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8일부터 24일,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무악로타리홀에서는 낯익은 얼굴과 그들이 그린 그림을 만날 수 있었다.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 : 밀양할매 그리고 말하다’라는 제목의 전시회와 함께 21일에는 연계행사로 이야기마당이 열린 것이다.
△ 밀양 주민들이 그린 그림이 연세대 백양누리 무악로터리홀에서 관람객들과 만났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번 전시회가 있기까지 밀양 주민들은 2017년 8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밀양의 8개 마을 44명이 그리기에 참여했고, 두 명의 미술가도 힘을 보탰다. ‘교육공동체 벗’이 출간한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는 이 밀양 할매들과의 작품 활동과 기록을 담은 것이었고, 이번 전시회는 그 과정에 그린 그림을 소개했다.
‘밀양 할매’들은 그림에 송전탑을 하늘 끝까지 치솟은 거대한 괴물처럼 표현했다. 할머니들에게 송전탑은 ‘괴물’이고, 풀과 나무와 꽃은 그들이 지키고 싶은 땅이다.
전시회는 송전탑 투쟁이 전면에 담긴 겹겹의 현수막 통로를 지나가는 것으로 시작해, 밀양 어르신들이 담아낸 그림을 전시했다. 주민들은 송전탑 뿐 아니라 밀양의 고추, 가지, 포도, 자신들의 손, 서로의 얼굴을 그렸다. 농성하면서 농작물을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었지만 농사는 그들의 삶이고, 그림은 투박하지만 진솔하다.
전시의 마지막은 송전탑을 뽑아내고 싶은 어르신들의 열망을 작품으로 구현하고 거기에 꽃을 만들어 달 수 있게 구성되었다.
△ 밀양주민들과 관람객들이 송전탑을 뽑아내고 싶은 열망을 담아 '철사 송전탑'에 꽃을 매달았다. ©이상희
김영희 교수(연세대학교 국문학과)는 밀양 송전탑 건설 행정대집행 이후 현지에서 구술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신고리 5·5호기 건설재개와 중단이라는 공론화 공방에 배제된 밀양 어르신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그림 그리기’라는 형태로 담아낼 것을 구상했다.
전시회를 찾은 이상희 녹색당 탈핵특별위원장은 “아직 송전탑을 뽑아내지도 못하고 심지어 안전을 조건부로 승인된 신고리 4호기에서 전기가 흐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작업과 전시가 밀양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살펴주었을 것”이라며, 밀양에 관심과 연대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 행사는 연세대학교 구술과 서사 연구모임 ‘말과 연대’,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한국연구재단 ‘광장의 젠더’ 연구팀이 공동 주관하고, 김영희 교수와 이충열, 이영주 작가가 함께 기획했다.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19년 10월호(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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