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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김현우의 탈핵도서순례 _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 2013, 돌베개

 

김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지은이는 후쿠시마 현에서 태어난 철학자다. 고향을 떠나 생활한지 오래되었지만 2011년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다시 고향을 찾게 만들었고, 후쿠시마가 지게 된 무거운 짐을 다시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단지 후쿠시마 사람들이 우연히 맞닥뜨린 고통이 아닌 일본 사회에 내재한 희생의 시스템이었다.

희생의 시스템은 어떤 자()의 이익이 다른 것()의 생활(생명, 건강, 일상, 재산, 존엄, 희망 등등)을 희생시켜서 산출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희생은 통상 은폐돼 있거나 공동체(국가, 국민, 사회, 기업 등등)에 대한 귀중한 희생으로 미화되고 정당화된다. 이렇게 볼 때 후쿠시마와 오키나와는 닮은꼴을 가진 일본의 희생양이다.

후쿠시마는 값싼 전기 가격으로 경제성장을 뒷받침해 온 동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3·11 이후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그 아래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핵발전에 종사해 온 그리고 수습에 동원되는 하청 노동자와 지역민들이 있었다. 피폭의 우려 속에 가슴앓이를 하고 왕따의 낙인에 노출되는 피난민들이 있었다. 이들의 희생에 대해 후쿠시마 바깥의 정치인들과 도시민들은 가끔씩 가슴 아파하고 가끔씩 미안해 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부분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오키나와는 전후 미일 동맹을 유지하는 불가피한 희생을 대표한다. 그러나 일본 국토의 0.6% 밖에 안 되는 면적에 일본 내 미군기지의 3/4이 몰려있는 오키나와는, 1995년의 미군병사 성폭행 사건처럼 뭔가 큰 일이 있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다. 새로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후텐마 기지의 외부 이전을 공약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흔들릴 안보 체제와 성가신 일들을 우려하는 일본의 기성 지배체제는 결국 정권 자체를 좌절시켰다.

지은이는 이 희생의 시스템에 너무나 많은 공범들이 연루되어 있다고 고발한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지식인들, 종교인들, 후쿠시마 안의 사람들과 밖의 사람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러한 희생 강요의 식민지주의가 무의식의 수준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국가론, 다수자 대변의 원칙 속에 소수자의 권리는 어쩔 수 없다는 민주주의론을 다시 들먹이면서 말이다. 이 폭력적인 일반론이 당연시되는 것은 핵발전과 군사 체제 자체가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며, 그 속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뿌리부터 훼손되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미군기지에 밀려난 평택과 해군기지에 짓밟힌 강정, 송전망에 유린당하고 있는 밀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희생의 시스템은 경제와 군사 지배의 폭력을 발판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모든 나라에서 공히 발견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이 강요된 희생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다짐도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준엄하게 질문을 던진다, “누가 희생당하는가. 누구를 희생시키는가. 그것을 결정할 권리를 누가 갖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국가, 국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해야 할 1할 쪽에 자신을 포함시켜도 좋다는 것을 국가 위정자들에게 승인해 준 적이 있는가(186).”

 발행일 : 2014.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