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후쿠시마

[준비2호] 일본 반핵운동의 현장에서




일본 반핵운동의 현장에서

작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반핵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중에서 일본 핵발전 정책의 핵심이자 이번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 앞에서 텐트농성과 시위를 이어가는 이들을, 지난 2월초 현지를 방문해 직접 취재,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고노 다이스케 준비위원>






핵발전소 폐로하라!

 

 

 

도쿄 경제산업성 앞 농성투쟁

 일본 핵발전 정책을 좌우하는 경제산업성(이하 경산성) 앞에서 지난해 가을부터 농성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텐트는 두 개. 농성의 목적은 핵발전소 재가동 저지(=폐로), 피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배상, 핵발전소 수출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작년 9·11, 단식투쟁과 함께 시작

 지난해 9월 11일, 1500명 내외의 시민들이 경산성을 포위하는 시위가 있었다. 같은 날 야마구치현(시모노세키가 위치한현. 혼슈의 가장 서쪽에 위치)가미노세키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경산성 앞에서 10일간 예정으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그 투쟁에 연대해서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9조 개헌 저지모임’이 텐트를 설치했다. 10월 말, 후쿠시마 여성들 100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일주일 가량 경산성 포위 시위를 벌였고, 약4000명이 참여했다. 그 이후, 새로 온 사람들이 주력이 됐다.

 처음에 여성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0월말 후쿠시마 여성들이 왔을 때부터 여성용 제2텐트를 설치했다. 연말연시에는 전골 등 요리도 나누고 연회도 하고, 음악회 등 큰 교류행사를 벌였고, 1000명이 참여했다.

 이 4개월 동안에 약 1만5000명 이상이 이 투쟁에 참여했다. 포위시위를 벌일 때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훨씬 많은데, 남성이 30명일 때 여성은 300~400명 정도가 참여한다. 여성들은 지난 12월 1일부터 ‘미래를 임신하는 여자들의 열달 열흘 텐트 광장 행동’이라 이름지은 연속 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성 1주년이 될 올해 9월 1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경제산업장관의 철거 명령

 경찰은 처음 3일 동안 뭔가 개입하려는 듯 했으나, 경산성과 직접 협상에 들어가자 큰 행사만 살피러 온다고 한다.

 에다노 경제산업장관이 1월 24일, 1월 27일 오후 5시까지 2차례 텐트를 철거하라고 통고했다. 근거는 시설관리규칙이지 법률이 아니다. 당일 그 시간에 항의행동으로 750명이 모였다. 이후 날마다 적어도 한 번씩 철거하라고 말하러 온다.

 농성 시작 당시부터 텐트 사람들과 경산성은 부지를 ‘빌려달라’‘ 안 된다’라는 말을 계속 주고받았다. 9월 29일에 결국 경산성이 빌려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농성단은 경산성에 재심사를 청구하고 있다.





핵발전소 폐쇄!
도쿄전력 해체!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지속적으로 ‘도쿄전력 앞 행동’이 진행되고 있다. 2월 3일 ‘도쿄전력 앞 행동’에는 약 90명의 시민들이 후쿠시마 사태에 대해 도쿄전력의 자산 매각을 통한 배상, 전기요금 인상 반대, 핵발전소 폐쇄, 도쿄전력 해체를 요구했다.

 도쿄전력 앞 ‘행동’을 마친 참가자들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간사이전력 도쿄지사 앞으로 이동해 정기 점검 중인‘ 오이핵발전소 3,4호기 재가동 중지’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방사능과 오염에 지쳐 버린 사람들

<인터뷰> 경산성 앞 텐트 사무국 다카하시 유키코 씨

 


 10월 말에 설치된 여성전용제2텐트에서, 제1텐트 설치 당시부터 참여하며 사무국을 맡고 있는 다카하시 유키코 씨에게 최근 후쿠시마 상황, 피난을 지원하는 시민운동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카하시 씨는 후쿠시마시(핵발전소에서 약60km) 출신으로, 지금도 부모님은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금도 부모님은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살고 계신다. 이와키시는 후쿠시마현 내에서 비교적 방사선량이 낮은 지역이지
만,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가까 운 편이다(40~50km권). 걱정이 되지만, 직업도 있고 본인들은 50대니까 괜찮다고 생
각하신다.

 특히 아버지는 비를 맞고 집에 올 때도 있을 정도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바람이 핵발전소 쪽에서 불어올 때에는 창문을 열지 않는다든가 약간 신경을 쓰는 듯하다. 지난 10월 내가 집에 갔을 때, 식탁에 후쿠시마현산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가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


 친구들은 어떻게 생활하나?

 지금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가 되었다. 후쿠시마시에 사는 한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
이“ 신경 쓰고 있었어?”라고 반응해, 동생에게만 이야기한다고 한다. 마스크도 본인은 쓰는데 남에게 권하기가 어렵다더라.

 그 친구는 만나면 방사능 이야기만 한다. 방사선계측기도 갖고 다니고. 후쿠시마시 전체가 공간선량이 높은 편인데, 친구의 직장은 특히 높은 와타리 지구에 있어, 출근하면 계측기가 계속 삑삑거린다.

 가장 지칠 때는 마트에 갔을 때다. 거의 후쿠시마산이다.‘ 어떻게 안전한 식재료를 살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지
쳐 버린다. 일반 마트는 국가가 정한 잠정기준치인 500베크렐/kg 미만을 따르고 있다. 499베크렐/kg이면 팔아도 된다는 뜻 이다. 가능한 한 동쪽지방 것을 피하고 싶지만, 서쪽지방 것은 양도 적고 비싸서 매일 살 수가 없다. 특히 잎채소가 그렇다. 그래서 탄수화물만 먹고 있다. 쌀은 재작년 것을 골라 먹을 수 있으니까.


 핵발전소에서 오염수가 많이 흘러 나왔다고 하던데, 생선은 안전한가?

 그 친구는 피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후쿠시마에서 어업이 재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키시의 경우, 쓰나미 피
해를 입었는데 아직도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내가 아는 해산물전문시장이 11월에 영업을 재개했다. 이전에는 앞바다에서 잡은 굴이나 성게 등을 직판했던 곳이다. 지금은 어디서 가져오는지 모른다.


 후쿠시마는 어떤 분위기인가?

 10월에 후쿠시마에 가보니 한쪽에서 마스크와 비옷 같은 작업복 차림으로 완전무장하고 방사능 제거작업을 하는데, 그 길 맞은편에서는 중학생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가고 있었다. 가을 축제 때, 포장마차들이 거리를 채우고 고선량 속에서,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밖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대부분 마스크도 쓰지 않고. 후쿠시마 사람들 말에 의하면 후쿠시마시에서도 여름까지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 정신적으로 지쳐 버렸다고 한다. 후쿠시마 학교 운동장에는 구석에 비닐덮개를 씌운 흙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다. 운동장의 오염된 표토를 걷어낸 것인데 어디 가져갈 곳이 없다.


 어떤 단체들이 어떤 지원활동을 하고 있나?

 ‘지구의 벗 일본’과‘ 후쿠시마 노후원전을 생각하는 모임(후쿠로 모임)’이 피난할 권리를 주장하며 사고 직후부터 활동하고 있다. 자주피난(피난구역 이외의 지역에서 피난한 경우)의 경우 지원이 없어, 날마다 생활비가 많이 든다. 이 두 단체는 8월부터 도쿄전력에게,‘ 이번 사고는 인재인 만큼 도쿄전력에 배상책임이 있으니, 정부 대응을 기다리지 말고 배상하라’고 협상에서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후쿠시마현이나 후쿠시마시는 피난을 고려하지도 않고 방사능 제거만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고 복구할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후쿠시마 시내 거리에는 ‘힘내자 후쿠시마’ 등의 구호가 넘쳐나고 있다.

 행정의 대응을 기다리고 있으면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켜낼 수 없다. 그래서 이 두 단체는 후쿠시마 시내에서 비
교적 선량이 높지 않은 쓰치유 온천에 와타리 지구 아이들을 한시적으로 피난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그 운영자금 기부를 호소하고 있다.

 2월 11일과 12일에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으로부터 생명을지키는 전국회의>가 열린다. 지금 전국에 후쿠시마 사람들이
피난 가 있다. 개인적인 연줄을 찾아서 피난한 경우도 있지만 홋카이도와 오키나와현 등은 공영주택을 2년간 무료로 대여
해서 피난민들을 받아들이고있다. 그리고 장기 및 단기 피난을 지원하는 민간단체들이 전국 각지에 있다. 그러한 단체들
이 모이는 자리가 이번 전국회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