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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준비2호] 아! 핵발전소만 없었다면… 후쿠시마 방문기


아! 핵발전소만 없었다면…

후쿠시마 방문기



김복녀 (에너지정의행동 국제협력담당)


 


작년 3월 12일부터 6월 9일까지 우유를 버리는 장면. 4월 말에 낙농가 전원이 모여 폐농 결정을 했다.



 요코하마 ‘탈핵세계회의’에 통역 등의 일로 참가한 나는 특히 폐회식에서 한 배우가 발언한 “단계적 탈핵이란 표현은 협잡이다, 요즘 같은 지진 활동기에 무슨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나, 즉각 핵발전소를 멈춰야 한다”는 말에 감동먹었다. 평소 ‘단계적 폐쇄’란 말에, 조금은 주눅 들고 불편했는데, 이 발언이 얼마나 반갑고 통쾌했는지….

 이번 회의와 별도로, 주최 측은 해외 참가자들을 위해 1박2일 후쿠시마 방문 기회를 마련해주었는데, 나도 그 방문 버스
를 타게 되었다.


 버스 안, 방사선 계측기 알람은 연이어 울리고…

 후쿠시마시에서 피난구역 경계 지점인 미나미소마시로 가는 도 중 이이다테면을 달리는 국도를 탔다. 이이다테면은 핵발전소 북서방향 30~45킬로미터에 걸쳐있는 지역이지만, 20킬로미터 경계구역 보다 방사능 오염이 심각해 피난권고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 국도를 지날 때는 버스 안인데도 꽤 높은 방사선량(시간당 2마이크로시버트)이 계측되었다. 한 한국참가자는 얼
마로 설정해 두었는지, 시도때도없이 방사선 계측기 알람이 울려, 옆 사람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럼 밖은 얼마나 높을까….


아! 핵발전소만 없었다면…

 “핵발전소만 없었다면”, 한 낙농가가 자살 직전 남긴 유서 제목이다. 이이다테면은 다른 농어촌지역에서 모델로 삼을 만큼, 활력 넘치는 곳이었다고 한다. 면 단위에서 육성한 검은 소 ‘이이다테 와규(和牛)’ 브랜드가 유명해져 낙농가나 농업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정착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핵사고가 이이다테면의 모든 걸 앗아가 버렸다. 일본정부는 주거지는 2년간, 농지는 5년간, 산간지역은 20년 동안 방사능 제거작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20년 이후에 귀향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 방침 잘 따르던 이장의 변신

 “더 이상 살 기력을 잃은 나는 죽어 미안하지만, 친구들은 끝까지 핵발전과 싸우라”라는 낙농가 친구의 유서를 접하며,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는 이이다테면 마에다 마을 하세가와 이장(현재 마을사람들과 이다츠시임시가설 주택에 거주 중)은, 이젠 일본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이재민 실상을 알리는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하세가와 이장(왼쪽)이 후쿠시마 방문자들 에게 지역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하세가와 이장은 핵발전소 폭발 소식을 듣고 방사선 측정소를 찾았다가,‘ 면장 지시로 실제 수치를 숨겨야 한다’는 요청을
듣게 되고, 언론에 발표되는 수치도 엄청나게 낮춰 발표되는 현실, 국제원자력지구조차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지역인데 관계당국에선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과정에 분노하며, 사람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국책으로 추진하던 핵발전 정책이니만큼 사고대책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않아 이장으로서 무엇보다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고 했다.


 ‘부흥청’ 신설했지만…

 ‘너무 늦은 발족’ 등의 비판을 받으며, 동일본 대지진 이후 11개월만에 정부는 ‘부흥청’을 내각에 신설했고,‘ 특별구역법’과‘ 교부금제도’를 만들어 과감하게 복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일본 전체 1년 쓰레기 발생량의 절반인 2260만톤이나 되는 쓰레기를 당장 받아줄 곳이 없다.

 비록 동정은 하지만, 방사성 물질이 섞인 걸 받아 주기엔 핵쓰레기가 너무 무서워 지역주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이다테면은 지진피해와 쓰나미 피해는 미미했다고 한다. 핵발전소 폭발만 없었다면 잘 살고 있을텐데, 이젠 그야말로 ‘유령마을’이 되었다. 어떤 이재민은 이제 정부 말은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렇듯 핵발전소 사고는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마을에 회복불가능한 치명타를 안겼다. 일본전체가 휘청거리고 있으며, 지구 단위의 오염으로 전세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국내외에 핵발전소를 세우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대로 가다간 외국에서 ‘한국의 핵마피아만 없었다면…’이라는 한탄과 원망섞인 편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이 땅에서도 ‘핵발전소만 없었다면…’이라고 절망하며, 저항 끝에 분신한 밀양의 어르신도 있다. 우리는 언제쯤 그들의 절박함이 남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