권·평화 교육을 할 수 있게 했으며, 2020년부터 월 5만 원의 요양 생활수당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20197월 조례를 제정한 경기도는 원폭투하 책임이 미국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고, 심의 자문 성격의 지원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의무규정으로 했으며, 지원센터 운영위원회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201912월에 조례를 제정한 인천시는 경기도와 유사하며 제정이 늦어지고 있는 서울시도 조만간 조례제정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피해자 활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원폭 피해자 2세 김형률의 불꽃 같은 활동으로 2세환우회가 태동하여 한국사회가 원폭2세 피해자에게 관심 두게 되었으며 이제 1세 중심에서 2,3세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또 합천을 비롯한 영남지역 중심에서 수도권으로 활동이 확산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대수 대표는 핵무기금지 캠페인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ICAN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세계적인 반핵/탈핵운동과 연대하는 것이 지구적인 핵무기금지 운동에 적극 나서는 길이 된다고 했다.


토론자로 나온 이남재 합천평화의 집 운영위원장은 2005년 국가인권위, 2013년 경남발전연구원 최근 보건복지부 등 여러 실태조사에서 2,3세 원폭피해를 인정하면서 조례에 2,3세를 피해자로 인정하는 전향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드러냈고, 2013년 경남이 시작한 심리치료서비스가 원폭 피해자들에게 필수적이라며 각 지역에서 진행되기를 기대했다.


6일 아침 합천 원폭피해자복지관 위령각에서 시작된 추모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인원통제로 조심스럽게 진행되었으며, 일반 추모보다 제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대수 아시아평화시민넷 대표

탈핵신문 2020년 8월(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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