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새롭게 하고, 탈핵으로 한 걸음 나아가자
야마구치 유키오(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
새해를 맞았지만, 그것을 축하하는 마음보다 긴장감과 기대가 더 큽니다.
작년 1년 동안 시민·주민들의 다양한 행동으로, ‘핵발전 그만두자’라는 시민·주민들의 의지는 흔들림이 없고 또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새해에 요구되는 것은 핵발전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방법과 과정입니다.
3·11 후쿠시마사고에 대한 네 개의 조사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그 어느 보고서를 봐도 과학적·기술적인 상세사항이 아직도 해명되지 못했지만, 핵사고로 인해 후쿠시마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자비하고 극심한 어려움을 강요받은 상황, 그리고 아직도 평안을 얻지 못하고 얻을 수 있는 전망도 서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한편 정부·관료와 추진파의 대응을 보면, 그들이 후쿠시마사고의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있는지 의심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5명 중 3명이 핵마피아인 새 원자력규제위원회 출범은 괴상하고, 그 심의내용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핵마피아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완고한 자세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경제지상주의가 강고하게 일본 지도자층에 존재하고 있는 장면을 여러 번 볼 수 있었습니다.
3·11 후쿠시마사고의 교훈
누가 봐도 분명해진 중요한 점 중 하나는, ‘핵발전은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비로소 성립되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런 사고는 일본열도 위에 핵발전소가 있는 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내일은 내가 그 사고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사고의 혼란 속에서 목숨을 잃고, 방향도 모르고 오직 도망 다니고, 가족이 흩어진 상태가 일상화되고, 어린이도 어른도 건강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부들부들 떨고,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노동자들이 피폭을 은폐당하면서 일하고, 방사능·방사선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고.
60년 전 꿈의 에너지라고 핵발전에 기대를 걸었던 과거가 있었음을 인정한다고 칩시다. 그 이후 시행착오와 나름의 경험을 거듭하면서, 결국 핵발전은 제어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희생의 시스템’이라는, 핵발전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모순이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안전을 위한 규제당국이, 점점 기업의 ‘포로’가 되어 버린 과정이 일본국회사고조사보고서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핵마피아가 된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학문’의 깊이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를 위해서’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면, 그러한 ‘학문’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민·주민들이 안심하고 사는 것을 희생시키는 점에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일본 교육의 존재방식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핵발전소사고는 우리에게 그것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안전기준’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세계 제일의 안전기준을 만들겠다. 그 기준에 따라 재가동을 결정하겠다는 것이 정부와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주장입니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후케타 도요시 위원을 팀장으로, 외부에서 전문가 6명을 초빙해 안전기준 검토팀을 구성해, 서둘러 새 안전기준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이 팀 멤버를 보면 6명 중 무려 4명이, 규제를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명백합니다. 이들이 후쿠시마사고를 반성하고 있는 언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핵산업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고, 핵마피아의 일원이 된 이들이, 핵산업 기업의 주장을 심사하는 기준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규제당국이 기업의 ‘포로’가 됐다는 잘못을 또다시 반복할 것입니다.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를 생각했을 때, 이번 후쿠시마사고는 무엇이 원인이고, 어디가 어떻게 파손됐는가가 밝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큰 쓰나미가 원인이었다는 단 한 마디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국회사고조사보고서는 지진이 첫 번째 원인이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명기해 두었습니다. 땅 위에 1500개, 해저를 포함한다면 그 몇 배가 되는 활단층 투성이인 일본열도에 사는 우리에게, 지진이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또 ‘진원을 단정하기 어려운 지진에 대한, 지진규모 예측’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핵발전에 신중한 지진학자가 참여하지 않는 검토팀은 믿을 수 없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자로를 비롯하여 배관, 펌프, 밸브, 계측기, 통신계통 등 모든 기기 재료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만약을 대비한 방재대책은 가능한가,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선 국가의 존재방식부터 바로잡아야
에너지정책을 어떻게 하는가는, 국가가 어떤 방식과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공업화를 더 추진하는 종래 노선으로 갈지, 또는 농업을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나라를 지향할지, 전력을 다한 토론 끝에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본학술회의가 원자력위원회의 요청을 받고, 2년간의 신중한 논의 끝에 2012년 9월에 공개한 ‘회답’을 높이 평가합니다. 원자력위원회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지층처분에 대한 시책에 대해,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정보를 제공하면 좋을까를,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있는 일본학술회의에 제언을 의뢰했었습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일본이 기존 핵정책을 계속 추진할 경우 반드시 생기는 것으로, 그것을 버릴 장소를 결정 못해 그들은 매우 난처했었습니다.
일본학술회의의 ‘회답’은 원자력위원회의 요청을 근본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문제는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정책을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추진하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할 곳을 결정하고 싶어하는 사고방식에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핵정책 그 자체을 재검토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정책은 국가의 존재방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후쿠시마핵사고를 겪은 오늘, 일본이 주민·시민 주체의 나라가 될 것인가, 또는 패전 후 일관되게 경제성장만을 목표로 해 온 재계·관료 주도의 나라를 답습할 것인가를 토론해야 할 것입니다.
근원적 변화가 시작됐다
우리는 그 동안 경제산업성 기본문제위원회 회의를 방청하고 자세히 검토해 왔습니다. 우리 원자력자료정보실 반 히데유키 공동대표를 비롯해, 핵발전에 비판적인 위원이 3분의 1을 차지하며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위원회가 시작되고 보니, 이미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위원장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관료들과 정부의 뜻일 것입니다. 사무국을 어떤 사람들이 담당하는가, 위원장 또는 좌장을 누가 하는가가 위원회의 앞날과 결론을 대부분 결정해 버립니다. 위원 인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원자력위원회가 구성한 새로운 대강책정회의[新 大綱策定会議]의 논의가 주민·시민의 뜻과 유리된 채, 후쿠시마사고를 경시하며 멀어져가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기본문제위원회도 원자력위원회도 꼼짝못하게 되었습니다. 느리기는 하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사고는 발생한 지 1년 9개월이 지났는데도, 수습될 전망이 서지 않습니다. 그 사고의 책임문제를 소홀히 해 놓고 다음을 말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압도적 다수의 시민·주민들이 핵발전을 그만두자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잘 가라, 핵발전 1000만명 서명’ 운동과 17만명이 모인 집회와 데모, 금요일마다 열리는 시위, 각지의 재판소송, 공부모임, 탈핵법 제정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톱니바퀴가 확실히 돌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사고로, ‘전문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주민들이 사회의 존재방식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시대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모습을 후쿠시마사고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같습니다.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 통신 제463호(2013년 1월 1일)에서 전재.
고노 다이스케 편집위원 번역
발행일 : 20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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