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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핵 원년, 조급증을 넘어서

진상현(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지난 탄핵 정국에서 한국 사회는 시민의식의 눈부신 성장을 보여주었다. 최순실 사태를 통해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불통은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유신 정권에서부터 이어진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민주주의 진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탈핵 진영에게 있어서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한국 정치의 발전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는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이번 정부는 ‘탈핵 원년’을 선언했다는 측면에서 대한민국 핵발전 역사의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핵 비전을 공식적으로 선포했었다. 물론 환경단체에서는 신고리5·6호기 건설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며 비판하고 있지만, 역대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 탈핵을 주요 공약으로 포함시켰을 뿐만 아니라 취임 이후에 이를 공식화시켰기 때문에, 탈핵 원년을 선언한 첫 번째 대통령으로 인정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핵 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만족스럽지 못한 공약이행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필자도 이러한 우려에 대해 상당부분 공감하고 있지만, 탈핵진영의 ‘조급증’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이러한 탈핵 조급증도 역시나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후쿠시마사고를 목격한 뒤, 아무리 저렴한 에너지일지라도 안전하지 못한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시민들이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위험한 핵발전을 하루 빨리 폐쇄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지극히 정상적인 바람일 수 있다.


다만 현실에서는 냉철할 필요가 있다. 정책은 철학을 바탕으로 세력을 규합해 만들어낸 정치적 산물이다. 탈핵으로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내려면 사상을 토대로 의식화된 시민들의 힘을 끌어모을 수 있어야 한다. 반대편인 찬핵 진영의 친핵에너지 정책은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즉, 핵주권과 경제성이라는 이념을 토대로 한미 원자력협정 체결 이후의 이해관계에 기반해 규합된 세력들이 60년 가까이 만들어낸 정치적 산물이 지금의 친핵에너지 정책이다. 반면에 탈핵진영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 불과 6년여의 시간 동안에 의식화된 시민들의 자발적 결합이 유일한 정치적 세력일 뿐이다. 안타깝지만 탈핵 정책으로의 전환은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문재인 대통령이 보다 강한 탈핵 정책을 선언했다고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보자. 즉, 노후 및 신규 핵발전소의 즉시 중단뿐만 아니라 현재 건설 중인 핵발전소도 대만처럼 당장 중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해도 한국 사회는 탈핵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물론 적어도 현 정권의 임기 5년 동안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 정권에서 신규 핵발전소 10기를 건설하겠다는 대통령이 새로 당선된다면, 대한민국의 탈핵은 공수표가 되고 말 것이다. 게다가 다음 5년이 문제가 아니라 최신 핵발전소는 설계수명이 60년에 가까운 실정이다. 즉, 향후 60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지속시켜줄 후보자들을 매번 당선시키지 않는다면, 한국은 언제고 찬핵 사회로 다시 돌아설 여지가 있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에도 1998년에 적·녹 연정을 통해 탈핵 국가로의 전환을 선언하였지만 2000년 이후 다시 찬핵 국가로 복귀시키려는 정치적 반발이 상당히 치열했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탈핵 독일을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탈핵 진영은 조급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문재인이라는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한국 사회가 탈핵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사회 전반적으로 탈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체력이 갖춰져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탈핵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지금 보다 훨씬 더 넓게 확대해야 한다. 즉, 탈핵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지지자로 바꾸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도록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핵발전소 소재지 주민들과 관련 노동자들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이 탈핵을 반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중단은 지역 경제의 침체를 초래할 수 있고, 핵발전 지원금에 의존해왔던 지역 사회의 경제 구조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울산시 울주군 주민들은 건설 중단에 항의하는 상경집회를 최근에 개최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해외 사례들을 보면 정부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협력할 경우에는 탈핵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소재지의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지역발전을 이룩해낸 사례들이 있다. 이처럼 탈핵진영이 소재지 주민들의 우려를 들어주고 함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 핵발전 관련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핵발전소 축소를 선언한 프랑스에서는 노동계의 집단행동이 상당한 반대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생계를 유지해온 직장이 사라질 수 있다는 기본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만약에 산업 재편을 통해 핵발전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이들도 탈핵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탈핵을 지향한다면, 문재인 정부 5년을 통해서 변치 않는 대못을 박겠다는 조급증은 버려야 한다. 소재지 주민 및 핵발전 노동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함으로써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는 작업은 신뢰 구축만큼의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으로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탈핵 정책을 뒷받침하는 연구 성과도 충분히 축적된 상태에서야 탈핵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에도 반핵운동을 계기로 설립된 생태연구소의 꾸준한 탈핵연구가 바탕이 되었기에 정책전환이 가능했었다.


이제 거꾸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이후 찬핵 진영이 어떤 전략을 지니고 있을지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현 정부 임기 내내 지속적인 저항을 통해 탈핵공약의 이행을 거부하면서, 다음 선거에서는 찬핵 대통령을 당선시킨다는 전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 원자핵공학과 교수들이 주도한 탈핵 반대 성명이 있었다. 게다가 관계 부처 실무자 차원의 관료정치가 작동할 경우에는 드러나지 않는 불복종을 통해서 탈핵 전환에 대한 저항이 이뤄질 것이다. 탈핵 진영은 이번 대통령 하에서 핵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내겠다는 조급증을 버리고 주민·노동자·학계·기업과의 넓은 전선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싸움에서 이겨내기 위한 체력을 길러야할 것이다. 즉, 대만민국 탈핵이라는 긴 안목에서 오랜 전투를 견뎌야하는 장기전에 대비해야할 것이다. 

 


탈핵신문 2017년 7월호 (제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