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독점 구조였던 일본 전력산업
일본 전력산업의 시작은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기 1년 전인 18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기는 대학 캠퍼스를 밝히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에디슨 전기회사가 설비와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후 도쿄전등회사가 독일 AEG에서 50Hz(헤르츠) 발전기를 도입하고, 오사카전등회사가 미국 GE에서 60Hz발전기를 도입해서 서일본과 동일본의 전력 주파수가 지금까지 다른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일본의 전력산업은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약 700여개의 회사가 난립하였지만, 이후 대형 전력회사로 통합, 정부의 독점체계를 거치면서 점차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던 중 1951년 전기사업구조개편법령에 의해 발전, 송전, 배전이 지역별로 구분되고 해당 구역 안에서 민간 기업이 전력을 독점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도쿄전력은 도쿄지역에만 전력을 판매하는 형식이다.
단계적 전력자유화와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러한 지역 독점 시스템은 1990년대 전 세계적인 전력민영화 흐름을 타고 조금씩 바뀌었다. 1995년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도매 전력시장이 자유화된데 이어, 2000년 20kV 이상 특별고압 사용자에 대한 소매공급 자유화,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고압 수용가에 대한 소매 자유화도 이뤄졌다.
하지만 일반 가정과 소규모 전기 사용자에 대한 자유화는 이후에 진행하기로 하고 진행되지 않았다. 2008년 3월 일본 경제산업성 요청에 따라 열린 종합자원에너지조사회 전기사업분과회는 추가적인 소매부분 자유화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미 자유화된 부문에 대해서도 규제 완화 효과를 검증한 이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자유화의 주요 근거였던 경쟁 강화를 통한 효율성 향상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는 다시 전력자유화 흐름을 촉진시켰다.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전력독점과 총괄원가방식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총괄원가방식이란 전기사업자에게 일정 수준(3% 정도)의 이윤을 보장하는 제도로, 이 때문에 전기사업자는 효율성과 상관없이 더 많은 전력설비를 투자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전력 부문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핵발전소를 지탱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탈핵-에너지 진영이 적극적으로 제기한 것이기도 했다.
가스, 통신사, 지자체, 제3자 위탁 업체 등 200여개 전력사 난립
2012년 7월, 경제산업성 ‘전력시스템 개혁전문위원회’는 전력소매 전면 자유화, 발전과 송전사업의 분리를 중심으로 한 ‘전력제도 개혁 기본방침’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전력회사의 지역독점은 철폐되고, 신규 전기회사 설립을 촉진하는 정책이 수립되었다. 또한 일반 소비자들도 전기회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요금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 도쿄에 사는 일반인이라면 과거엔 도쿄 전력을 통하지 않고는 전기 공급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다른 전기업체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력회사는 약 200여개. 지역독점 당시 일본 전국의 전력회사가 10개였으니, 단시간에 20배로 전력회사가 늘어난 것이다. 200개 전력회사 중 가장 두각을 보이는 것은 가스회사이다. 도쿄가스, 오사카가스, 도호가스 등 기존 지역 도시가스회사가 직접 전기사업에 뛰어들기도하고, Ennet처럼 각 가스업체가 출자형태로 새로운 전기업체를 만들기도 했다. 또 KDDI나 소프트뱅크 같은 통신회사의 진출도 활발하다. 다른 나라 전력자유화 사례를 보면 가스와 통신회사가 전기사업에 뛰어드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망(Network)을 관리하는 기존 업무와 유사점이 많고, 전기-가스-통신을 묶는 결합상품을 만들기도 좋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통신업체들이 핸드폰-인터넷-IPTV를 묶어 판매하는 것처럼 일본에서 향후 새로운 결합상품이 출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통신시장은 여러 업체가 경쟁 중이고, 200여개 지역 회사가 독점구조를 갖고 있는 가스 사업도 내년 자유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자유화가 탈핵을 앞당길까?
일본의 에너지 산업은 올해 전기자유화와 내년 가스자유화를 거치면서 당분간 합종연횡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엔 다양한 업체들이 다양한 요금제를 들고 나오면서 ‘값싼 전기’를 외치겠지만, 결국 다양한 인프라와 결합상품을 가진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통합되는 것이 일반적인 전력자유화의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와 같은 전력자유화가 진행되면 ‘핵 없는 일본’은 가까워질 것인가? 이에 대해 그간 핵발전 경제성 분석과 총괄원가방식 비판을 계속해 온 오시마 겐이치 교수(리츠메이칸 대학)는 원자력자료정보실 통신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진정한 전력자유화가 진행되면) 핵발전도 다른 전원과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핵발전에 높은 정책평가를 주고, ‘사업환경정비’를 위한 법제도도 갖춰져 왜곡된 전력자유화가 이뤄진다”고 평가했다. 전력자유화가 되어도 핵발전의 폐로 비용과 손해를 지원하는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핵발전 사업자의 경영은 계속 안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완전한 자유경쟁 시장은 경제학 교과서에만 존재한다. 핵발전이 경제적이지 않더라도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핵발전은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고 계속 존재를 이어갈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일본의 전력자유화가 탈핵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그리고 결국 일본 에너지 산업은 더욱 효율적으로 움직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헌석 편집위원(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탈핵신문 2016년 5월호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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