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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한국의 핵무장?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익숙한 풍경이 있다. 바로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론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여전히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 정치인과 전문가, 그리고 언론은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한국의 핵무장 능력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면서 결단만 내리면 수 년 내 상당수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한국이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는 국제 핵비확산 체제를 뚫고 핵 문턱에 넘어서려다간 쪽박 찰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독재국가인 북한과 달리 민주국가인 한국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쉽게 말해 한국의 핵무장은 정치외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먼저 국제적 현실부터 보자.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상시 감시를 받고 있다. 몰래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려면 북한처럼 NPTIAEA를 탈퇴해야 한다. 한국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한국의 유엔 안보리 회부는 불가피해진다. ‘NPT를 탈퇴할 경우 안보리 차원에서 다룬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강력한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적으로도 커다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우라늄 금수(禁輸) 조치로 인해 농축 공장은 만들어도 곧 소용없게 된다.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재처리 공장을 짓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이 한국의 사용후핵연료의 형질 변경, 즉 재처리 시설 보유에 동의해줄 가능성도 극히 낮지만, 설사 미국이 동의해주더라도 문제가 따른다.

 

재처리 시설은 으뜸가는 위험 시설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과 환경 단체들의 반발을 야기해 입지 선정부터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다. 재처리 시설을 만들어 가동하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피격 대상이 될 수 있고, 피격 시 그 자체가 엄청난 방사능 물질을 뿜어내는 핵폭탄이 될 위험이 크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질적인 핵무장을 위해서는 핵실험이 필요하다. 과연 좁은 영토에 5천만명이 모여사는 대한민국에서 지하 핵실험장을 건설하고 실제 실험할 수 있을까?

 

안보적으로도 치명상이 불가피해진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은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신의 다른 표현이다. 기실 한·미동맹은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 포기와 미국 핵우산 제공의 교환과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면 한·미동맹의 파기까지 감수해야 한다. 과연 독자적인 핵무장이 한·미동맹과 맞바꿀 정도의 안보적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또 한 가지. 한국이 핵무장 추진에 따른 모든 난관과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북한과의 핵군비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우라늄 광산에서부터 재처리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놓고 있다. 또한 현재 20개 가까운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영변 핵시설만 가동해도 매년 7~8개의 핵무기를 추가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영토의 80% 가량이 산악 지형이고 수천개의 지하시설도 갖고 있어 2차 공격 능력에 필수적인 핵무기의 은폐 및 분산 배치도 용이하다. 이에 반해 한국은 자체적인 우라늄 광산이 없고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려면 3년 안팎은 족히 걸린다.

 

핵전쟁 시나리오에서도 남한이 훨씬 취약하다. 대도시와 거대 산업 시설뿐만 아니라 24기에 달하는 원전과 사용후핵연료 중간 저장소 등이 핵무기로 피격당하면 한국은 그야말로 아마겟돈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은 남북한이 핵에 의한 공포의 시대에 진입하면 우리에게 압도적인 공포의 불균형을 초래할 것임을 예고해준다.

 

핵무기를 갖자?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동북아 6개국 가운데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핵 강대국이고 북한도 기술적으로는 핵보유국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일본도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잠재적 핵 강대국이다. ‘왜 우리만 안 되느냐?’는 반문은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적인 핵무장은 기술적으로 그리 쉬운 것이 아니고, 정치외교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안보적으로는 자해적 조치와 다르지 않다. 핵무장은 헬조선을 우려가 아닌 현실로 만드는 첩경인 셈이다.

 

대안은 뭘까? 미국의 핵우산을 비롯한 강력하면서도 현명한 대북 억제력은 불가피하다. 이건 이미 있는 것이다. 두 가지가 추가되어야 한다. 하나는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다. 또 하나는 협상다운 협상을 해보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관계 정상화 등 근본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고 대담판을 시도해야 한다. 이것도 익숙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해본 적은 없다.

 

이 글은 필자가 <신동아> 3월호에 쓴 글을 일부 발췌해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2016년 3월호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