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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자

∥칼럼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자


김수진 정책학 박사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검토하는 위원회가 2013년에 이어 2019년에 다시 꾸려졌다. 재검토위원회가 구성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공론없는 공론화라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2013년에 꾸려진 위원회처럼 정부 주도로 일방적으로 공론화 절차가 수행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공론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재검토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월성핵발전소의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소 포화 시기가 더욱 가까워지자 실상은 뾰족한 수가 없는 가운데 딜레마 상황에 빠진듯하다.

문제가 복잡해 보이고 해법 찾기가 어려울수록 본질을 보자. 이 문제의 본질은 핵에너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겠다고 결정한 국가가 그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40년의 시간을 흘려보낸 뒤,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의 포화가 임박하여 우선임시저장소를 확대하는 데 동의해달라고 부지 지역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있다.

1998년 정부의 계획은 2016년까지 중간저장소를 건설하여 원전 부지 내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옮기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산자부 장관은 유감을 표명했다. 중간저장소를 왜 계획대로 건설하지 못했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책임진 정부 부처나 정치인은 있었던가? 처음부터 반핵환경단체는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논의는 핵발전소 건설 문제와 연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핵발전소 이용의 핵심 전제조건임에도 우리사회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20년여 년째 국회의원은 국정감사 때마다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해 그저 말로만 무책임하게행정부와 한수원을 질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핵발전 확대 기조 속에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무책임하게미루었고, 박근혜 정부의 공론화위원회는 2051까지 핵폐기물 최종처분장을 건설하고 이를 위해 2020년까지 부지조건과 유사한 곳에 지하연구소 부지를 선정한다는 비현실적 로드맵을 무책임하게던지고, 핵발전소 부지 내에 단기저장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이제 이 정부는 어떤 공론을 진행하려고 하는가? 핵폐기물에 대한 진정한 공론은 임시저장소 건설을 승인받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지금까지 얼마나 무책임하게 핵에너지를 이용해왔는지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지금 핵발전소를 신규로 건설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며, 핵발전소 해체산업 시장이 블루오션이라는 말의 성찬에 앞서 당장 고리 1호기 해체도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곳이 없으면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책 없이 핵발전 정책을 끌고 온 행정부와 이를 통제하지 못한 국회의 무능과 무책임함을 보게 될 것이다.

탈핵정책을 천명하면서도 여전히 고속증식로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포기하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고준위핵폐기물인지 사용후핵연료인지 용어조차 정리되지 않은 채, 단지 공론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핵발전소 부지 지역민들에게 이 어려운 문제를 던져두고 정치의 책임을 면피하려는 것은 아닌지 정치권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국회도 행정부도 책임지지 못하는 이 난제를 고작 몇 개월짜리 공론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자체로 넌센스다. 느리더라도 제대로 된 길을 모색해야 한다. 폐기물 둘 곳이 없어 핵발전을 멈춰야 할 상황이면 멈춰야 한다. 수십 만년 보관해야 하는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우리사회가 지금까지 이 책임을 너무 가벼이 여긴 결과이다

탈핵신문 2019년 11월(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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