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만나는 탈핵
번역자 주 : 아래 글은 미국 HBO의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에 대해 짐 그린이 <누클리어 모니터> 877호(2019년 6월 25일)에 쓴 글을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HBO의 5부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은 수백만 명이 시청했고, IMDB(인터넷 영화 데이터 사이트) 사상 최대의 TV쇼 부문에서 1위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 미니시리즈가 상영되면서부터 위키피디아의 ‘체르노빌 재앙’ 페이지 접속 수가 엄청나게 증가해서 하루에 50만 건 이상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영화 평단뿐 아니라 여러 지역과 사회집단에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러시아와 핵산업계의 반응 일부를 전한다.
△ 사진 출처 = HBO 누리집
구 소비에트 국가 내의 반응과 반발
이 미니시리즈는 구 소비에트 국가들에서 많은 관심과 토론을 불러 일으켰다. 벨라루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이 미니시리즈가 긍정적인 영향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녀의 저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정보와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되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가장 큰 고통을 겪었고 이 비극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벨라루스 사람들이 체르노빌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었고, 이 비극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작가들은 벨라루스, 즉 우리 지역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 출신임에도 이를 성취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클럽에서 이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은 HBO 미니시리즈를 미국인들이 만든 허위 정보라며 기각했다고 전해진다. 러시아연방 공산당의 지역 지도자인 드미트리 예브세예프는 이 미니시리즈가 “시청자의 뇌를 오염시키는 하찮은 반 소비에트 쓰레기로 가득 차 있으며, 소비에트의 실상에 대한 고의적이고 주도면밀한 왜곡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 HBO가 방영한 <체르노빌>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HBO 누리집)
레오니드 베르쉬드스키는 <모스크바 타임즈>에 이렇게 썼다. “크레믈린계 일간지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이 시리즈가 러시아가 미국을 앞서 있고, 유럽 및 아시아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원자로 수출 분야에서 러시아의 주도력을 훼손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 저자의 생각은 유럽의 여론을 러시아 핵 프로젝트에 반대하게끔 유도하려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소셜미디어에서 이런 비슷한 언급들을 여러 개 보았다. 이 시리즈는 ‘러시아혐오증’을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비난받고 있는 것이다.”
베르쉬드스키는 덧붙여 말한다. “거듭해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은 체르노빌로부터 가장 영향을 받은 세 개의 구 소비에트 국가들 어디에서도 1986년의 사건을 그렇게 강력히 재창조하는 작업이 없었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도 핵 리더쉽을 고수하고 있는 러시아의 경우도 그렇고,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2012년에 체르노빌 지역을 방문했을 때 폐허로 버려진 마을들 사이에서 오염 위험이 있는 고철 조각의 불법 거래가 성행하고 있었다. 체르노빌 낙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벨라루스도 적절한 메신저일 수 있었다.”
실제로,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미니시리즈가 러시아의 친정부 TV채널인 NTV에 의해, 문화부로부터 3천만 루블(약 5억5천만원)을 지원 받아 제작되고 있다. 줄거리는 체르노빌 발전소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프리피야트로 파견된 CIA 요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러시아 요원들이 그를 추적하기 위해 파견된다. NTV의 제작국장 알렉세이 뮤라도프는 이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당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체르노빌 핵발전소에 잠입했다는 이론이 있으며 많은 역사학자들은 폭발 당일에 적국 정보요원이 현장에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찬핵 진영의 반응
핵산업계 안팎의 찬핵 선전가들은 HBO의 미니시리즈가 유발한 관심들을 체르노빌에 관한 그들의 지겹도록 오래된 거짓말들을 되풀이하는 데에 활용하고 있다(이는 누클리어 모니터 821호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는 HBO 미니시리즈 덕분에 체르노빌 사고에 관한 자신의 온라인 ‘정보지’ 접속 트래픽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여기서 “시청자들은 현대의 핵안전 조치들에 대해서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핵에너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기회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WNA가 발표한 별도의 기사는 ‘현대적 핵안전 조치’에 대해 떠벌이면서 “효과적인 핵안전 문화는 적절한 지식을 갖춘 유능한 운영자와 투명성뿐 아니라 경쟁력 있고 독립적인 감독도 요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조직은 러시아, 미국, 중국, 인도 등의 부적절한 핵안전 문화와 규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리고 한국의 부패한 ‘핵마피아’와 일본의 부패한 ‘원자력촌’의 후쿠시마 이후 부활에 대해서 침묵한다. 이 기사는 “우크라이나가 핵안전에 대한 접근에서 크게 진전을 이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위험천만한 넌센스다.
미국 핵에너지연구소의 매트 왈드는 체르노빌 미니시리즈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핵 사고의 탓을 소비에트 핵산업의 “자기기만과 부실” 탓으로 돌리고 “세계 핵 시장에서 또 다른 명목상 공산주의 측 플레이어, 즉 중국도 공유하는 열악한 핵안전 기록”을 비난한다. 그에 따르면 다행히도, 미국은 “그런 식으로 사업을 하지 않으며”, 따라서 핵사고는 “미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왈드는 체르노빌 사고를 부분적으로 설명하고, 또 후쿠시마 사고를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자만심을 보여주지만, 또한 아마도 미국에서 50회 이상 일어나서 5만 달러 이상의 재산상 손실을 입힌 핵사고를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 HBO가 방영한 <체르노빌>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HBO 누리집)
악명 높은 찬핵 거짓말쟁이 마이클 셸렌버거는 “이 미니시리즈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핵발전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었음이 분명하다”고 말하면서 이는 첫 회에서 선을 넘어 감정적으로 치달았으며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셸렌버거는 체르노빌 사고로부터 ‘200명 미만’의 사람이 죽거나 죽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WNA는 HBO 미니시리즈에 대한 논평에서 “이제까지 체르노빌 사고의 결과로 방사능으로 죽은 사람은 100명 미만이라고 믿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HBO 미니시리즈의 말미에서 언급되듯, 체르노빌 사망자 수의 최소 추계로도 고농도 피폭자 중 4천명이 사망했고, 유럽 전역의 사망자 수에 대한 신뢰할만한 집계로는 9만 3천명에 이른다.
셸렌버거는 “결국, HBO의 체르노빌은 지난 60년간 인간이 빠진 오류와 동일한 이유에서 핵에너지에 대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핵무기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핵발전에 덮어씌운 것 말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핵발전과 핵무기 개발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긴 글을 썼던 것은 셸렌버거 자신이었다. 그는 “적어도 20개 나라가 부분적으로는 핵무기 제조 능력을 위해 핵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핵무기 옵션을 갖는 것은 종종 평화로운 핵에너지를 추구하는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동인이다”라고 말했다.
발췌번역 =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19년 11월(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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