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한 핵발전소 주변지역 반핵운동, 그 역사부터 제대로 알아가야
‘멈춰라 센다이 핵발전소! 8·31 큐슈·가고시마 센다이 행동’ 참가기
다카노 사토시(반핵아시아액션 한국 사무국)
계속되는 아베 정권의 핵발전소 재가동 시도
현재 일본 핵발전소 48기는 모두 멈춰 있지만 아베 정권은 핵발전소 정지로 인해 화력발전소 가동률 상승과 그에 따른 연료구입비 증대 때문에 국부(国富)가 유실되고 있다며, 핵발전소 재가동을 도모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10일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가 센다이 핵발전소1·2호기가 신 규제기준에 적합하다는 심사서를 정식으로 결정했고, 그 직후 일본 경제산업성이 재가동을 명기한 문서를 가고시마 현지사와 사쓰마센다이 시장에게 교부했다. 추가 서류 제출과 지자체 동의 등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재가동은 빨라도 내년 초가 될 전망이지만 정부 재가동 의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본시민들, 전국각지에서 재가동 반대집회로 맞서
이런 다급한 일본정부의 태도에 대해, 일본시민들은 규슈를 비롯해 전국각지에서 반대집회와 행진 등을 진행해왔다. 8월 31일에는 가고시마현 사쓰마센다이시 센다이역 광장에서 개최된 ‘멈춰라 센다이 핵발전소! 8·31 큐슈·가고시마 센다이 행동’은 대만과 한국에서 참가자가 있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 노태민 공동집행위원은 “정부는 진실을 숨기려 하고 진실을 밝히려면 공권력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시민들을 억압합니다. 이런 핵마피아들에 맞서 탈핵을 위한 희망을 얻기 위해 센다이 시민과 전세계 시민들이 다 함께 연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저희들도 여러분들의 싸움에 함께 하겠습니다”라며 연대 인사를 했다.
또한 집회 현장과 센다이핵발전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반대주민들과의 교류 시간도 있었다. 필자는 센다이 핵발전소 건설 당시부터 반대운동을 해온 후쿠시마 현에 거주하는 시미즈 미츠루(清水満)씨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주요 이야기는 정부 등 권력자의 이간질과 반대파 탄압에 시달려온 센다이 주민의 고통을 대변한 것이었다. 물론 그 이야기는 센다이지역에 관한 것이지만 핵발전소 주변지역 공통의 비극적인 요소도 많다고 느껴, 필자는 한국 핵발전소 주변지역의 고통을 상상하는 데 일조하리라는 생각에 여기서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오랜 기간, 주변지역 지배계층·공권력의 조직적 왕따 전략
1970년대에 핵발전소 건설계획이 발각되고 당시 반대운동은 고양되었다. 그 중심을 맡은 사람들이 센다이핵발전소반대현지청년부(이하 ‘청년부’)였다. 그러나 청년부에 회원에 대한 왕따는 무시무시했다. 청년부장이 일하는 직장에 경찰이 전화를 걸어 상사에게 반대운동을 그만두게 하라고 몇 번이나 요구했다. 청년부장은 결국 직장을 세 번 바꿨지만, 모든 직장에서 같은 왕따를 당하여 사쓰마센다이시를 떠나야 했다.
크레인차 회사에 일하고 있던 반대주민에 대해서는, 그가 속한 노조의 위원장에게 지역 권력자 등이 전화를 걸어 그를 자르지 않으면 핵발전소 건설 때 사용할 크레인차 계약을 철회한다고 위협했다. 결국 그 반대주민은 회사를 그만두고, 참치 어선 선원이 되었다.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반대주민은 반핵집회에 나온 모습을 경찰이 보고 상사에게 연락해, 상사는 그 반대주민을 지방으로 전근시켰다. 그 외의 반대 주민들도 반핵 입장이 발각되면 경찰이나 지역 권력자가 근거없는 나쁜 소문을 내어 인격을 폄하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리고 공청회에서는 찬핵파인 현지 상공회와 토건업체가 외부 사람을 동원시켜, 결국 70%가 핵발전소를 찬성하는 것으로 공청회를 끝낸 적도 있었다.
결국 반대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현지를 떠나고, 일부가 반대하던 어업협회와 농업협회도 찬성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현지 탈핵운동은 쇠퇴하고, 센다이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맡은 사람은 외부사람이 되고 말았다. 실제 이번 반대행동도 참가자 1800명으로, 현지에서 열린 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지만 현지 주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지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손을 붙잡아야
한편, 시미즈 씨에게 좋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청년부와 함께 반대운동을 중심적으로 맡았던 사쓰마센다이시에서 약 50km 떨어진 고시키지마(甑島) 개척농민의 이야기다. 섬에서 소작농으로 차별을 받아온 개척농민은, 농협이 찬성으로 옮겼지만 끝까지 반대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유한 산지에는 응달나리꽃(일본 야생 백합-편집자주)이 많이 피었다고 한다. 활짝 피는 계절이 되면 먼 거리에서도 산에 응달나리꽃이 피고 있는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그 광경은 반대주민들에게 용기를 줬다고 한다. “우리 산에 살고 있는 개척농민들이 핵발전소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응달니라꽃으로 호소하고 있었던 게 아니냐고 시미즈 씨는 말했다.
한국도 일본도 핵발전소 주변지역의 반대운동이 약한 곳이 많다. 그러나 외부에 사는 사람이 그것을 한탄해서는 안 된다. 현지 반대운동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그 중에서도 아름답고 훌륭한 싸움을 한 분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큰 소리로 외치지 않더라도 억울함과 슬픔을 겪어온 현지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이 받아온 마음의 상처와 그 아픔에 대한 상상력을 높이면서 손을 붙잡는 것이, 핵발전소 밖에 살면서 그 전기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자세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발행일 : 20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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