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한빛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 위한 원불교대책위'가 2012년부터 만 7년 넘게 2만리(8052km)를 걸었다. 이는 탈핵을 향한 여정이며, 원불교대책위는 지난 11월 26일 생명평화순례 7주년 행사를 했다.
원불교대책위 첫 탈핵 순례는 2012년 11월 26일 시작해 영광군청에서부터 영광핵발전소까지 22Km를 걸었다. 당시 한빛핵발전소에서 불량 부품이 잇따라 발견됐고, 강해윤 교무가 처음으로 생명평화순례를 제안했다.
이때부터 시작한 탈핵 행진이 366회를 맞이했다. 대책위는 영광핵발전소 6기를 영구정지하고, 남한의 모든 핵발전소와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와 핵발전이 사라지는 날을 염원하며 매주 월요일 순례를 이어가고 있다.
탈핵순례를 처음 제안했던 강해윤 교무가 7주년을 맞아 쓴 글을 전한다. 강해윤 교무의 글은 영광지역 탈핵운동의 한 역사이기도 하다.
생명평화순례 7주기에 부쳐 / 원불교 강해윤 교무
종교성지는 단순하게 기념할 만한 장소로써가 아니라 그 이상의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성인의 위대한 깨침에 다가가려는 후예들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장소이며 그곳을 통해서 늘 마음에 모시고 사는 위대한 성인의 발자취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고 있는 지극히 종교적 의미를 가진 장소가 성지이다. 성지에는 여러곳이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성지는 그 분이 태어나신 곳이다.
전남 영광은 바로 그런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길룡리라는 산태극 수태극을 이룬 신비감이 도는 원불교 영산성지는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진 원불교의 근원성지이다. 그러나 무슨 운명인지 이곳으로부터 불과 7Km에 영광핵발전소가 있다는 것이 비극이다. 이 영광원전은 1986년 8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1호기를 비롯해서 6기의 핵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사고와 고장으로 말썽 많은 발전소이다.
1986년 4월은 인류역사에 끔찍하게 기록될만한 핵사고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일어난 해이다. 그로부터 불과 몇개월후에 우리는 영광에 핵발전을 개시하면서 그런 구식과는 다르다며 자신 만만해 했다. 그해 여름 영광에서 반핵집회가 열리고 연사로 등장한 광주공해추방운동 대표였던 김현 교무는 핵발전은 안된다고 힘차게 외치며 반핵의 깃발을 높이 치켜 들었다.
그로부터 줄기차게 계속 이어온 반핵운동은 영산성지를 지키는 김현 교무가 대표적인 인물이 되고 강대훈 원불교대학생연합회 회장이 "내릴 수 없는 반핵의 깃발"이라는 구호로 나타나기도 한다. 거기에 영광지역 주민들과 함께 영광지역 교무들이 끊임없이 반핵운동을 확장해가며 '원불교천지보은회'라는 환경조직도 만들어 낸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반핵운동의 불이 번진 것은 2002년 노무현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된 중저준위 핵폐기장 부지선정과정에서 영광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본격화한다. 김성근 교무의 38일간의 단식으로 대표되는 원불교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2003년 벽두를 노무현정부인수위에서 반핵집회를 여는 것으로 시작해서 내내 줄기차게 싸웠다. 그러다가 엉뚱하게 부안으로 불이 번졌고 그곳은 김인경 교무를 비롯한 원불교인들의 역할이 빛났다.
우리가 눈물겹게 만들어낸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서 핵폐기장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실밍감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어쩐지 오늘의 문재인 정부가 다시 그 모양을 하고 있으니 역사의 반복이라고 해야하나?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건제한 핵마피아들의 힘이라고 해야할지? 그보다는 분명한 탈핵정책을 갖지 못한 문재인정권에게 아쉬움이 많다.
내 생애 가장 투철하게 싸웠던 2003년 탈핵운동은 성지수호라는 비판에 가리워져 버렸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외쳤다. 원불교성지만 아니라면 된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고 이 땅 어디라도 핵발전은 안된다고 했으며, 자기 앞마당도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어디에서 반핵운동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 하지만 그건 변명처럼 묻히고 말았다. 그때 느꼈던 조직에 대한 실망감이 '원불교천지보은회' 사무처장을 내려 놓게했고, 이어서 몇년 후에 '원불교환경연대'를 만드는 기연이 되었다. 운동조직은 그 사상에 맞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지들과 가장 단단한 운동조직을 만든것이 원불교 환경연대였고 대표도 맡아 했다.
그러던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를 보며 경악했다. 우리가 가상으로 이야기 했던 사고상황이 실재로 일어난 것이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며 저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말했다. 역시나 지금까지 멈추지 않은 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몸서리치게 끔찍하다 그게 영광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의 성지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우리가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까? 영광에서는 그런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 원불교환경연대는 곧바로 영광으로 달려갔다. 2012년이 되자 21개의 대한민국 핵발전소들이 얼마나 부실덩어리였는지가 속속 들어나기 시작했다. 10년동안 반핵운동이 잠잠한 때 썪을대로 썪은 핵마피아들과 핵발전소는 각종 사고와 고장을 은폐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환경, 노동, 교육 등 시민사회단체 100여 개가 모여 전국조직으로 '탈핵공동행동'을 조직하고, 우리 원불교는 영광 핵발전소를 전담하기로 하고 영광으로 내려 다녔다. 불행하게도 영광핵발전소는 가장 부실이 심한 핵발전소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영광공동행동과 원불교환경연대가 출범하여 함께하면서 계속 지원을 다녔다.
2012년 10월에는 언론에 공개된 사고 은폐를 항의하기 의해 며칠간 발전소 인근의 홍농교당에 기거하면서 발전소 앞으로 아침 출근피켓시위를 하러 다녔다. 그러다가 생각하기를 영광에서 탈핵운동을 상시적으로 할 방편으로 탈핵순례라는 것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무엇인가 우리 운동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면서 지속할만한 것으로 순례라는 걷기방식을 선택했다. 일종의 켐페인을 벌이기 위한 자기 희생을 하자는 제안에 동지들이 호응해주었다. 그러나 염려 해주는 사람들은 출구가 없는 운동을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걱정도 해주었다. 제일 먼저 건네온 질문은 "언제까지 할 거냐"였다. 핵발전소가 꺼지는 날 까지라고 대답했다. 그게 내가 살아 있을때가 아니라면 누군가 계속 이어갈 것이고 우리가 못하고 가면 다음세대까지 이어질 거라고 대답했다.
첫 순례는 2012년 11월 26일 월요일에 영광군청에서 깃발을 들고 22Km를 걸어서 영광원전 정문까지 가는 거였다. 오전 10시반 출발기도를 시작으로 한시간 정도를 걷고 10분을 쉬며 총5시간을 넘게 걸었다. 점심은 길에서 간단한 김밥을 먹었다. 그로부터 우리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영광군청 앞에 모여 기도하고 걷고 외치는 고난의 순례가 반복되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탈핵순례에.참여하였고 탈핵순례는 모든 일정에 최우선순위로 자리매김해 갔다. 원불교 교무들은 단회를 년1회 거의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했으니 거기 오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매주 월요일 탈핵을 외치며 하루 온종일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걷는 기도를 온몸으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소중한 신앙체험이 되었다.
일흔의 청년 길산 이성광님은 맨 앞자리에서 깃발을 들고 걸어주셨다. 호르라기맨 구동명 교무, 김기성 교무, 오광선 교무, 김선명 교무, 송원근 교무와 지원팀으로 활동해준 서원조 교무, 하상덕 교무, 오종원 교무, 최경수 교무, 영광지역의 황대권 대표, 윤금희 교수, 서울에서 달려와 주는 환경연대 이태옥 처장, 조은숙 처장, 김복녀소장 등과 일본 독일 등 외국에서도 참여해주었다. 영산선학대학교 학생들은 년중 행사가 되었고, 영광을 비롯한 광주전남의 교무들과 환경시민단체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다. 현지 영광교구장으로 김정심 교무, 이선조 교무는 언제나 함께 기도하며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만 7년 366회 동안에 참여한 분들은 수도 없이 많다. 매주 탈핵순례의 기록은 탈핵레터와 네이버 밴드에 기록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총망라한 기록서가 나올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이 순례를 통해서 탈핵운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관심을 집중하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한빛 1호기의 조기폐쇄와 3~4호기의 조기폐쇄를 넘어서 영광핵발전소 6기를 영구정지하고 이것이 파급되어 남한의 모든 핵발전소와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와 핵발전이 사라지는 날을 염원하며 한발 한발 순례의 걸음을 떼고 있다. 걷는다고 핵발전이 없어지겠냐만은 없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걷는다.
김복녀 통신원(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 소장)
탈핵신문 12월(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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