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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사용후핵연료 딜레마』(김명자·김효민, 까치, 2014)

<탈핵도서 순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탈핵의 공론화

사용후핵연료 딜레마(김명자·김효민, 까치, 2014)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이 책은 그 자체로 탈핵도서는 아니며, 지은이들도 탈핵진영에 속해있다기 보다는 핵산업의 안전한 발전과 사회적 수용성 향상을 바라는 제너럴리스트에 해당한다. 지은이 중 한 사람은 김대중 정부에서 환경부 수장을 맡았던 김명자 전 장관이다. 그럼에도 사용후핵연료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논의의 물꼬를 트기에는 제법 적절한 책이다. 핵발전에 쓰고 남은, 그리하여 대략 10만년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는 핵발전의 모든 뇌관을 건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쌓여가는 사용후핵연료와 공론화위원회 출범그러나 회의적인 시선들

부안에서 경주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중·저준위 방폐장도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이지만 이제는 전국 네 곳의 핵발전소마다 쌓여가는 고준위 폐기물, 즉 사용후핵연료 처분 논의가 시급해졌다. 지난해부터 정부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지만 그 구성과 의제의 타당성을 놓고 회의적인 시선이 팽배하다.

이 책의 1장에 실린 사용후핵연료 Q&A는 대개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지나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어떤 특징을 가진 탓에 재처리와 외교 문제에 이르는 복잡한 문제들을 발생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2장에 실린 사용후핵연료 관리 해외 사례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완벽한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식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용후핵연료는 뜯어보면 볼수록 해결이 어려운 문제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3장의 상당한 지면으로 할애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전문가 원탁토론20131223일 개최된 토론의 지상 중계로,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논의가 처한 상황과 인식을 두루 보여준다. 우선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과정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영희 교수의 말처럼 사용후핵연료 처리에는 지질학적 방벽과 기술적 방벽 같은 과학적 방벽 외에도 사회적 방벽, 즉 사회적 공론화가 필수적이라는 공감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전문가말고 시민에게 맡겨봐

그러나 전문성의 신화는 여전한 장애물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정지범 연구위원은 4대강 사업에서 핵마피아에 이르기까지 드리워진 전문성의 신화를 문제제기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사리사욕 때문에 특정한 주장을 하기 보다는 그러한 과잉된 전문성의 조직 문화 속에서 스스로 맹신을 강화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미다. 이런 과잉된 전문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왜곡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대중의 합리성에 의한 보완이다.

실제로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개별 전문가들이 확신하기 어려운 온갖 불확실한 것 투성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안전정책실의 이영일 선임연구원은, 매일같이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재처리를 하고 고속로에 연결시켜서 다시 돌리겠다는 과학적 논리에 대해, 과연 그 세 가지 사이클의 물질 수지(mass balance)’를 누가 확실히 알고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니, 공론화위원회에서 당장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그 자체만 논의하는 것으로 국한시키고 에너지 믹스와 연관시키지 말라고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 많은 핵 사고가 예상치 못한 요인으로 발생했듯, 방사성 폐기물 처분에 있어서도 그런 새로운 변수들이 있다. 윤순진 교수는 예를 들어 지금 통용되는 기후변화 예측 모델 대부분에 의하면 영광 핵발전소도 잠길 가능성이 크며, 그렇다면 지질 안정성만을 요소에 투입하는 모델은 문제가 있는 것임을 지적한다.

대중의 합리성으로 보완하는 방법 역시 위원회의 참여로 충분할까? 김명자 전 장관과 함께 이 책을 쓴 김효민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원자력기구(NEA) 보고서에서 시민 참여의 여러 단계와 수준을 예시한 것을 언급한다. 시민을 참여시키지 않고 여론을 조작하는 등의 불참여가 이제는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임이 분명하며, 그 위의 단계로 정보제공’, 시민에 의한 심의가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형식적 절차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게 되며 따라서 그 위의 단계, 즉 시민에게 실질적 의사결정권을 부여하는 협력’, ‘권한의 위임’, ‘시민 통제와 같은 참여의 상위 목표들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성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대두된다고 본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지금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 대해 당장 운영상의 미비점뿐만 아니라 시야 자체의 협소함과 안일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공론의 장에서 다루어질수록 탈핵의 당위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입장의 차이를 불문하고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같이 따져볼 일이다.

 

발행일 : 201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