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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로 만나는 탈핵> 핵산업 노동자의 내부고발

∥영화로 만나는 탈핵


실크우드 Silkwood

1983년 미국, 131분, 마이크 니콜스 감독


할 말이 많은 영화다. 이영화는 <졸업>으로 유명한 사회파 감독 마이크 니콜스가 연출했고, 노라 에프런의 각본 데뷔작이며, 메릴 스트립, 커트 러셀, 셰어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나온다. 둘째, 1974년 11월 13일에 28세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카렌 실크우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9년 뒤에 만들어졌다. 셋째, 그녀의 죽음은 핵산업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실크우드는 미국 오클라호마 주 크레센트 인근 커-맥기 시마론 핵연료 공장의 노동자였다. 플루토늄 연료봉을 만들고 검수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그런데 연료봉에 균열이 있음을 보여주는 엑스레이 사진이 조작되거나 부적절한 시설로 인해 동료 노동자가 방사능에 피폭되는 일들을 목격하면서 실크우드는 이 공장의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때마침 사측에서 노동조합을 해산시키려는 투표를 추진하고, 노동조합 활동가이기도 했던 실크우드는 상급 노조 정책담당자와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노동조합이 있어야 공장의 허술한 방사능 관리를 통제할 수 있고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설득 논리가 되었고, 덕분에 투표에서 이긴 노동조합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측은 실크우드를 눈에 가시로 여기게 되었고, 동료들도 더 이상 공장의 문제를 파고들지 말라며 그녀를 만류한다. 핵연료 공장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퍼져서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장의 부실과 비리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실크우드는 개인적으로 조사를 계속했고, 그 와중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녀 자신이 반복적으로 피폭되어 공장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나중에 경영진에서는 그녀가 사측을 불리하게 하려고 일부러 플루토늄 피폭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화 <실크우드>의 포스터와 카렌 실크우드의 사망을 보도한 기사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녀가 노동조합 회의를 마치고 모아둔 서류 파일을 가지고 뉴욕타임즈 기자를 만나러 차를 몰고 떠난 얼마 후, 그녀는 고속도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다른 차에 들이받힌 다음 콘크리트 벽에 충돌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녀가 준비했던 문서들이 현장에 흩어져 있는 것이 목격되었지만 경찰은 이 서류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그녀의 죽음을 단순 사고사로 처리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과 환경단체들이 의혹을 제기하며 재수사를 강력히 요청했지만 거부되었고, 이 사고와 관련된 문서는 FBI의 극비 파일로 분류되어 공개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반핵운동이 불붙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커-맥기 핵연료 공장은 다음 해에 폐쇄되었다.

한빛 핵발전소의 어이없는 부실시공이 드러나고 신고리 6호기 건설의 부실을 증언하는 노동자가 나오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보듯 핵산업 노동자의 내부 고발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크우드>는 다음 해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김현우 편집위원

2019년 8월(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