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핵평화, 해외

원폭2세 고 김형률 14주기 추모제

합천에서 열린 김형률 추모제 80여 명 참석

아직도 원폭2세 인정과 지원 법률 개정 안 돼


원자폭탄 피해자 2세 고 김형률(1970 ~ 2005)은 평생 후유증(면역글로불린 결핍으로 인한 폐렴 등)으로 고통 받으면서 원폭2세 문제를 사회에 고발했다. 그러나 아직 원폭2세 등 후손들은 2016년에 제정된 원폭피해자특별법에서 원폭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조사 규명과 지원 대상에서도 배제돼 있다. 원폭투하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폭피해자들과 한국정부는 책임자인 미국과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


5월 25일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에서 열린 김형률 14주기 추모제 모습 ⓒ용석록



5월 25일 원폭 2세 고 김형률 14주기 추모제가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에서 열렸다. 한국원폭2세환우회·합천평화의집 공동주최, 김형률추모사업회가 주관한 이번 추모제에는 80여 명이 참석해 김형률의 삶을 기렸다. 이날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 추진 중인 원폭피해자 구술기록을 담당한 청년들도 참석해 기운을 북돋았다. 유족은 김형률의 아버지와 누님, 동생 등이 참석했다.


추모사에서 이규열 한국원폭피해자협의회 회장은 원폭피해자 2세와 3세 등 후손이 포함된 특별법 개정이 국회 통과되도록 2세와 후손을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핵확산 금지와 탈핵이 필요하며, 이는 한국 원폭 피해자들로부터 비롯됨을 알고 널리 알리겠다고 했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의회 합천지부장은 16년 전을 회상하며 처음 김형률이 전국 6개 지부에 갔다가 마지막에 합천지부에 왔는데 “2세가 뭐냐, 1세들이 반대했었다”며, 그러나 이후 1세들이 나서서 2세와 함께 했고, 그 맨 앞에 2세 김형률이 있었다고 했다. 심 지부장은 핵무기는 절대 없어야 한다며, “강대국들이 핵을 내려놓아야지 약한 나라에게만 핵을 없애라고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바야시 하츠에 일본 전국피폭자청년동맹 국제부장은 “피폭자는 어디에 있어도 피폭자”라며, “제국주의가 빼앗은 목숨을 되돌려 줘라. 천황의 책임이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는 “살자, 살아남기 위해 함께 강렬히 싸우자”며 일본국과 천황에게 전쟁 책임을 계속 묻겠다고 했다. 아울러 핵과 전쟁 막는 공동투쟁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전진성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김형률을생각하는사람들)는 부산시의회가 원폭 2~3세 지원조례를 제정했다고 했다. 그는 핵무기에 대해 김형률이 국내에서 문제를 제기했지만 핵발전소 문제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사회적으로 강하게 제기됐고, 부산 시민사회는 김형률의 뜻을 이어 2011년부터 반핵영화제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형률은 한국 최초로 원폭2세 환우임을 밝힌 이래 원폭2세 환우회를 만들고, 시민단체와 함께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 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대책위와 그는 원폭피해자 의료지원과 의료지원체계 마련, 생존권 보장(선지원 후규명), 원폭전문 의료기관과 의료시스템 구축, 피폭2세 건강영향조사, 올바른 사회인식으로 원폭2세 차별문제 해결과 인권회복 등을 정부와 사회에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04년에 최초로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조사’를 했으며, 보건복지부는 올해 4월 25일 2018년부터 6월부터 조사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실태조사를 토대로 피해자 자녀 등에 대한 건강 역학조사 등의 근거를 마련하고 피해자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법률 개정과 예산확보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원폭2세 지원과 정의 등의 내용을 담은 원폭피해자특별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경상남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일부는 원폭2세 지원에 관한 자체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경기도 역시 조례제정을 추진 중이다.


김형률 추모제는 지난해까지 13년 동안 부산민주공원에서 진행했으며, 합천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추모제가 열렸다. 김형률의 부모는 합천이 고향이지만 김형률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그의 납골함은 부산민주공원에 있다가 부친의 뜻에 따라 2017년 4월 5일 합천 묘역으로 옮겼다.



∥고 김형률 아버지 인터뷰

김형률 어머니 치매로 요양원 생활



김형률 14주기 추모제에 앞서 그의 부친 김봉대(82세) 씨를 합천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만났다. 김씨는 김형률의 어머니 이곡지(80) 씨 근황을 묻자 표정이 심각했다.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있어 지난해 부산과 대전에서 치료 받다가 작년 8월부터 충주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 중이다.



김형률의 아버지 김봉대 씨가 김형률 14주기 추모제에서 근황을 말하고 있다. ⓒ용석록



김봉대 씨는 부인을 돌보며 요양원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두 사람 합해서 매달 약 150만원을 요양원에 내야 한다. 무엇보다 김씨는 부인의 건강이 안 좋아 상심이 컸다. 그는 부인이 건강을 회복하면 부산으로 가려고 했는데 차도가 없다고 했다.

김씨는 정부가 원폭2세도 1세와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며 특별법이 하루빨리 통괘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못다 이룬 활동을 이어가고 싶으나 현재로서는 부인을 돌보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다.


김형률의 어머지 이곡지 씨는 1940년에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45년 8월 피폭지에서 3km 정도 떨어진 후나이리카와구치쵸에서 피폭됐으며, 피폭으로 아버지와 언니는 사망했다.


이씨는 해방 이후 귀국해 김봉대 씨와 결혼했으나 피부병과 악성종양에 시달렸고, 이씨의 피폭 후유증은 대물림됐다. 1970년 부산 동구에서 태어난 아들 김형률은 어려서부터 폐질환 등에 시달렸는데, 2002년 그것이 ‘선천성 면역글로블린 결핍증’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병은 백혈구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지는 희귀 난치병이다.


김형률은 2002년 3월22일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피폭 후유증을 앓는 원폭 피해자 2세라고 밝혔다. 원폭 피해자 2세가 피폭 후유증을 대물림해 앓고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 처음 알린 것이다. 



∥일본 원폭2세 고바야시 하츠에 인터뷰

핵정책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원폭책임 미국에 물어야


고바야시 하츠에(62세) 씨는 원폭2세로 중학교 3학년(13세) 때 전국피폭자청년동맹(이하 청년동맹)에 가입했다. 그녀는 청년동맹이 창립할 당시 일본에서 원폭2세가 백혈병으로 많이 사망하던 시기였으며 원폭2세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던 때였다고 설명했다. 고바야시 씨는 현재 청년동맹 국제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경에서 김형률을 만났던 인연으로 매년 김형률 추모제에 참석하고 있다.



고바야시 하츠에 씨가 김형률 14주기 추모제에서 발언하는 모습  ⓒ용석록


고바야시 씨의 아버지는 피폭자다. 1945년 무렵에는 아이들도 군 산업시설에 동원되던 때였으며, 아버지는 공장가는 도중에 피폭당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폭심지 2km 이내 지점에 있었으나 화상을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머리카락이 빠지고, 잇몸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60세에 돌아가셨고, 당시 고바야시는 36살 이었다.


일본은 1971년부터 2세 피폭자 치료를 위해 의료시설을 만들었으나 일본 역시 원폭2세는 의료비 지원이 안 된다고 한다. 그녀는 일본 정부가 원폭2세 존재를 “핵 정책 방향에서 인정 안 한다”고 했다.


그녀는 일본 원호법은 1세만 지원하는 것이며 1세들이 투쟁해서 얻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피폭자수첩 자체가 타협적인 면이 많았다며 거리에 따라 인정하는 등 피폭자를 분리했다고 지적했다.


고바야시 씨는 정부의 핵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며, 정치적인 입장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책임을 물어야 하며, 일본정부와 한국정부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미국이 핵폭탄 투하할 때 외교권을 포기했다며, 피폭에 대해 개인 청구는 자유롭게 해도 되지만, 국가는 국가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석록 기자

탈핵신문 2019년 6월호(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