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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에너지전환

경제 산업 사회 전반의 전환이 이뤄져야 ‘에너지전환’ 가능

 

촛불 혁명을 거치면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많은 부문에서 개혁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반영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정책 분야에서도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 확대되어 온 탈핵운동의 의미를 인정하면서 이전 정부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핵·탈석탄·에너지전환정책은 보수 야당과 언론 그리고 소위 핵마피아들의 저항을 야기하고 있으며, 에너지전환에 대한 비전을 확고히 공유하지 못한 집권 여당의 방관과 책임 방기 그리고 기존 정부 관료와 산하 기관들의 관성과 비협조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에너지정책에 관한 공적 토론이 신고리5·6호기 건설 여부에 집중되면서 장기적인 에너지전환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에너지전환은 탈핵 이슈에 비해 다양하고 복잡한 쟁점들, 이해관계자들, 그리고 법·제도들이 관련되어 있으며, 충분한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두고 장기적으로 추진해가지 않는다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점에서 더 넓은 사회적 토론이 시급한 시점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2017 한국 에너지전환 포럼연속 세미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현 시점에서 한국의 주요한 에너지기후 정책 이슈를 점검하고, 특히 새 정부의 관련 정책들을 에너지전환의 관점으로 평가하고 적극적인 제안을 도출하기 위해 한국에너지전환 포럼이라는 이름의 토론장을 마련했다.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의 후원을 받은 이 포럼은 920일부터 1018일까지 4회의 연속 세미나로 진행되었고, 새 정부의 에너지 및 기후계획 전반, 에너지전환의 사회적 비용과 에너지 세제 개편 방안, 원자력과 석탄화력 산업과 노동의 정의로운 전환, 에너지전환과 에너지 분권의 과제를 차례로 다루었다. 아래에 소개하는 1차 세미나 내용을 포함하여 전체 발표문과 토론문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제1차 에너지전환기본계획으로!

 

한재각 운영부소장(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계획을 전향적이지만 아직 적극성과 포괄성이 미흡하다고 평가하면서, “내년에 수립될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1차 에너지전환 기본계획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명실상부한 탈핵·에너지전환정책이 되려면 소비와 공급 확대 위주의 에너지정책에서 탈피하여 에너지수요 정점을 고려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원과 공급 및 배분 방식의 변화, 지역분권적 에너지 거버넌스를 포함하는 국가적 계획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계획은 에너지 자원과 기술 및 산업 분야에 한정되거나 산업부가 주도하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되며, 최소한 환경부, 국토부(특히, 건물 및 교통 분야) 등이 함께 참여하는 계획이어야 한다. 그리고 수립 과정도 에너지시민,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는 기업들과 지자체 등의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적 계획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재각 부소장은 이를 위해 에너지법 개정을 통해 에너지전환위원회의 구성과 에너지전환계획 수립을 의무화 할 것, 복수의 기관으로 하여금 복수의 에너지계획의 초안을 마련하여 비교 검토하게 할 것, 다단계 방식의 의사결정 절차와 구조를 마련하고 공개적으로 토론을 진행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되려면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서둘러 수립하기 보다는 최소 1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고 과정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계획의 주요 전제들도 전환해야

 

권승문 상임연구원(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은 녹색당 등에서 제출된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앞으로는 더욱 풍부한 주요 전제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에너지 시나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에너지기본계획과 같이 경제성장률, 산업구조 등 주요 전제가 고정된 조건에서는 에너지원단위를 감소시키는 것 외에는 에너지수요를 줄이는 방법이 사실상 없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개발연구원의 경제성장률 전망뿐만 아니라 한국은행의 경제전망, 국회예산정책처의 재정전망 자료를 고려한다면 다양한 경제성장 시나리오에 따른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 구성이 가능하며, 나아가서 경제 정책과 산업 정책이 곧 에너지 및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부문별 에너지 수요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과제가 제시되어야 하며,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원별 공급 목표 설정과 확대를 위한 정책적 과제도 적시되어야 한다. 아울러 저성장 국면에서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산업구조 개편에 따라 에너지 수요와 일자리 정책은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만들어져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단순히 에너지원의 전환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에너지원의 전환을 수반하는 경제·산업·사회 전반의 전환이 이뤄져야 에너지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 조급증을 버리되 관성도 탈피하는 접근을!

 

토론에 나선 이상복 기자(이투뉴스)최근 우리가 말하는 에너지전환이 단순히 기존의 에너지믹스나 전력믹스를 미세 변경하는 수준에 그치는 일이 아닐 것이라고 보았다. 구조적으로는 고속 경제성장 과정에 고착화된 핵발전과 석탄화력 중심의 에너지시스템, 그 시스템에 종속된 수많은 종사자와 산업군 그리고 그들 사이의 역학구도 변화를 수반하는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는 에너지 소비자의 직·간접적 참여와 반응, 소비행동의 변화까지를 요구하는 과업이기 때문이다.

 

이상복 기자는 에너지전환은 경로의존성과의 싸움이기도 하며, 에너지전환은 기존의 정책, 기술, 제도, 인식 등의 관성을 의식적으로 배척하면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는 일임을 환기했다. 따라서 에너지전환을 과도하게 단순화해서 표피적으로 접근하면 그 과정에 상당한 시행착오나 저항 등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수 있고, 또 에너지전환 속도에만 치중해 조바심을 내고 밀어붙이다보면 과거 정부처럼 비합리적 접근이 반복될 수 있다.

 

권필석 교수(고려대 그린스쿨)에너지 시나리오를 사회적으로 논의하는데 있어, 한국에서는 에너지 시스템에 관련된 정보 공유가 부족한 점이 큰 문제라는 점도 지적했다. 에너지 시스템 전환이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연구 결과로만 결정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검증하고 참여하면서 결정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제대로 된 데이터와 정보가 갖춰져 있지 않은 형편이다.

 

김세호 비서관(김병관 국회의원)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마련해야 한다는 발표에 동의하며, 계획수립 과정에 국회의 참여도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까지 정부의 수많은 행정계획에 대해 국회의 역할은 초안이 작성된 이후 보고를 받고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국회의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워킹그룹에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탈핵신문 2017년 11월호 (제57호)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