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핵사고사』, 니시오 바쿠, 김신우·윤금희 옮김, 자주달개비, 2017
불 구경과 사고 구경이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세계의 핵사고를 일별하는 일은 제법 고통스럽다. 비밀주의와 전문가주의가 득세해 온 핵산업계와 핵발전 추진 정부들에서는 이 골치 아프고 마음 아픈 사고들을 은폐하거나 경미한 쪽으로 치장해왔기 때문에 아직 그 실체와 정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수두룩하다. 그런 부분들을 파헤치고 알리는 것을 자신의 본분으로 삼는 일본의 ‘원자력자료정보실’의 공동대표이자 반원전신문[反原発新聞] 편집장이 이런 책을 엮어낸 것은 그래서 무척 적절하다 하겠다.
이 책은 1945년, 즉 핵무기 개발과 사용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70년간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435건의 핵사고를 요약 정리한 자료집이다. 물론 이것이 핵사고의 전부는 아니며, 국제 등급기준 이하의 경우라서 보고되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고들도 숱하게 존재한다. 적어도 이 435건에 대해서는 길게 혹은 짧게 기록으로 남겨서 보다 깊은 점검과 논의의 단초로 삼아달라는 것이 저자의 의도일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핵사고의 종류는 군사용 핵시설, 핵무기, 연구개발단계 핵반응로(=원자로), 핵발전소, 핵연료사이클, 방사성폐기물, 수송, 핵함선, 핵위성, 방사선원을 망라하며, 각 사례마다 사고의 종류와 등급을 쉽게 알 수 있게 아이콘으로 표시해 놓았다. 그만큼 핵사고의 종류 자체도 다양할 뿐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조합들은 더욱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수록된 핵사고의 사례 중에는 의료용이나 산업용 방사능 선원(線源)에 의한 피폭 사고가 적지 않은데, 이는 핵발전이나 핵무기와 무관하기 때문에 경시될 것이 아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방사능이 우리 몸에 어떤 위해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가장 가까이 보여줄 뿐 아니라, 평화와 발전을 위한 용도라 하더라도 핵은 언제나 어둡고 무서운 이면을 가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핵발전과 핵무기에 관련된 많은 사고들의 원인은 따지고 보면 사소한 조작 실수나 설계상의 오류, 또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들이곤 했다. 하지만 공장이나 도로 상에서 벌어지는 사고와 동일한 원인이라 하더라도, 핵을 배경으로 하는 사고는 바로 핵사고이기 때문에 차원이 달라진다. 처리 곤란한 방사능 누출, 멈추지 않는 임계 반응,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는 간단한 수습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세계의 핵사고는 ‘진화’한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은 연도 순으로 사고를 기록하면서 시대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는데, 1950년대 전반기가 ‘잇따르는 임계사고’의 시대라면, 1950년대 후반기는 우랄 핵참사 등 ‘은폐되는 대 사고’의 시대로, 1960년대 전반기는 미국, 소련과 유럽 정부가 핵경쟁을 벌이면서도 서로의 사고를 감춰주는 ‘냉전시대 핵사고’의 시대로 전개된다. 이어 수소폭탄 낙하, 일본열도 사고, 쓰리마일 사고, 방사선원 피폭 확대의 시대를 거쳐, 1980년대는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지구피폭’의 시대를 맞게 된다. 1990년대 후반기는 사용후 핵연료의 운송과 재처리에서 각종 사고가 빈발하는 ‘연료사이클의 악몽’ 시대, 2000년대 전반기는 ‘노후되는 핵발전소’의 시대로 규정된다. 그리고 핵발전소를 덮치는 자연재해와 멜트다운(노심용융)의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실수, 착각, 과신, 만용, 비밀, 묵인 같은 인간적인 것들이 겹쳐서 사고는 이어졌다. 핵사고의 뿌리를 자르지 않는다면 너무나 ‘인간적’인 핵사고의 리스트는 계속될 것이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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