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칼렌바크 지음, 최재경 옮김, 『에코토피아 비긴스』, 도솔, 2009
지난 미국 대선에서 대표적인 ‘기후회의론자(기후변화의 실체를 의심하고 대응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이들)’로 꼽히는 트럼프의 당선은 기후변화와 화석에너지 문제를 걱정하는 이들을 더욱 심난하게 했다.
트럼프 정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미국 시민들은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급기야 캘리포니아주의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칼렉시트(Calexit)’ 주장이 진지하게 개진되기도 했다. 영국의 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처럼 캘리포니아주를 미국 연방에서 독립시키자는 것인데, 아름다운 자연과 좋은 경제 여건을 갖고 있으면서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이 지역에서 나올 법한 주장이다.
그런데 이 ‘칼렉시트’를 이미 40여년 전에 예언한 소설이 있으니 바로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김석희 옮김, 정신세계사, 1991)다. 1975년에 처음 출간된 이 공상과학 소설은 정확히는 캘리포니아주 북부와 인근의 워싱턴주, 오리건주가 미국 연방에서 독립하여 그들만의 환경친화적 법률과 제도를 만들어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 책은 다소 폐쇄적인 정치 사회로 알려졌던 이 나라를 방문한 한 미국 기자가 신선한 충격과 함께 겪은 일들을 기사로 전하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절판되어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의 프리퀄, 즉 1981년에 쓰여졌지만 그 전편에 해당하는 『에코토피아 비긴스』가 출간되어 있으니 이 책만 보아도 대강의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에코노피아 비긴스』는 환경오염, 핵발전의 위험, 석유와 자동차 의존, 군사 경쟁 같은 문제들을 외면한 채 정치적 손익에만 몰두하는 미국 연방의 현실에서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생존자당’을 만들어 에너지 독립과 정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이들의 경험과 생각을 좇아간다.
생존자당은 열 개의 ‘하지 말라’ 강령을 발표하는데, 그 첫 번째는 “다른 생명을 멸종시키지 말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소설 속에서 80년대 후반 미국 시애틀의 핵발전소 퓨젯 1호기의 폭발 사고가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묘사된다. 노후 핵발전소의 문제점이 거듭 제기되었음에도 당국은 무시하였고, 결국 냉각계통 사고로 멜트다운이 일어나지만 피난은 거의 불가능함이 드러난다. 사고의 여파 속에 생존자당의 정치 운동을 통해 워싱턴주지사가 해임되고 워싱턴주에서 핵발전소 건립이 금지되면서 에코토피아를 향한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생존자당에게 핵에너지는 절멸적 위기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것이었다.
효율이 매우 좋고 보급이 용이한 태양전지를 발명한 젊은 물리학도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태양전지가 전국적으로 보급된다면 화석에너지로부터의 탈출이 훨씬 빨라질 테지만, 오히려 그것에 위협을 느낀 기성의 에너지 세력은 생명에 위협까지 가하며 이를 막으려 한다. 이 기술을 특허출원하면 보급이 제한될 것을 고민한 물리학도는 설계도와 활용법 전체를 공개하는 일종의 ‘오픈소스’를 선택한다. 에너지 전환이 기술 개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측면을 가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에코토피아는 에너지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교통과 문화 모두가 지금의 우리와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함을 보여준다. 에코토피아에서 사는 사람들은 한 주에 20시간 일한다. 노동시간을 그만큼 단축하면 탈핵도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많은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들이 금세 현실이 되었듯, 에코토피아는 탈핵 한국의 미래를 넌지시 비춰준다. 한국은 에코토피아처럼 국토 일부를 분리 독립하기엔 너무 작은 나라이기도 하거니와, 그냥 한반도 전체를 탈핵하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멀지 않은 날에 함께 ‘탈핵한국 비긴스’를 돌아보자.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탈핵신문 2017년 1월호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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