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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에너지전환

기후변화 핑계로 핵발전 마케팅 그만 하라

찬핵진영의 IPCC 1.5도 특별보고서 일부러 잘못 읽기


특별보고서 따르려면 핵발전 줄이고 재생에너지 늘려야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지난 10월 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48차 총회에서 ‘1.5도 특별보고서’가 발표되었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도 상승보다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고 1.5도 상승 이하를 위해 노력할 것”을 명시했다. 유엔은 합의문 후속 조치로 IPCC에게 2도가 아닌 1.5도 상승 시나리오를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특별보고서 마련을 주문했다.



IPCC는 인천 송도에서 제48차 총회를 열어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최종 승인했다. 사진 출처 : KBS뉴스 



특별보고서는 지구 평균온도의 1.5도 상승이 자연과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금세기 중에 1.5도 온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경로와 대응 과제,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빈곤 및 불평등 해결을 위한 과제를 적시했다. 보고서는 1.5도 수준을 지키려면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축해야 하고 2050년까지 순제로(net-zero) 배출 달성이 요구된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특별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국내 찬핵 그룹과 언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핵발전 없이 기후변화 대응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며 정부의 탈핵-에너지전환 정책을 공박하기 시작했다. IPCC가 특별보고서가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경로 시나리오에 핵발전을 포함했다는 것이 근거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와 산업 부문에서 상당한 온실가스 감축이 이루어지면서 1.5도 경로를 달성하는 모델의 경우 핵발전이 2010년 대비 2030년에 59%, 2050년에는 150% 증가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IPCC가 스스로 밝히듯이 그들이 기술적 모델링에 투입한 요소들이 정책적으로 바람직하거나 사회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특별보고서의 주된 맥락은 핵발전 활용 증가가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2050년까지 1차 에너지 공급의 절반 이상, 전력 생산에서는 70~85%까지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경우 특별보고서의 주문을 따르려면 정부의 탈핵 로드맵보다 더욱 급격히 핵발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3020정책(2030년까지 전력생산의 20%) 보다 더욱 급격히 늘려야 할 형편이다.


게다가 정책가들을 위한 요약보고서 외에 전체 보고서의 본문 4장에는 에너지원 기술마다 특징과 전망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핵발전은 결코 긍정적이거나 유력한 에너지원이 아닌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양하지만 핵발전은 경제성과 수용성 모두 떨어지고 있어 성장이 지체되고 있으며, 각 기술의 현실성 평가표도 핵 발전은 지구물리적 측면만 긍정적이고, 경제·기술·제도·사회·환경 측면에서는 모두 상대적/절대적으로 가장 불리한 것으로 평가되어 있다. 때문에 IPCC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핵 발전 확대를 주장했다는 식의 기사들은 보고서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오류이거나 허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24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4)에서 IPCC의 특별보고서 채택이 예고되어 있었으나, 미국, 러시아, 중동 국가들이 반대하면서 의미가 삭감되었다는 소식이다. 그렇다고 기후변화와 핵발전 논쟁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기후변화 대응을 빌미로 하는 핵발전 마케팅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세계 핵산업이 즐겨 의지한 탈출구였다. 다만 한국은 지난 정부들의 핵산업 엄호가 너무 든든했기 때문에 찬핵 진영에서 기후변화 대응 논리를 그다지 심각하게 활용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이제 변화된 환경 속에서 핵산업계와 찬핵 언론들은 기후변화라는 좋은 핑계를 거들떠보게 된 셈이다. 그럴수록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과 탈핵-탈석탄 에너지전환을 동시에 이루어야 하는 고민을 회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탈핵신문 2018년 12월호(복간준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