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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유럽은 핵발전소를 폐기하고 있다

2012년 1월 18일 수요일 7면 기사
염광희(독일 베를린자유대학환경정책연구소박사과정 연구원)
















지구 반대편인 일본에서 벌어진 핵사태를 접한 유럽은, 그러나 가장 빠르고 신속하게 탈핵 세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노후한 7기의 원자력발전소를 3개월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곧이어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각계 전문가 17인으로 구성, 8주간의 논의를 펼치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윤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를 받아든 메르켈 총리는 2011년 5월 30일, 독일에 있는 총 17기의 원전을 2022년까지 완전폐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3개월간 운전을 중단했던 7기의 원전과 고장으로 수년째 정상적인 가동을 못하는 함부르크 인근 크륌멜 핵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하는 조치를 내렸다. 



탈핵의 확산


독일의 핵발전소 폐쇄 움직임은 유럽의 여러 나라로 매우 빠르게 퍼져 나갔다. 스위스도 자국내 5기의 핵발전소를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6월 국민투표에서 새로운 발전소 건설을 백지화했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비록 운전중인 핵발전소의 조속한 폐쇄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새로운 발전소 건설이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고 윤리위원회에 참여한 미란다 슈로이어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개별 국가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유럽연합 차원에서 스위스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럽연합 영토내에 운전 중인 총 143기의 핵발전소에 대해 지난 해 6월 1일부터 강도 높은 ‘스트레스 테스트(안전도 정밀진단)’를 펼치고 있다. 자연 재해와 비행기와의 충돌 같은 운전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또는 작업자의 ‘실수’에 따른 핵발전소 안전도를 점검하는 이 진단의 최종보고서는 올 6월 말 발표될 예정인데, 그 결과에 따라 유럽연합 핵발전소의 운명이 빨라질수도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유럽에서 이처럼 발 빠르게 탈핵을 선언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 첫 번째는 체르노빌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일 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고슬라비아, 핀란드, 스웨덴, 불가리아, 노르웨이,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폴란드는 체르노빌 사고로 약 8.8천조 베크렐 이상의 세슘137에 피폭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독일의 발 빠른 핵폐기 결정을 전한 <뉴욕타임스>는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핵발전에 대한 깊은 혐오가 있는데, 후쿠시마 사고가 이들의 반대에 불을 붙였다”고 평가했다. 체르노빌로부터 1,100km 떨어져있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체르노빌의 방사능 낙진 때문에 사고 9개월 이후부터 다운증후군 증상의 아이들 출산이 급격히 증가했고, 남쪽의 뮌헨 주변에서는 사고 후 16년이 지난 2002년에도 유럽연합 기준치보다 10배가 넘는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그러나 당시 서유럽의 핵산업계는 체르노빌 사고가 폐쇄적인 사회주의국가 소련이기에 발생한 것이라며, 자신들이 운영하는 핵발전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소련 것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도, 민주적이며 또 기술 수준도 높은 서방세계 핵발전소는 절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독일, 프랑스, 영국의 수많은 핵발전소에서 중대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이터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핵기술 선진국인 일본의 핵발전소가 자연재해인 쓰나미 앞에서 맥없이 주저앉으면서 폭발하는 모습을 본 유럽시민들은 자국의 핵발전소가 과연 사고로부터 안전한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민의 투쟁
무엇보다, 유럽의 많은 나라가 탈핵을 결정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은 시민의 투쟁일 것이다. 탈핵의 진앙지라 할 수 있는 독일,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핵발전소 폐쇄를 요구하 는 집회와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직후인 2011년 3월 26일, 무려 25만 명이 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탈핵을 외쳤다.


그리고 그 다음날,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이 반세기 이상 집권했던 공업도시 슈트트가르트가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사상 최초의 녹색당 주지사가 선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2010년 야 당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산업을 위해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핵산업계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앙겔라메르켈 총리는 결국 반 년 만에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로부터 1,000km 거리에 있는 기술 강국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노심용융이 일어났다. 지구 반대편의 유럽이 후쿠시마 사고 후 탈핵을 선언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정부로 하여금 탈핵을 결정하도록 만들었는지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2012년 1월 18일 수요일 7면 기사
염광희(독일 베를린자유대학환경정책연구소박사과정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