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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파리기후변화총회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11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기본협약당사국총회(UNFCCC COP21)가 열린다. 매년 열리는 기후총회이지만 이번 총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교토의정서 2차 공약기간(2013~2020)이 사실상 국제온실레짐의 무정부 상태로 전락하는 바람에 현재는 의지가 있는 국가만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행동을 하고 있다. 때문에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빨간불이 켜졌다. 교토의정서 1차 공약기간(2008~2012)의 후속 기후체제가 이렇게 엉망이 된 바람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2020, 즉 신기후체제가 더욱 중요해졌다.

 

기후변화는 주요 국제회의 핵심 의제

이런 이유에서 기후변화는 올 한해 G20 등 주요 국제회의에서 핵심적인 의제로 다뤄졌다. 그만큼 국제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고, 더 이상 때를 놓칠 수 없다는 절실함이 묻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파리 총회에서 중요한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정의와 에너지정의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기후총회라는 국제적 논의 틀과 이번 파리 총회를 보는 눈은 곱지만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때에 따라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가 총회에 참석하지만, 기본적으로 장관급 회의다. 하지만 다른 많은 국제회의도 그렇지만, 정치인과 관료만의 행사가 아니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수많은 행위자들이 총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양한 엔지오가 열성적으로 활동하지만 자본의 힘에 한참 모자라다. 다국적기업의 후원을 무시할 수 없다. 파리 총회 후원사에 항공사 Air France, 핵과 석탄발전사 EDF, 에너지 사업자 Engie, 석탄 관련 금융권 BNP Paribas이 속해 있다. 물론 재생가능에너지나 친환경 기업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핵과 화석연료에 상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본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들은 주요 의사결정에 로비를 펼치고 언론 기획과 부대 행사를 통해 총회에 참여하는 정부 각료와 비정부 기구의 활동가들을 포섭하려 노력한다. 이런 탓에 시장 이데올로기가 기후총회에 깊숙하게 침투하였고, 기후협상은 이제 투자기회를 잡는 무역박람회와 같아졌다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다.

 

기후총회를 에워싸고 있는 국제 핵발전 카르텔

핵발전 역시 기후총회에 은밀하지만 강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핵발전은 총회의 공식 의제가 아니다. 하지만 일본 등 몇몇 국가와 핵발전 기업들의 시도는 계속되었다. 예컨대 일본은 2007년 발리 총회와 2008년 포즈난 총회에서 핵발전을 청정개발체제(CDM)로 인정할 것을 제안했으나, 거부당한 바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과거처럼 총회장에서 대놓고 핵발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측면 지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도 보고서를 통해 핵발전을 기후대응 방안으로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른 국제기구인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후총회를 겨냥해서 2030년과 2040년까지 전 세계 핵발전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국제 핵발전 카르텔은 기후총회를 에워싸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는 나라들도 있지만, 적지 않는 나라들이 핵발전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후총회는 일차적으로 온실가스를 다룬다. 이 온실가스 배출 대부분은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기인한다. 특히 석탄화력발전을 문제로 삼기 때문에, 점차 석탄화력발전은 퇴출되고 있는 추세다. 이를 대체하는 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설정하기도 하지만, 한국과 영국, 동유럽과 중동과 아시아의 개도국 일부는 재생가능에너지 못지않게 핵발전을 유지·확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기후변화를 핑계로 내세웠던 ‘원자력 르네상스’가 그 허상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산업화 이전 지구평균 온도 기준, 2도 상승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신기후체제의 앞날을 낙관만 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각 국가가 제출한 자발적 감축목표(INDC)를 취합한 결과, 1.5도는 커녕 2도 상승 제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크게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교토체제와 달리 감축목표를 국가가 자체적으로 설정하게 만든 제도 변화의 부작용이 바로 나타난 것이다. 이대로라면 최소 2.7도 상승은 면할 수 없고, 3도 이상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다. 파리 합의문(Paris Agreement)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그 합의문이 법적 구속력이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기후변화의 진정한 해결책과 탈핵 에너지 전환의 희망은 총회장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기대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탈핵신문 2015년 12월호 (제37호)

이정필(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