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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지역출신. 핵발전소 부정 못하는 복잡한 심정

핵발전소 부정 못하는 복잡한 심정

핵발전소 지역출신그러나, 재가동에는 절대 안전 확보돼야

 

니이쓰마 히데아키(전 후쿠시마제1핵발전소 노동자)

 

 

니이쓰마 씨는 후쿠시마제1핵발전소에서 20km권내 현재 피난지시해제준비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후쿠시마현 나라하마치 출신의 핵발전소 노동자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근처에 핵발전소가 있었고,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주변 친구들도 많았으며 자신도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한 그의 이야기에선 찬반으로 쉽게 풀 수 없는 핵발전소에 대한 지역주민의 복잡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일하게 된 계기지역에선, 꽤 좋은 직장

내가 일하던 회사는 4차 하청으로 일당은 17천엔(17만원) 정도. 지역에선 꽤 좋은 편이다. 핵발전소는 큰 회사라 지역에선 거기서 일하는 것이 자랑이었다. 중간착취가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노동문제에도 관심이 없었다. 지역 친구들도 거의 반 정도는 핵발전소 관련된 일을 했다.

 

장비 장착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비교적 나은 현장

2008년부터 2011311일까지 후쿠시마제1핵발전소와 제2핵발전소 모두 갔지만, 주로 제1핵발전소에서 일했다. 처음 3개월 정도는 재순환펌프의 디젤원동기 점검 및 정비 사용이 끝난 제어봉을 보관하는 수조에서 제어봉을 절단하는 장치 정비를 했다.

은 오염(방사성물질 먼지 등)과 방사선이 없는 구역으로 장비는 A 또는 B-1복이었다(핵발전소 내부는 오염도와 방사선량에 따라 A구역에서 D구역까지 나눠있고, 구역마다 입어야 하는 작업복이 구별되며, 각 구역 입구에 작업복이 비치된 탈의실이 설치되어 있다).

는 오염과 선량이 꽤 높아 C복을 입고 작업한다. C복은 양말을 두겹으로 신고 고무장갑을 두세 겹으로 끼고 타이벡 또는 아노락이라는 우비 같은 옷을 입는다. 아노락은 비닐이며 전면마스크도 써야 하기 때문에 더워서 힘들다. 호흡은 일반적인 마스크랑 차이가 없지만 익숙해지기 전에는 끈을 꽉 졸라 버려서 2시간 정도 지나면 뒤통수가 아프다. 지금 반면마스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가장 오래 했던 일은 각종 밸브 점검이다. 이것은 장소마다 오염도와 선량이 다르다. 눈으로 직접 점검하고 사진을 찍고 문제가 있으면 보고서를 작성했다. 날마다 점검 장소와 개수가 달랐고 편할 땐 한 곳, 5분 만에 그 날의 업무가 끝날 경우도 있었다. 근무시간은 어디서든 실제는 오전 1~2시간, 오후 2시간 정도였다.

방사선관리구역에서 나올 때는 서베이미터(방사선 검출기)와 퇴역(退域)모니터로 몸에 방사성물질이 묻지 않았는지 확인하는데, 묻어 있으면 나올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얼굴을 만져 오염이 묻어버렸는데 물로도 씻기지 않아 어떤 연고를 바르고 대처했다. 그 부위가 시뻘게져 있었다.

난 가장 선량이 높은 D구역 외에 다 가봤는데, 장비를 제대로 장착하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위험을 느낀 적도 없다. 어느 현장이 위험하니 어디가 위험했다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위험을 느낀 적이 없다는 니이쓰마 씨의 말에 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의 나스비 활동가와 오랫동안 피폭노동자를 찍어온 히구치 사진작가는 비교적 나은 현장이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3·11 이후원래대로 살수 없고, 차별 당할까봐 돌아갈 수 없다

3·11 때 핵발전소 부지 밖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지진을 겪었다. 갑자기 피난하라는데, 현실이 와닿지 않았다. 발전소 폭발 소식을 들은 것은 피난하고 나서였다. ‘뭐지, 이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가설주택에 사시고 난 혼자서 방을 얻어 산다. 남동생이 셋 있는데 다 흩어졌다. 초기엔 아버지가 타지에서 일해야 해서 내가 가장 노릇하느라 힘들었다.

내년쯤 피난지시가 풀린다는데 고향에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돌아가 봤자 원래대로 살 순 없을 테고, 나라하마치에 살고 있으면 결혼도 못 할 수 있으니까. 젊은이들은 아마도 대부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어느 기업조합에서 외부 사람들에게 피해지를 안내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견학 오는 사람 중엔 방사능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어 전달하는 어려움을 느낀다.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지 고민된다.

 

핵발전소에 찬성도 반대도 안 하지만, 후쿠시마를 교훈삼아야

난 핵발전소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내가 일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마음도 알고 현황도 대충 안다. 생업을 빼앗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가동한다면 예상외라고 하지 말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만일 사고가 일어났을 때 피난경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배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제대로 정해 놓아야 한다. 후쿠시마를 교훈 삼아,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워야 한다.

어렵겠지만 한 번 후쿠시마에 와서 현실을 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내가 안내하겠다.

 발행일 : 2014.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