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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창간호> 독일 탈핵 선언 이후, 1년을 돌아본다

독일 탈핵 선언 이후, 1년을 돌아본다

염광희(독일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독일 정부가 2022년 핵폐기 결정을 내린 지도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독일에서 벌어진 탈핵을 둘러싼 기술적·정치적인 논쟁을 살펴보는 것은 탈핵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토론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기술 논쟁·대규모 정전 사태는 물론, 전기요금 인상도 없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가 독일에 전해질 즈음, 수만 명의 시민들은 슈투트가르트 근처에 위치한 네카베스트하임 발전소의 조속한 폐쇄를 기원하는 인간띠잇기 행사를 펼치고 있었다. 후쿠시마 발전소가 수소 폭발을 일으킨 그 시각,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오래된 핵발전소 7기를 3개월간 가동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몇 해 전부터 기술적인 결함으로 가동이 사실상 중단된 함부르크 인근의 크륌멜 발전소까지 포함하면, 전체 핵발전소 17기의 절반가량인 8기를 멈춘 것이다. 두 달이 흐른 5월 30일, 메르켈 총리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이 8기의 영구 가동 중단을 선언했고, 남은 9기도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언론들은 이와 같은 메르켈 총리의 결정을 대서특필했고, 특히 한국의 환경단체들도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으나, 정작 독일 시민들은 위험천만한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사용해야 하는 것이냐며 메르켈 총리를 성토했다. 반면 독일 핵 산업계는 우려를 넘어 앞으로 일어날 대규모 정전사태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독일의 핵폐기 선언 원년 2011년이 지나갔다. 결과는, 대규모 정전사태는커녕, 전기요금 인상도 없었고 외국으로부터 전력을 수입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6TWh 이상의 전력을 여전히 외국에 수출했다. 핵폐기의 대안인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는 눈부신데, 2010년 104TWh였던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생산량은 2011년 121TWh로 16% 이상 증가해 전체 전력의 20%를 만들어냈다. 핵산업계의 ‘경고’는 기우였음이 증명된 셈이다.

독일 녹색당의 핵폐기 전략은 유효했는가?

지난 해 독일의 핵폐기 결정을 되돌아볼 때 반드시 살펴봐야 할 것은 독일 녹색당이 이 과정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하는 점이다.

2010년 가을 메르켈 행정부가 지난 2002년 확정된 ‘운전 중인 핵발전소 수명 후 폐기(2022년 이전 핵폐기)’ 결정을 뒤집어, 최대 14년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강행 처리한 후 독일 시민사회는 수시로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이러한 시민들의 열기에 힘입어 녹색당의 지지도는 20%를 넘기에 이르렀다.

후쿠시마사고 직후 치러진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지방선거에서는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 갈등과 더불어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으로 사상 최초로 녹색당 출신 주 총리가 선출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6월 실시된 전국 차원의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의 지지율은 28%로 나타나, 이대로 총선이 치러지면 녹색당 총리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만큼 녹색당은 2010년 가을 이후 만들어진 핵정국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월 말 하원의회 표결을 앞두고 녹색당은 메르켈 총리의 2022년 핵폐기 제안에 동의하는 결정을 내렸다. 후쿠시마사고를 계기로 더 빠른 핵폐기를 촉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핵산업계에 배상해야 할 비용 문제라는 현실적인 장벽과 더불어 매번 반대만 외치는 정당으로 비쳐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득세한 것이다. 2011년 6월 30일 독일 하원 표결에서 녹색당을 포함한 기민당, 자민당, 사민당이 찬성표를 던져 재적의원 622명 중 513명 찬성, 79명 반대, 8명 기권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 녹색당과는 달리 좌파당은 조속한 핵폐기를 주장하며 끝내 반대표를 던졌다.

후쿠시마 핵정국을 주도했던 녹색당의 기세는 이로써 완전히 꺾였다. 메르켈의 정책에 동의함으로써 차별화에도 실패했을 뿐 아니라, 지지 세력인 환경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로부터도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체르노빌에 이어 또다시 후쿠시마가 보여준 핵재앙의 공포를 2022년까지 짊어지는 것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데 녹색당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녹색당의 에너지 담당자들은 녹색당의 에너지 정책은 메르켈의 핵폐기 정책과 내용적으로 다르다고 애써 강조하지만, 이미 동력을 잃은 녹색당의 핵정책은 어느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다. 9월 치러진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초의 녹색당 출신 수도 시장이 탄생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으나, 결과는 사민당, 기민당에 이은 3위에 그쳤다.

많은 이들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독일이 보여준 발빠른 핵폐기 결정을 반기고 있지만, 실은 지난 2002년 사민당-녹색당이 확정한 ‘2022년 이전 핵폐기’ 결정으로 회귀한 것에 다름 아니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보여준 녹색당의 대응은 그래서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내각제를 채택한 독일의 정치 시스템에서 녹색당이 더 빠른 핵폐기를 요구한다고 이것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었지만, 의회 통과와는 별개로 원외에서 계속해서 토론을 불러일으킬 여지는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통한 여론몰이도 가능했다. 녹색당의 2011년 6월 결정은 독일 사회의 핵폐기 열풍을 비롯해 가속도가 붙은 녹색당의 지지율 상승에도 찬물을 끼얹은 과오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