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5·6호기 공론화로 전면 탈핵의 방향을 제한해선 안 된다!
이경자(노동당 부대표. 핵재처리실험저지30킬로연대 집행위원장)
현 정권의 기반, 의석 수가 아니라 ‘국민의 힘과 열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여. 그동안 쌓인 적폐 청산의 강력한 추진을 약속하며 등장한 현 정부는, 그러나 만만치 않은 반격과 쉽지 않은 경제 위기 속에서 추진 속도와 깊이를 놓고 고심 중인 듯하다.
광장 촛불이 만들어낸 현 정권의 기반은, 과반에 못 미치는 의석이 아니라 지속적인 요구로 형성되는 ‘국민여론’임을 잊어선 안된다.
격세지감!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선언’
탈핵 사회로의 전환. 시작되었는가? 시작될 수 있는가?
공중파에서 연일 ‘탈핵’, ‘탈원전’을 둘러싼 뉴스가 나오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기사와 토론이 벌어진다. 수십년 동안 이룰 수 없었던 ‘핵발전’ 논쟁과 학습이 대통령 선언 한마디로 이뤄진 것이다. 가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행사에서 “탈핵사회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지속가능한 환경,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에너지정책의 방향이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인정해야 하며,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탈핵 선언’을 천명했다. 이 선언 이후 우리 사회는 찬핵과 탈핵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선언이 현실을 대체할 수는 없으나, 선언만으로도 전쟁은 시작될 수 있다. 핵마피아들은 학계까지 동원하면서 전방위적으로 비판과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으며, 언론에서도 격론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드디어 탈핵 사회로 한걸음 나아갈 것인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6월 27일(화) 발표된 ‘신고리5·6호기의 운명, 공론화 통한 결정’ 방향은 매우 실망스럽다. 백지화를 공약했던 신규 핵발전소들 중에서 왜 하필 신고리5·6호기만인가? 왜, 백지화 선언 대신 공론화로 공을 넘겼을까?
“건설 중인 핵발전소 백지화, 계획 중인 핵발전소 지정고시 해제, 월성1호기 폐쇄, 고준위핵폐기물관리계획 재공론화,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와 제2원자력연구원 전면 재검토, 핵발전소 인근 주민 이주대책과 방재계획 마련, 탈핵로드맵 수립” 등이 대통령 후보 시절 현안 지역주민들과 맺은 협약이다. 담지 못한 현안들이 많지만, 이 협약 이행만으로도 탈핵 전환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이 될 수 있기에 새 정부를 지지하고 기다려왔을 것이다.
우려! “대선 탈핵 협약, 시급하지 않은 게 없고, 절실하지 않은 지역 없다!”
정부가 제시한 신고리5·6호기(공정률 28%, 실제 공사율 10%) 건설 중단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정부가 공론화라는 우회로를 통해 전면전을 피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탈핵 전환이란 반세기 이상 특권을 누려온 핵마피아들의 엄청난 저항과 반발을 넘어서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인가, 아니면 정부 내에서조차 강력한 탈핵 의지가 모아지지 않았다는 반증인가?
탈핵 전환은 당연히 결단과 함께 국민 공론화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의 강력한 지지 속에 탈핵사회로의 전환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운영허가만을 남겨 놓은 신고리4호기(공정률 약 99%), 신한울1·2호기(공정률 약 95%)를 포함한 여타 신규핵발전소 등, 대선 탈핵 주요 협약 사항 전체를 대상으로 공론화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일각에서는 지금 제기된 신고리5·6호기 현안에 대응하면서 ‘중단’ 또는 ‘백지화’를 이뤄내고 그 여세를 몰아 탈핵로드맵 전체를 관철해 나가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탈핵 협약 그 어느 것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게 없고, 절실하지 않은 지역이 없다. 선후의 문제나 중요성의 문제로 보기에 핵 관련 현안들이 너무도 많다.
신고리5·6호기 대응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을 집중하게 될 때, 다른 현안들은 묻히거나 강행되어 또 다른 문제들로 이어지면서 총체적인 탈핵 사회 전환이라는 큰 과제가 지연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상대는 반세기 이상 무소불위의 특권과 엄청난 부를 누려 온 핵마피아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의 의도와 달리 핵마피아들은 신고리5·6호기를 넘어 탈핵 전환 전체를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핵발전 확대를 옹호하는 강력한 대응이 벌어지고 있는 바, 탈핵 진영이 더욱 적극적으로 핵발전을 둘러싼 모든 문제들을 공론화하면서 조속한 탈핵 전환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고민! ‘공약의 완전 이행’ 촉구와 ‘신고리5·6호기 찬핵진영 공세’에도 맞서야 하는 상황
탈핵 진영의 고민은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 추진을 지지하면서도, 그 속도와 폭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다. 사실상 탈핵이 아니라는 주장부터 정부의 손에 탈핵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주장까지. 공약의 완전 이행을 촉구하는 활동도 필요하고, 강력한 핵마피아들의 공세에도 맞서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찬핵 진영은 정부의 탈핵 전환 선언을 독단적이고, 너무 빠른 결정이라며 민주적인 절차를 운운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그들이 국민들과 함께 에너지 정책이나 핵발전 진흥 정책을 논의한 적이 있었던가?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한 신고리5·6호기 공론화는 오히려 의제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해서 큰 방향 전환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론화 논란을 벌이는 사이 신고리4호기와 신한울1·2호기는 운영 허가를 받아 가동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탈핵 선언 정부 하에서 27기의(현 24기) 핵발전소를 갖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단 1기의 핵발전소도 늘지 않는 게 탈핵 선언의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더구나 이미 수명을 다한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둘러싼 재판에 대한 법원의 기각 결정은 정부 정책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다 현안 지역들의 요구는 긴박하고 절실하다. 터전을 빼앗긴 밀양 할매·할배들의 애끓는 송전탑 싸움, 몸 속 삼중수소로 인한 지속적인 피폭 상태이면서 1천일이 넘게 싸우는 월성 나아리 주민들(경주)의 이주 문제, 잦은 지진으로 불안한 경주, 가동 중인 핵발전소들의 위험한 고장과 은폐, 포화상태인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 문제 등. 모두 적게는 10여년에서 30여년 가까이 길고 절박한 싸움을 벌이는 지역들이지 않은가!
대전만 해도 대도시 한복판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을 이용한 핵재처리 실험을 7월 예정으로 했다가, ‘전면 재검토’ 공약 이후 주춤한 상태지만 뚜렷한 정부 지시가 없기에 대기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탈핵 전환에 대한 분명한 입장 천명과 함께 협약들에 대한 로드맵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지역마다 이런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물음! 탈핵의 첫걸음 무엇이 되어야 하나?
물론 우리는 핵마피아들에 맞서 신고리5·6호기 전면 백지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출발이자 기준인 탈핵 공약의 전면적 이행을 촉구하는 것과 함께해야 한다. 올해 말로 예정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도 이런 공약의 정신과 내용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계획이 될 수 없다.
‘탈핵 사회 전환’이라는 중차대한 길목에서 그동안 숨겨져 왔던 핵발전의 민낯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싸운다면 어느 누가 핵발전 지속을 고집할 수 있겠는가. 최소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고준위핵폐기물 처리에 어떤 해법도 없음을, 날마다 이런 엄청난 핵쓰레기를 쏟아내는 핵발전소를 멈추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경제적이라는 걸 왜 설득하지 못하겠는가.
현 정부는 5년 동안의 한시적인 권력이고, 핵마피아들은 불멸의 시간을 누리려 한다. 그래서 최대한 이 정권에서 탈핵에너지전환 기본법과 로드맵 등 법과 제도를 만들고,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탈핵은 선택이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라는 게 명백해졌다. 그래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고, 감히 단언컨대 그것은 현 정부의 운명을 걸만한 문제일 수도 있다. 역사는 수없이 엎어지고, 배반하고 뒤엉키며 그러면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탈핵으로의 첫걸음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탈핵 선언인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24기 핵발전소에서 단 하나의 증설도 허용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탈핵 협약과 공약의 전면적이고 완전한 이행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탈핵 원년으로 2017년이 기록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즉각적인 협약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한다.
신규핵시설 건설 일체의 중단 및 백지화 선언!
월성1호기 즉각 폐쇄!
고준위핵폐기물 재처리 실험과 고속로 연구 중단!
핵발전소 인근 주민 대책 마련! 탈핵로드맵 수립!
탈핵국민위원회 설치!
이경자(노동당 부대표. 핵재처리실험저지30킬로연대 집행위원장)
탈핵신문 2017년 7웛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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