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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천하에 쓸데없는 전문가들

황대권(영광핵발전소 안전성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대표)


최근에 문제를 빚고 있는 한빛4호기를 들여다보기 위해 관련 자료를 뒤적이다가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19941213일에 작성된 국회속기록인데 당시에 최초의 한국형 원자로라는 한빛3·4호기의 부실공사를 따지기 위해 영광군민이 올린 국회청원에 대한 국감자료이다. 15쪽에 달하는 속기록의 내용은 공사과정에서 지적된 3000건이 넘는 부적합 사항‘600여 차례의 설계변경그리고 ‘83%만 안전검사하고 가동을 승인해 준 것등을 두고 주민측과 발전소측이 공방을 벌이는 과정이 담겨 있다. 주민측이 이런 상태로는 불안하니 가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자, 으레 발전소 측에서는 전문가를 내세워 방어를 한다.

 

이때 등장하는 선수가 훗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되는 이은철 교수(서울대학교 핵공학과)이다. 그는 ‘83%만 안전검사를 해도, 100%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냐고 물으니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사실 17%(검사 안하고 남아)있으면 안되는데 이미 1차 확인을 했고 2차를 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승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10년 후에 하기 위해서 자동로봇을 달아 놓은 것인데, 그 로봇의 기술개량이 1996년 정도면 충분히 4.8인치로 들어가리라고 예상을 하기 때문에 그대로 승인을 한 것입니다.” 로봇의 크기가 5인치라 들어갈 수 없어 그 안을 검사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기술개량이 이루어질 것을 예상하고 승인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발언을 하고도 전문가로서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싶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현재 기술이 안 되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한결같이 같은 대답을 한다.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기술이 없음에도 계속 핵발전소를 가동하여 폐기물을 양산해도 괜찮냐고 물으면, 언젠가 그 기술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대답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종교인 흉내를 내면서까지 생계를 유지해야 하나!

 

전문가의 사전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 핵발전소와 관련된 활동을 하다보면 전문가를 찾는 일이 매우 잦다. 저쪽(발전소측)은 주로 자기네가 저지른 사고와 잘못을 은폐 또는 변명하기 위해 찾고, 우리는 그것의 진실을 캐묻기 위해 찾는다. 말을 해놓고 보면 두 편이 모두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두 편의 격차가 너무 커서 다른 한 편은 아예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먼저 전문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너무 심하다. 해외 또는 특정 학교의 박사출신이 아니면 말을 해도 잘 믿지 않는다. 결국 이런 자들이 자주 애용되다 보니 저절로 이들의 고용주들과 함께 핵카르텔을 형성하게 된다. 권력과 자본, 지식이 하나의 카르텔로 묶여 사회여론을 좌지우지하고 국가정책을 멋대로 농단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애국또는 애민으로 포장하지만 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때로 사익과 공익이 일치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이럴 때 이 불일치를 대중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안개를 피우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다. 그 대가는 크고 달콤하고 중독적이다. 그래서 이 카르텔에 소속된 전문가들은 절대로 결이 다른 전문가들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파이를 나누지 않는다. 카르텔이 폐쇄적으로 상속 유전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전문가란 그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한 사람도 분명 해당된다. 그러나 박사학위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오랜 세월의 경험을 축적해도 전문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사실 박사라는 사람들은 자기가 논문을 쓴 특정 분야 말고는 일반인과 다름이 없다. 오히려 특정분야에 대한 과도한 지식으로 인해 전체를 보는 균형감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경력자는 비록 학위는 없을지라도 오랫동안 현장에서 익힌 감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 현장경험이 없는 학위소지자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수백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발전소를 두고 특정 분야의 학위소지자가 현장의 경력자를 무시하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 예컨대 핵발전소지역의 민간환경감시센터에 일하고 있는 20~30년 경력의 실무자는 박사학위 소지자를 능가하는 전문가로 대접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풍토 때문에 평생 현장에서 일한 경력자가 공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뒤늦게 학위를 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세 번째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 내가 등 따숩고 배부르면 세상이 다 그런 줄 안다. 현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피눈물을 알기는커녕 알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일이 터지면 내려와 갖은 위로의 말을 다 늘어놓는다. 영광에서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려오는 전문가들과 관료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고생이 얼마나 많냐며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돌아간다. 정말 면상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이런 자들의 무책임한 발언과 행위를 막기 위해 모든 위해시설에 대한 주민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네 번째는 정말로 중요하지만 전문가들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배우고 익힌 용어와 논리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갇혀 살고 있지만 문제는 전문가들이 세상의 룰을 만들고 드러난 결과를 평가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편협한 시각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데서 원인을 찾는다. 물론 전문지식을 동원해서. 전문가의 견해는 특정 조건 아래에서만 유효하지, 언제 어디서나 옳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소경이 이끄는 체제에 갇혀 살아야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민주주의의 확대 또는 심화밖에 없다. 그런데 전문가들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가장 혐오하는 부류이다.

 

인공으로 생성된 핵물질을 10만년 이상 관리하는 일은 어떠한 전문적 지식을 동원한다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핵마피아들은 전문가를 내세워 이것이 가능하다며 계획을 세우고 국민을 설득하려 든다. 물론 인간의 역사가 불가능에 도전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핵물질의 영구보관만큼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봐야 우리와 지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부디 자신의 재능을 엉뚱한 곳에 쓰지 말고, 차라리 지금까지 어질러 논 핵물질을 거두어들이는데 매진해주길 바란다. 


탈핵신문 2017년 9월호 (제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