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이슈

미숙한 공론화위원회, 뒷짐 지고 있는 여당

자료집 목차로 촉발된 기울어진 운동장논란

 

신고리5·6호기 공론화 자료집 제출 마감 하루 전이던 지난 911() 오후. 신고리5·6호기백지화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 대응팀장을 맡고 있었던 나는 전화기에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전날 제출했던 시민행동 측 자료집에 대해 공론화위원회가 자료집 내용 중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라는 요구에, 부당하다고 생각해 항의하고 있었다.

 

지난 911(), 신고리5·6호기백지화시민행동이 국회 앞에서 정치권에 신고리5·6호기 백지화 공약을 준수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론화 과정에서 토론자료집을 둘러싸고 건설 중단, 재개 양측은 수없이 충돌했다. 결국 823일 양측은 20페이지 7개 목차를 만들기로 어렵게 합의했지만, 바로 다음날 건설재개 측은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협상, 어렵게 협의한 양측 자료집 구성안에 대해 이제는 공론화위원회가 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그것도 건설재개 측이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공론화 기간 내내 공론화위원회가 보였던 기울어진 판단을 재확인하는 계기였다.

 

이에 시민행동은 자료집 제출시한인 912(). 자료집이 아니라 이런 내용에 대한 개선이 없을 경우 토론자료집 진행에 협조할 수 없고, 향후 공론화 일정에 불참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이날 기자회견 직후 시민행동 활동가들은 주요 정당에 항의 서한을 전달했고, 오른쪽 사진은 더불어민주당을 방문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공론화 진행과정 내내 한수원과 정부출연기관의 인사들이 각종 회의와 공개 토론회에 참석해 왔고, 핸드폰 케이블이나 부채 같은 한수원 홍보물품이 신고리5·6호기 건설 재개 유인물과 함께 길에서 뿌려지는 상황이었다. 중단한다던 한수원의 홍보는 다시 시작되어 페이스북엔 신고리5·6호기의 모델명인 APR-1400이 핵발전소 수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광고가 시작되기도 했다.

 

핵발전산업계의 공론화 보이콧 불사선언!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공론화위원회가 산업부와 과기부 등에 건설재개 측 활동 중단내용을 담은 공문을 발송하자, 이제는 핵발전산업계가 공론화 보이콧을 선언했다. 924() 신고리5·6호기 건설재개 측 대표인 원자력산업회의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한수원과 정부출연기관의 활동은 정당하다, 일방적으로 건설중단 측 입장을 따르고 있는 공론화위원회를 비판했다. 그들 또한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후 TV 토론회와 공개 토론회 등에 불참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애초 한수원 노조와 일부 지역주민들이 공론화 보이콧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원자력산업회의가 기자회견까지 열고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참 공론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이 어떻게 종결될지 아직 변수는 많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은 공론화 과정을 엄밀하게 설계하지 못한 공론화위원회에게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공론화 초기부터 정부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핵발전산업계 요구를 받아 정부에 공문을 보내거나 위원장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중립성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막상 한수원과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중립성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수원은 신고리5·6호기 건설을 진행하고 있는 사업자로서 신고리5·6호기에 대한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기관이다. 정부 조차 한수원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신고리5·6호기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알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한수원이 건설재개 측의 선수로 공론화에 참석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공론화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제기되었던 내용이다. 문제를 촉발시킨 토론 자료집의 경우에도 건설중단과 건설재개 양측이 각자의 논리 구조와 프레임을 갖고 내용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무리하게 공론화위원회가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악화시켰다.

 

여당, 뒷짐 지거나 탈출구를 찾거나

 

이런 가운데 신고리5·6호기 기간 내내 여당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점 역시 계속 지적되고 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기간 내내 자유한국당을 비롯하여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다수 야당이 정부의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을 비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탈핵과 신고리5·6호기 백지화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공약 실천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시민행동의 신고리5·6호기 백지화 집회 참여요청에 대해 여당은 중립을 지킨다는 말만 반복할 뿐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공론화 국면에서 정부와 여당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고 다수 야당들이 총 공세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여당의 침묵은 신고리5·6호기 공론화가 단순한 공약 후퇴를 넘어 공약 철수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국회의원은 공개 행사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신고리5·6호기가 노후 핵발전소보다 안전하다는 의견도 있다, ‘신고리5·6호기를 건설하고 월성1호기, 고리2·3호기를 폐쇄하는 방안도 공론화위원회가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이 발언에 대해 신고리5·6호기 백지화 경남시민행동은 918() 기자회견을 열고 김경수 국회의원의 발언은 탈핵진영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며 발언을 비판했다. 여당 내부의 침묵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온 사실상 첫 발언이 신고리5·6호기 건설을 전제로 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 다른 공론화 과정에도 영향 줄 듯

 

아직 신고리5·6호기 건설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아직 공론화는 진행되고 있으며, 공론화 과정에서 다양한 돌발변수들이 더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혼란만 갖고도 이후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 등 다른 공론화 과정에 대한 교훈은 충분하다.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공론화의 문제점, 공론화 의제에 대한 합의 여부, 공론화과정에서 정부와 한수원의 역할 등 많은 것들이 이미 제기되었다. 특히 짧은 공론화 기간으로 인해 이런 문제점들이 묻히고 있는 현실은 이후 공론화 과정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내용이다.

 

또한 이런 문제점들이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다양한 탈핵이슈를 공론화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 1달여 남은 공론화 과정. 그 과정을 더 치밀하게 지켜봐야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탈핵신문 2017년 10월호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