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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일본 따라하다가 일본 꼴 난다!

황대권(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대표)


아시아의 백인 일본의 백인숭배와 아시아인 멸시는 뿌리가 깊다. 에도시대 이전까지는 일본이 큰소리 칠만한 국력과 문화가 아니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대항해시대에 조선과 중국은 쇄국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반해 일본은 일찍부터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일본사람들을 원숭이라고 놀려대는 것은 남 흉내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바로 그 흉내내기로 인해 일본은 남보다 한발 앞서 갈 수 있었다. 바로 이 점, 자기보다 우월한 쪽을 따라잡으려고 애를 쓰면서 뒤처진 쪽을 멸시하는 것 때문에 일본은 고도의 문명을 일구고도 존경을 받지 못한다. 세계2차대전도 후발자본주의 국가인 일본과 독일이 선발국인 영국, 미국, 프랑스를 따라잡으려고 일으킨 전쟁이다. 일본과 독일은 패배하고 말았지만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엄청난 산업과 과학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이후 세계자본시장에 선두주자로 오르게 되는 역설을 경험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진 이유로 미국이 보유한 세 가지 장비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지금은 너무도 흔하여 과연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엔 그 장비들의 위력이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바로 레이더와 불도저,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아시바라고 부르는 구멍뚫린 철판이다. 이유는 태평양에서 섬을 점령한 후 비행장을 만드는데 일본은 몇 달이 걸리는데 미국은 이 장비들을 사용해 단 몇 주에 끝냈기 때문에 당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전후에 일본은 건설장비와 전자부문에 엄청난 투자를 하여 세계 초일류의 실력을 갖추게 된다. 먼저 전자로 세계를 제패하고 뒤이어 자동차, 중장비, 정밀기계 등의 시장을 차례로 접수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장기불황에 들어서는데, 때맞춰 신흥산업국인 한국과 대만, 중국이 전자부문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한다. 일본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산업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세계 핵발전 시장이 얼어붙자 후발주자인 일본은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한다. 당시에 군수산업 말고는 핵발전처럼 덩치가 크고 짧은 기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분야가 없었다.

 

그러나 기술강국 일본이지만 불행하게도 핵발전에 관한 원천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핵폭탄을 맞고 패배한 나라의 비애였다. 세계적으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제너럴 일렉트릭’, 러시아의 ‘ASE’, 그리고 프랑스의 아레바밖에 없다. 프랑스도 실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에서 원천기술을 돈 주고 산 것이다. 기회를 노리던 일본은 전자산업으로 재벌이 된 도시바가 불황에 허덕이던 웨스팅하우스를 통째로 사들이고, ‘미쓰비시 중공업아레바, ‘히타치 전기제너럴 일렉트릭과 각각 합작을 선언한다. 이 모두가 2006년 한 해에 벌어진 사건이다. 말하자면 2006년을 기점으로 일본은 명실 공히 세계 최대의 핵발전 생산능력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이미 50여기를 가동하고 있음에도 2013년까지 13기의 핵발전소를 더 건설하겠다고 계획을 세운다. 과연 일본의 불황돌파와 핵발전 강국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정확히 5년 뒤인 2011년 세계를 방사능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너무 잘 나가는 일본을 시기한 신의 질투일까? 사고현장으로부터 30km 이내에 사는 주민들이 모두 소개되었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인근 수백 km까지 오염되고 말았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지금까지 들인 돈이 200조원이 넘지만 언제 수습이 가능할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6년이 지난 지금도 후쿠시마는 지상은 물론 땅속, 바닷속 가릴 것 없이 전방위로 방사능을 흘려보내고 있다. 당장은 못 느끼겠지만 일본국민들은 섭취하는 식품을 통해 서서히 방사능에 중독되고 있다.

 

사고 후 각종 매체를 통해 드러난 동경전력회사의 핵발전 운영 실태는 어찌 그리 대한민국 한수원과 닮았는지 아연할 지경이다. 전문가의 경고무시(후쿠시마 앞바다에서 큰 지진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보고서를 무시), 수치 조작, 사고 은폐, 비밀주의, 로비와 매수, 정경유착한편 일본정부는 핵발전과 관련된 정보를 함부로 유포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후쿠시마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판촉행사를 공공연히 하는가하면, 사고의 실상을 가린 채 세계인들을 속여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권을 따낸다. 이 모든 비정상 또는 국가우선주의의 배후에는 아베 수상을 정점으로 하는 핵마피아와 극우정치세력이 있다. 사고 직후 일본정부는 국민들을 무마하기 위해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지시켰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고의 충격이 어느 정도 수그러지니까 슬금슬금 핵발전소를 재가동하고 있다. 벌써 3기가 재가동되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추측된다. 사고 후 괴멸적 타격을 입은 핵발전 사업자들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던 도시바는 그동안 적자가 누적되어 주력사업인 전자회사까지 팔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 중이란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운이랬던가? 일본이 미국과 러시아의 핵사고를 빌미로 핵발전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다가 철퇴를 맞았는데, 한국 정부가 이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후쿠시마사고야말로 한국이 세계 핵발전 시장을 장악하는 호기로 본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고 직후 자기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핵폐기물공론화 작업팀을 사전통보도 없이 다 없애버리고(이 사안은 박근혜 정부가 떠맡아 지금까지도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 핵발전 수출에 매진한다. 임기 마치기 직전에 부랴부랴 성사된 계약조건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고, 대신 세계에서 6번째로 핵발전 수출국가가 되었다는 자화자찬만 있다. 그의 재임 첫해인 2008년에 작성된 5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 의하면 2030년까지 핵발전소를 40기까지 늘이고 핵발전 비중을 60%까지 확대한다고 되어있다. 이는 명백히 당시 일본의 핵발전붐에 자극받은 일본 흉내내기이다.

 

일본 따라하기의 마지막 수순은 후쿠시마급의 사고를 맞이하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자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작년에 갑자기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는 동해안 일대에 600여회의 작은 지진이 엄습해왔던 것이다. 다른 것 다 필요없고 딱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핵발전소를 더 이상 건설해서는 안 된다. 하나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이고, 또 하나는 처리 불가능한 핵폐기물이다. 이를 놔두고 경제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하는 것은 다 개소리다.

 

지금까지 일본 흉내내서 어느 정도 이득을 보았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흉내낼 필요는 없다. 일본인들이 보기엔 얄미울지 모르겠으나, 과감히 털고 일어나 재생에너지의 새 길을 가야한다. 


 

탈핵신문 2017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