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마피아 거짓주장 파헤친 장정욱의 <재처리와 고속로>
부안과 경주의 경우를 보면 중∙저준위 방폐장 문제만해도 숱한 홍역을 치러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정작 고준위핵폐기물로 훨씬 더 위험한 사용후핵연료의 문제는 베일 속에 철저히 가려서 우리의 인식영역 밖에서만 존재해 왔다. 적어도 지난 9월 전까진 말이다.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이 1988년부터 2010년까지 7차례에 걸쳐 폐연료봉 1390개와 손상 핵연료 309개 등 무려 3.3톤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고리와 영광, 울진의 핵발전소에서 원자력연구원 대전 본원(유성구 덕진동)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 목적은 미국도 ‘재처리’로 규정하는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원자력연구원은 “재처리가 아니고 재활용이다, 사용후핵연료의 95% 이상을 재활용할 수 있다, 핵확산성이 없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양이 줄어든다”라고 파이로프로세싱 공정과 소듐고속로(SFR) 개발을 선전하며 정당화하고 있다. 안전성과 연구개발의 성공에 의구심을 갖는 시민들에게는 애국심으로 일하는 자기들을 믿어 달란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꿈의 기술’이라고 말하는 그 꿈이 실상은 악몽일 뿐이라고 그 안전성과 경제성을 강력히 의심하는 다른 전문가의 말에는 귀를 닫아버린다. 과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온 국민과 대전 시민 몰래 고준위핵폐기물을 들여온, ‘핵마피아’라는 별명이 붙은 그들의 말을 우리 시민은 아무런 의구심 없이 순진하게 믿고 따를 수 있는가?
답답한 마음에 탈핵을 소망하는 시민들이 붙들고 공부를 시작한 책이 있다. 재일 원자력 정책전문가 장정욱 교수(마쓰야마 대학 경제학부, 일본환경회의 이사)의 저서인 『재처리와 고속로(경향신문, 2016)』이다. 2년 전 출간된 『사용후핵연료 딜레마(김명자, 김효민 저, 까치, 2014)』가 중립적 입장에서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및 정책의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면 이 책은 단순히 원론적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원자핵공학의 안방까지 들어간다. 이공계라도 원자핵공학 전공이 아니라면 잔뜩 긴장해야 할 만큼 전문적인 내용이 제법 나와 살짝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가 얼마나 위험한지, 핵연료는 어떤 생애를 거치는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는 어떤 공정들이 있는지, 고속로는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개발과 좌절의 경로를 거쳐왔는지 등 핵재처리 전반과 파이로프로세싱 그리고 고속로에 대해 차근차근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원자력정책을 전문 분야로 하는 경제학자지만, 약 30년간 봐 왔던 재처리와 고속로의 공학적 문헌들을 근거로, 그동안 핵마피아의 일방적 주장이 얼마나 비과학적이며 또 실현 가능성이 없는지에 대해 지적한다. 시민사회는 핵마피아의 의도적인 정보 은폐와 조작 때문에 비윤리적인 핵발전소의 추진을 허용해왔다. 그러나 현재의 시민사회는 미래세대를 위해, 핵발전소보다도 더 큰 피해를 가져올 건식재처리와 소듐고속로(SFR)의 추진을 막아야 하는 사명과 의무를 지니고 있다. 책임감 있는 시민들이 핵마피아의 궤변을 스스로 검증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핵발전소사고를 자동차 사고에 비교하는 어이없는 사고방식으로 몰가치적이고 한정적인 전문가의 지식만을 과신하는 핵마피아의 근거 없는 궤변에 언제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순 없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핵 사고가 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언제까지 비전문가라며 그들로부터 무시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신태규 (대전 유성구 주민)
탈핵신문 2017년 1월호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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