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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6호> 자민당의 압승과 일본탈핵운동의 과제

자민당의 압승과 일본탈핵운동의 과제

다카노 사토시(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


20121216, 일본 중의원 총선 결과, 민당이 294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공명당의 의석(31)과 합쳐 325, 전체의 2/3를 넘는 거대 연립여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편,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57개 의석으로 파멸적 패배를 당했다.

탈핵운동이 고조된 이후의 총선이었는데도 왜 핵발전을 추진하는 자민당이 압승했는가? 일본 탈핵운동의 후퇴와 국민의 관심 저하를 의미하는가? 이번 선거결과를 분석하며 일본 탈핵운동의 과제를 찾고자 한다.

선거제도 결함이 초래한 자민당 압승

  자민당의 압승은, 국민의 지지가 아니라 소선거구 비례대표제(소선거구 의석 300, 비례대표 의석 180)라는 잘못된 선거제도 덕택이었다. 실제 득표수를 보면 자민당은 지난 2009년 총선에 비해 비례대표에서 219만 표가 줄어 1622만표, 소선거구에서도 166만 표가 줄어든 2564만 표였다. 득표율은 각각 27.6%43%로 약간 높아졌지만, 참패를 기록했던 지난 총선보다도 득표수 자체는 줄었다. 그런데 이번에 소선거구에서 자민당이 자치한 의석은 237석이다.

다시 말해, 43% 득표율로 79% 의석을 잡았다. 59.3%라는 패전 후 최저를 기록한 투표율에다 소수의 특정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강력한 인물하에서는 막강한 세력의 정당이 되었다가도 그 인물이 사라져버리면 정당도 함께 사라져버리는 포말정당(泡沫政黨)이 난립했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와 지지가 낮은데도 조직력이 있는 자민당이 소선거구에서 이길 수 있었을 뿐이다. 사실 소선거구에서 사표(死票)는 약 3730만 표로, 56%에 달했다. 과반수의 민심이 소선거구 투표 결과에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모든 정당 탈핵표명, 큰 차이 없어……

핵발전 정책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당이 탈핵을 내세웠고, 이것이 탈핵을 가장 중요시하는 유권자들의 표를 분산시킨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마저 후쿠시마에서 탈원전!’이라는 전단을 배포했을 정도다. 물론 꼼꼼히 각 정당의 탈핵정책을 검토해 보면 그 차이를 찾을 수 있지만, 대개의 국민들에게 결국 모두 다 탈핵이네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한편, 실제로는 탈핵이 쟁점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디플레이션 불황과 개선되지 않은 고용으로 인한 어려운 생활, 게다가 한국 및 중국과의 외교관계 악화, 북한 미사일실험이라는 불안 등, 핵 추진파지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일본개혁을 표방하는 자민당이나 일본유신회에 표가 모였다는 것이다. 1213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투표 시 중시하는 것은?’라고 삼자택일의 질문을 하자, 61%경기대책’, 16%탈원전’, 15%외교 안전보장이라고 답했다.

자민당 압승해도 민심은 탈핵?

탈핵 진영에서는 이번 자민당 압승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미래당의 이이다 데츠나리 전 대표대행은 핵발전추진정당(자민과 유신)2890만 표에 비해 탈핵정당(민주, 공명, 민나노, 미래, 사민, 공산)3050만 표로 역시 국민은 탈핵을 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자민당이 압승했으나, 전체 득표수를 보면 국민이 탈핵의 뜻을 보였다는 견해를 밝혔다.

탈원발신문의 니시오 바쿠 편집장도 자민당정부가 돼도 그렇게 쉽게 핵발전 추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원자력규제위원회도 오히려 독립성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발전소 주변지역의 범위가 크게 확대됐기 때문에 주변지자체가 핵발전소를 포위해서 재가동하지 못하게 하는 게 필요하고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올 7월이 돼야 핵발전소 재가동을 위한 새 기준을 만들고, 그 후에도 1년 정도 심사를 거쳐야 하므로 자민당정부가 출범해도 곧 재가동할 순 없을 것이다. 가령 원자력규제위원회를 무시하고 재가동하려면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질 것을 자민당도 우려할 것이다. 이 자체가 고조된 탈핵운동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자민당정부 아래에서, 향후 탈핵운동의 과제

그렇다고 낙관할 순 없다. 자민당의 압승에는 소선거구제라는 제도적 결함 외에도, 탈핵시위라는 고조된 거리의 정치에도 불구하고 정당정치 차원에서 충분히 뭉쳐서 싸우지 못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총리관저 앞 탈핵시위는 여론을 가시화하기 위해 재가동 반대라는 개별 이슈를 따랐다. 그 결과 재가동 반대라는 단순하고 쉬운 메시지 덕분에, 반원전운동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일본 시민들의 참가를 쉽게 해, 탈핵운동을 대중화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발전 문제가 전 사회적 이슈로서 노동문제, 군사문제, 산업구조문제, 도시와 지역의 격차문제 등 다양한 문제와 얽혀있는데도 재가동 반대만을 외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나는 거리에서 펼쳐진 탈핵시위가 여러 단체들, 투쟁의 현장과 폭넓게 연대하지 못하고, 정책적으로도 깊이 있는 운동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마지막으로 향후 일본 탈핵운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단초가 될 만한 내 친구의 말을 소개한다. “20125월부터 약 두 달 동안 모든 핵발전소가 가동을 멈췄다. 그렇다고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재가동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시 말해 핵발전 없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는 일본 사회의 변화를 실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핵발전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하나하나 캐내고 각계각층 사람들과 토론을 거듭하고 연계하면서 핵발전이 없어짐에 따른 변화를 예감하게 해 주는 운동, 핵발전이 없는 세계가 지금보다 훨씬 좋은 사회라는 상상을 하게 해 주는 운동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결국 경기를 회복시켜서 생활을 안정하게 한다’, ‘외국의 위협에 의연하게 맞서는 강한 일본이라는 헛된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욕망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발행일 : 20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