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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부산 반핵영화제 관람기

∥영화로 만나는 탈핵


제 9회 부산 반핵영화제가 8월 23일과 24일,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올해 영화제의 주제는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로, <10만년의 책임>이라는 제목 아래 7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이 중 두 편에 대한 감상문을 소개한다. [글쓴이 주]




바람이 불 때


<바람이 불 때>

레이먼드 브릭스 원작, 지미 T 무라카미 감독. 1986년 영국, 애니메이션


영화 주인공인 지미와 힐다 부부는 은퇴 후 시골 외곽에 산다. 언덕에 풍차가 돌아가고, 들판에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한적한 마을이다. 지미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저녁식사 중 라디오에서 2~3일 후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지미는 곧바로 문짝을 떼어 집안에 대피소를 만든다. 정부 지침서는 문짝을 떼어 대피소를 만들라고 하면서, 문을 닫아 불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라고도 한다. 난감한 지침이었지만 지미는 14일 동안 먹을 것도 준비하고, 히로시마 원자폭탄 공격유형을 대비해 창문도 하얗게 칠한다.


하지만 핵폭발의 순간, 집안에 있는 집기들이 부서진다. 시속 500마일의 뜨겁고 빨간 바람이 들판을 휩쓸었다. 


이틀 동안 대피소 안에 있던 부부는 정부 비상대책반이 의료진과 함께 찾아올 것이라고 믿지만 오지 않는다. 전화가 불통이고, 티비와 라디오 역시 나오지 않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세상과 단절된다.


힐다는 통증을 느끼도 토하면서 몸 상태가 안 좋아 진다. 우유와 식수가 없지만 모든 도로와 철로가 부서졌다.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자 이들은 빗물을 받아 끊여서 식수로 사용한다. 부부의 몸에는 붉은 반점이 생겼지만 그것이 방사능 때문이라는 걸 모른다. 이들은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한다.


영화는 이들의 모습을 처음엔 선명하게 밝고 환한 색이다가 핵폭발 뒤 점점 형체가 뭉개지는 그림으로 방사능 피폭으로 죽어가는 노부부의 마지막을 강렬한 색채로 표현했다.


이 영화에서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노부부의 대화 속에서만 등장하고 전쟁의 피해는 늙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다. 핵폭발 이후 모든 것이 끊기고 다 사라졌다. 국가도, 이웃도, 시스템도 전멸했다.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끝까지 믿는다.


노부부에게 방사능이 뭔지, 어떻게 위험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순박한 믿음이 마음 아팠다.


이 작품은 1986년 일본계 감독 지미 테루 무라카미가 만들었으며, 영국의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가 1982년에 만든 그림책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핵폐기물의 악몽


<핵폐기물의 악몽>

에릭 구레트, 독일/프랑스, 2009년 다큐멘터리


핵발전소가 가동한 후 60년 동안 35만 통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만들어 냈다. 핵폐기물의 독성이 사라지기까지 10만년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핵산업의 역사 동안 핵폐기물은 계속적으로 환경과 인간을 파괴해 왔다. 영화는 그 현장을 고발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폭탄 개발을 위한 최초의 원자로인 핸퍼드는 북아메리카의 광대한 컬럼비아 강을 오염시켰고, 영화가 촬영된 2009년 당시에도 트리튬 농도가 식수허용 범위를 넘어섰다.


구 소련에서는 우랄지역 고준위 핵폐기장 마야크 사고로 200명이 죽었고, 인근 카라차이 호는 매립되었다. 1976년 내부 고발되었지만 정부에 의해 은폐되었고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프랑스 라하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은 폐기물 유독가스를 계속 내뿜고 있지만 방사성 폐기물은 인정하면서 오염은 부인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의 재처리시설 방사능 오염은 유럽 전체 방사능 오염의 80%에 달한다. 재활용은 10%에 불과하고 재처리 된 쓰레기는 결국 또 무서운 방사능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재처리 시설에서 처리된 우라늄의 은밀한 이송 경로는 놀라웠다. 무려 8000km! 그 이동 경로 중 방출되는 방사능과 사고·폭발 위험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또한 핵발전소에 임시 저장되고 있는 수조 저장은 테러나 비행기 충돌 시 체르노빌 핵사고의 4배 영역이 파괴된다고 한다. 지금 전 세계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는 450개의 수조가 있다.


이렇게 지난 체제가 선택한 은밀하고도 불투명한 방식의 핵에너지는 거대하고 공고한 핵산업계를 형성하면서 핵쓰레기 문제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고 있다. 독일은 2022년 완전한 탈핵을 계획하고 있지만 엄청난 양의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도는 없다.


과학자들은 10만 년 보관해야 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을 처분하기 위해 고작 수백년 동안 견딜 수 있는 지하저장소를 건설하려고 한다. 인간을 믿을 것인가, 지질을 믿을 것인가 물으면서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들을 신뢰해야 한다고 한다. 그들의 결정권을 믿으라며 그들에게 미래가 달렸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들을 신뢰하면 다 될까? 안전한 저장소는 있기는 한 걸까. 또 수백만 년 동안 안전할까. 미래세대는 그 위험을 어떻게 인지할까? 이런 저런 질문들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머리는 복잡해졌다.


그러나 이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핵발전으로 전기를 풍부하게 쓰는 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철저히 외면하고 은폐되었던 핵폐기물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해야 한다.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하기 위한 방책이 아니라 10만년의 책임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임미화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가

탈해교신문 2019년 9월(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