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내 조명이 꺼진다. 어두운 극장 안, 스크린에 비친 화면도 어둡다. 밀양 할매와 아지매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산길을 오른다. 그리고 경찰들이 놓고 간, 추위에 꽁꽁 언 수박을 깨먹으며 “참 달다”고 웃고, 공사하는 포크레인 위에는 락카로 ‘도독놈’이나 ‘성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맞춤법은 나몰라, 소리 나는 대로 휘갈긴다. 소박한 웃음을 자아내며 영화는 시작된다.
7월 16일에 정식 개봉한 <밀양 아리랑>, 밀양 현지서 2년 반에 걸쳐 촬영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지난했던 밀양 송전탑투쟁의 살아있는 기록물이다. 평화로운 밀양의 산골 마을, 그 평화로움을 깨는 765kV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
“전봇대 들어온다고 이야기 하더라고. 근데 별로 관심이 없었지예. 농사짓기 바빠가지고.”
“내가 가꾸고 있는 곡식들이 내한테는 너무 소중한 거예요. 그래서 나는 더 이곳을 지키고 싶은지 모르지요.”
영화는 평범한 농사꾼 아낙들이 어쩌다 운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절절히 보여준다. 고향에 들어선다는 초고압 송전탑. 산골 마을 경관에도 어울리지 않는, 보기에도 흉한 철탑. 높은 전자파의 인체 유해성, 땅값 하락, 건설 소음…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은 주민들은 투쟁한다.
송전탑을 반대한 것이 죄가 되어 집회시위법 위반, 업무방해 등 온갖 죄명으로 구속되는 주민들, 공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힘없는 노인들에게 무참히 자행되는 경찰의 폭력, 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수용하지 않는 한전. 건강권, 재산권, 인권, 민주주의적 가치 수호… 의제는 점차 확장된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 온갖 험한 꼴을 마주하며 밀양의 산골 마을 단위에서 시작된 싸움은 더 이상 밀양만의 싸움이 아니게 되었다.
송전탑을 반대하던 유한숙 할아버지의 음독자살 사건을 비롯해 슬프고 무거운 화제를 담으면서도 영화는 엄숙함에 치우치지 않는다. 식지 않는 운동의 열기와 희망의 싹을 할매 할배의 흥과 천진함을 통해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할매 할배들이 투쟁 움막 안에 둘러앉아 즐겁게 수다를 떨며 밥을 나누어 먹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 곧 닥칠 6월 11일 ‘행정대집행’ 때의 음성이 오버랩 된다. 영화는 충돌 장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다루면서 송전탑 싸움이 오로지 충돌 상황으로서만 이미지화되지 않도록 조절한다. 그러면서 장면과 소리의 역설을 통해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지난해 행정대집행이 일어나고 꼬박 1년이 흘렀다. 혹자들은 말한다. ‘이미 송전탑 거 다 지어진 거 아니냐’ 또는 ‘끝난 싸움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할매 할배들은 말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러워서라도 이 싸움은 계속할 것”이라고. 경찰과 대치한 상황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을 비롯해 어려움 속에서도 흥을 통해 운동에 활력을 얻는 밀양 할매 할배들의 모습이 참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할매 할배들은 지치지 않는다. 송전탑을 ‘짓지 말자’에서 이제는 ‘뽑아내자’로, 새로운 투쟁을 이어간다.
이연희(환경운동연합 탈핵 담당 활동가)
2015년 8월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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