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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현장 활동가의 유럽현장 탐방기②

 탈핵에너지전환 사회를 위한 준비, 독일과 핀란드에서 배운다!

정수희(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

 

독일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오래전부터 탈핵을 논의하고 실행해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오스트리아는 가동 직전에 있는 핵발전소를 국민투표로 폐쇄했습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폐기장을 건설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들 나라에서 탈핵국가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사회적 해결 과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여건상 유럽탐방 기간을 넉넉히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978년도에 국민투표를 거쳐 탈핵을 결정했고, 공식적으로는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가 아닙니다. 하여 이번 일정에서는 오스트리아를 잠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핀란드 핵폐기장 전경(출처, POSIVA )

 

핀란드는 전체 전력 생산의 34%를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2개의 지역에서 각각 2기씩, 4기의 핵발전소를 가동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2기의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 및 계획 중에 있습니다. 핀란드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탈핵국가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는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핵발전소를 사용함에 따른 현세대의 책무를 인지하고 이를 책임지고자 하는 핀란드인의 자세와 정책은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습니다.

 

핀란드에서 핵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한 것은 1977년입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78년부터 핵폐기물 처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핵발전의 사용과 동시에 이로 인한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1984년에 핀란드는 핵폐기물의 영구처분을 결정하고 핵폐기물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국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은 자국 내에서 처리해야한다는 원칙을 법으로 정했습니다. 핵발전을 통해 이득을 보는 현 세대가 핵폐기물에 대한 처분 책임도 다 해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제도화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핵폐기물관리기본계획에 따라 핀란드 정부는 약 100여개에 이르는 지역을 핵폐기장 후보지로 광역부지조사(1984~1985)를 진행하고, 이를 다시 5개 후보지로 압축해 부지 특성조사(1986~1992)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최종 4개 부지를 선정해 상세 부지조사(1993~2000)를 실시하고, 주민 수용도 조사(1999)를 거쳐 오킬루오투(Olkiluoto) 핵발전소가 위치한 유라조키(Eurahoki) 지역을 핵폐기장 후보지로 최종 선정했습니다. 이후 지방의회의 의결(2001)을 거쳐 핀란드의 핵폐기장 부지가 확정되었습니다. 부지조사에서 핵폐기장 부지 확정까지 약 17년이 소요됐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의 핵심은 부지선정 과정의 기간에 있지 않습니다. 핵폐기장 부지가 선정됐다 하더라도 지방의회는 언제든지 핵폐기장 건설 및 운영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에 있는 유치 특별지원금도 없습니다. 규제기관은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직접 조사해 주민과 시민이 원하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제공했습니다. 공청회와 설명회가 수시로 개최되었고, 정부 및 규제기관·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사회 전반에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핵폐기장 부지 선정과 건설과정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최종 4개 후보지역 가운데 유라조키는 지반 안정성이 최우수한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라조키가 최종 부지로 선정된 것에는 이 지역에 핵발전소가 운영되고 있고, 주민 수용성이 높으며, 핵폐기물 이동으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것에 큰 가산점을 주다보니 가장 안전한 곳이 후순위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지 선정과정에서 지자체가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보니 시민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유라조키는 지역의회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핵폐기장 부지 확정을 의결하였습니다. 절차상 주민투표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지역의회의 압도적인 찬성과 이들에 대한 높은 신뢰, 그리고 핵폐기장을 건설하고 운영하게 될 사업체의 자체 주민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주민투표가 생략되었습니다. 핵폐기장 부지선정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제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고, 주민투표마저도 생략되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시민단체의 활동이 효과적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핀란드 핵발전소에서 시작된 송전탑들

 

유럽실사를 준비하면서 핀란드 핵폐기장 부지가 정말 경기도만한 암석으로 되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면적은 정확하지 않으나 핵폐기장 부지 주변으로는 암석이 광범위하게 발달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적은 인구였습니다. 핀란드 핵폐기장은 오킬루오투 핵발전소가 가동 중인 유라조키에 있습니다. 유라조키의 면적은 345.64km²으로 부산시의 약 절반인데, 인구수는 5,938(201611, 기준)으로 부산시의 약 600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발전소나 핵폐기장 입구 역시 화려하게 꾸며진 우리나라와 달리 오래된 버스 정류장처럼 외소하고 낡아보였습니다.

 

핀란드는 탈핵국가를 선언한 나라가 아닙니다. 핵발전소의 규모나 숫자도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회적 신뢰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와 핵발전사업자, 규제기관, 전문가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았고, 국민들은 이들 기관이 발표한 자료와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시민들의 높은 참여와 자율성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독일도 비슷했습니다. 탈핵국가로의 이행 과정에서 많은 고비들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높은 참여와 자율성으로 탈핵국가로의 실천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본다고 압니까?” 오킬루오투 핵발전소 및 핵폐기장 홍보관에서 만난 핵산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우리는 그날 단체 관람 인원수를 충족하지 못해 시설 내부 관람을 하지 못했는데, 우연히 세계원자력대학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팀을 그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한국 핵산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그 분은 시설 내부를 보지 못해 아쉽다는 우리말을 듣고서 본다고 압니까?”하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전문가들만 안다. 국민들은 말해도 모른다는 우리나라 핵산업계의 대표적 인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여부를 국민에게 묻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말을 하자, 핵산업계에서는 일제히 비전문가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핀란드에 가서조차 우리나라 핵산업계 종사자의 국민비하 발언을 들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뢰와 자율과 민주주의, 이것이 향후 탈핵국가로의 이행에서 가장 큰 쟁점과 갈등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의 유럽현장 탐방은 아름다운재단 ‘2017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사업 지원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탈핵신문 2017년 9월호 (제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