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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2015 탈핵평화 북미순례 방문기② ‘우라늄광산에서 폐로까지’

2015715일부터 85일까지, 3주간에 걸쳐 한국과 일본 탈핵활동가 4(‘반핵아시아행동-일본최승구, 부산고리핵발전소 주민피해소송 이진섭과 발달장애 아들 균도, ‘핵없는세상을위한한국그리스도인연대(ANCN, 이하 핵그련)’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ACNP)’ 이대수)이 핵무기와 핵발전의 종주국인 미국 서부와 동부 그리고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모두 11개 지역을 방문했다.

부산고리핵발전소 주민피해소송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핵발전소 제조사 소송등 한국과 일본, 타이완 등 아시아 탈핵운동을 소개하고, 미국 핵발전소 주변지역 방문 및 탈핵·반핵운동 단체를 만나 국제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방문을 지난 호에 이어, 지면 관계상 3회에 걸쳐 나눠 연재한다.

 

스리마일 핵발전소사고로 중단된 2호기미국, 노후핵발전소 폐로가 당면한 과제

724() LA공항에서 야간 비행기로 출발해, 25() 아침 워싱턴볼티모어 공항에 도착해 엘리오트시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고, 스리마일 핵발전소로 향했다. 19793월 최초의 대형사고로 이어진 스리마일핵발전소는 당시 두 개의 핵반응로(=원자로)가 가동중이었는데, 1975년 건설된 1호기는 가동중이었고 1979년에 가동을 시작한 2호기에서 레벨 5단계 사고(세계 3대 핵발전소 사고로, 체르노빌사고와 후쿠시마사고는 레벨 7단계 사고-편집자 주)가 났다. 스리마일핵발전소는 강 중간 모래톱 섬에 세워졌다. 미국은 핵발전소 수명이 40년이고, 10년 단위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엡슨 씨는 사고 난 2호기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가동중인 1호기에 대한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2호기는 핵연료를 꺼낸 상태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폐로작업은 경제성을 고려해 1호기 폐로와 시기를 맞춰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강을 사이에 두고 방문자센터가 있었는데, 방문 시점이 주말이라 닫혀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모니터링을 진행할 수 있는 측정 장치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지만, 왠지 어설퍼보였다. 해리스버그시에서는 사고 당시를 기록한 동판을 세워두고 있었다.

엡슨 씨를 알게 된 것은 NHK에서 제작한 <원자력대국 아메리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인데, 이후 연락이 닿았다. 다음 방문을 할 때에는 지역 주민들도 만나보자고 의견을 나눴다. 미국 핵발전소는 스리마일 사고 이후 신규핵발전소를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 수명을 다해가고 있어, 앞으로 폐로에 따른 문제에 당면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사진 설명=워싱턴 광장에서 한국전쟁 종전캠페인과 함께 탈핵평화캠페인

 

 

워싱턴에서 탈핵 평화를 외치다

726() 오후 4시 워싱턴광장 링컨기념관 근처 한국전쟁 야외전시장 잔디밭에서 들꽃교회 야외예배에 참석했다. 곧 이어진 한국전쟁 종전(終戰) 촉구 캠페인에 동참해 지지와 연대 연설을 간략히 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서명도 받고 설명을 하기도 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멈춰서 구호를 들으며 동의를 표해주어 힘이 되기도 했다. ‘미주희망연대를 비롯한 단체들이 공동으로 개최한 행사였다. 참석한 미국의 NGO ‘ANSWER Coalition’에서 연대사를 해 주었고, 작년에 SF에서 방문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에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마치고 버지니아주의 페어팩스시 사무실로 이동해 저녁식사를 겸해 좀 더 대화시간을 가졌다.

27()에는 미국연합감리교회 본부를 방문해 평화정의위원회 담당책임자인 마크 해리슨 씨를 만났다. 방문 취지를 설명하고, 미국교회와 미국의 책임을 촉구했더니 핵무기에 관해서는 당연한 주장이라며 공감하는데, 핵발전과 관련해서는 어려움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미국교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핵그련과의 탈핵관련 공동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눴다.

 

 

사진 설명=스리마일 핵발전소와 사고를 알리는 역사표지판

 

사진 설명=캐나다 핵물리학자이자 탈핵활동가인 고든 박사 집에서 

 

뉴욕에서 일본인들과 함께한 집회와 발표회

뉴욕에서의 집회는 샌프란시스코의 탈핵책임이라는 단체의 스티브 씨가 중간에 노력해주었고, 요시히로 씨를 비롯해 일본인 커뮤니티에서 나서서 성사되었다. 타임스퀘어 근처 전시공간 겸 회의실에서 시작된 발표회에는 뉴욕지역의 일본 활동가 등이 참여하였고 한국인들과 연대활동을 해 오고 있는 평화활동가 아유미 씨도 만났다. 인디언포인트핵발전소 폐쇄운동에도 참가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탈핵영화를 준비중인 인도 감독의 지인인 요시오 씨도 있어, 예정된 한국방문에 관해 의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락은 되었지만, 일정이 엇갈려 방문하지 못했던 탈핵단체 핵넘어(beyondnuclear.org)’도 알고 있어, 평화운동 차원에서 한··일간의 직·간접적 소통이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통역자원봉사를 해 주시고 마지막 기차로 돌아간 나경환 씨, 핵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류영철 목사 등 귀한 참석자 덕분에 좋은 모임이 가능했다. 발표회 전 사전 모임과 마친 후 후속 티타임까지 모두 소중했다.

다음날에는 미주기독교방송국에 함께 출연해 이번 방문목적과 탈핵활동을 소개하는 기회도 가졌다. 뉴욕안내를 맡아준 문헬렌 씨 덕분이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기념사업회 뉴욕지회라는 동판을 붙여둔 보수적인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탈핵평화순례를 다뤄준 것이 고마웠다.

 

캐나다 탈핵운동을 만나다우라늄광산 문제가 주요 이슈

뉴욕에서 열차로 출발해 달리다가 허드슨강변의 인디언포인트핵발전소를 볼 수 있었다. 지난 5월 변압기 폭발사고로 1기가 가동 중단되었던 적이 있어, 6월 방문 때 강변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던 터라 함께한 분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었다. 11시간을 달리면서 호수 등 아름다움 풍경에 살짝 취해보기도 하다, 국경을 넘어 캐나다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캐나다핵책임연맹의 대표인 고던 에드워즈 박사의 집은 다행히 숙소 근처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난 6월 첫 방문에서 재방문 약속을 해 두었기 때문에, 이진섭 씨가 함께 방문해 것을 계기로 고리핵발전소 소송 일부승소 축하 건배도 함께 했다. 고던 박사는 핵물리학자로서 캐나다 탈핵운동의 대표적인 활동가이기도 하다. ‘핵발전소 제조사 소송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었고, 10개 지역에서 우라늄광산 모라토리움(지불유예 혹은 참여유예-편집자 주) 선언에 참여했다는 소식도 전해 주었다.

캐나다의 북부 사투-텐에서 채굴된 우라늄이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탄에 사용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주민들이 1991년 일본을 방문해 사과한 역사가 있을 정도로, 캐나다에서는 우라늄광산 문제가 주요 이슈였다. 핵사진 작가 길버트 씨도 도착해 수십년간 현장을 다니며 찍은 사진집을 소개해줘, 북미지역의 핵(무기와 발전)개발과 반대운동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고던 박사는 탈핵운동 관련 국제적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충분이 공감하고 있었다. 포항M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핵발전의 문제점을 지적해 준 점과 더불어 핵물리학자로서 정부와 기업 편에서 일한 적이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부럽기도 했다.

 

다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지막 보고회

마지막 일정으로, 83() 오후 버클리서부도서관에서 다시 NNA(반핵아시아액션)에서 준비한 보고회를 가졌다. 1부에서는 히로시마 핵폭탄 투하 피해와 전쟁을 반대하는 인터뷰가 담긴 영상을 상영했고, 이어 3주간의 북미지역 방문에 관한 사진 등을 소개했다. 미처 연결되지 못한 뉴멕시코의 우라늄광산 지대와 관계하고 있는 리퐁 씨가 참석해 뒤늦게나마 연결이 되었다. 두 자녀와 함께 참석한 남인숙 씨를 비롯해 관심있는 재미동포가 참석해줘 반가웠는데, 이들은 세월호 사고를 통해 활동에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연결해준 스티브 씨와 샌프란시스코 체류기간 중 숙소를 제공해 준 치주 하마다씨와 안내 등을 해 준 김사라 씨께도 감사를 전했다.

저녁에는 숙소인 유스호스텔로 찾아와준 중국계 역사NGO‘GA’의 이그나시우스 딩을 만나 샌프란시스코와 미국 서부 그리고 국제적 화교네트워크를 통한 활동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철도와 금문교건설, 댐 등을 비롯해 대규모 중국 노동력이 유입된 것을 배경으로 형성된 북가주지역의 화교사회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탈핵과 관련해 타이완에서의 성과 그리고 중국에서 건설중인 핵발전소의 문제점 등에 관해 조금이라도 의논한 것이 마지막 일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도착하던 곳이자, 하와이농장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본토로 이전하는 기착지였다. 또한 대한제국의 친일 외교고문 스티븐스가 저격당한 곳이며, 2차 세계대전 후 유엔이 창설된 곳이다. 그리고, 오늘의 역사갈등과 영토문제 등을 배태하고 있는 동아시아 질서의 틀인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근간이 된 1951년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협약이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탈핵신문 2015년11월호

이대수(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