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비밀과 독재체제를 일상화한다!
로버트 융크 지금, 이필렬 옮김, <원자력 제국>, 따님, 1991
김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1991년에 한국어 초판이 나왔고 1995년 개정판이 나온 게 끝이니까, 지금 이 책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원자력국가’라는 제목의 독일어판(Der Atomstaat)이 처음 나온 게 1977년이니, 37살이나 먹은 책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놀랍도록 새롭고 생생하다.
융크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선전 문구 아래 상업적 핵발전이 시작된 지 20여년만에 독일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핵발전국에서 일어난 비슷한 상황들을 파헤치고 기록했다. 저자의 거듭되는 주장은, 핵발전이 노동자와 시민을 끊임없이 위험에 빠트리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비밀과 독재 체제를 일상화하는 ‘원자력 제국’을 만드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마치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그린 세계처럼 말이다.
핵발전이라는 위험한 거대기술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찬핵 전문가들은 관리할 수 있는 안전이라는 개념으로 대중을 호도하지만, 무엇보다 핵발전을 만들고 운용하는 인간이 ‘호모 아토미쿠스’ 같은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발전 업계와 당국은 사람들을 분류하고 감시하며 억압한다. 그럼에도, 핵발전과 동전의 양면인 핵무기를 확산하는 사람들, 핵을 테러의 수단으로 손쉽게 떠올리는 사람들을 막지 못하며, 반면에 일찍이 핵의 위험성을 깨닫고 알리려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위협하며 심지어 살해했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카렌 실크우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크우드는 미국 오클라호마의 플루토늄 공장에서 일하다, 1974년에 자동차 사고로 죽은 노동조합 활동가다. 그녀는 회사 측의 허술한 방사능 안전관리와 조작 사건 관련 자료를 ‘뉴욕타임즈’ 기자와 상급 노동조합 간부에게 알리려다 의문의 사고를 당했다. 현장의 증거물은 사라졌고, 경찰은 회사와의 관련성을 조사하기 끝내 거부했다. 실크우드 사건은 미국의 반핵운동에 기폭제가 되었다.
이 책에서 고발하는 사례들은 지금의 여러 상황들과 그대로 겹친다. 프랑스 라 아그 핵공장에서는 몇 시간이나 며칠 동안 대리 작업을 할 노동력을 조달하면서, 이 미숙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개인 방사선(피폭량) 장부의 책임을 노예 상인이나 다름없는 임시 소개업자에게 맡겼다. 야쿠자에게 소집되어 7~8 단계의 하청을 거치면서 생명의 위협 속에 노동 착취를 당하는 일본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프랑스 플라망빌 만에 들어설 핵발전소 건설에 저항하던 농부들을 중무장한 이동 방위군이 군사작전으로 진압한 장면은, 지금 밀양 산골짜기의 국가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자력 제국의 폭력은 세계 어느 곳이나 똑같은 것이다.
융크는 불안과 분노 속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플루토늄의 시대가 오면 반드시 도래할 무시무시한 상황을 공감이나 두려움도 없이 또는 흥분하지 않고 차가운 오성만 가지고 대하는 사람은 그것의 위험을 감추는 데 동참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1979년 3월 일어난 미국 쓰리마일 아일랜드 사고에 대한 의견이 후기로 추가되어 있다. 불과 2년 만에 융크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히로세 다카시가 <원전을 멈춰라>에서 했던 예언이, 후쿠시마에서 현실로 드러난 것처럼 말이다. 융크와 히로세 다카시 모두 신통한 점쟁이가 아니라, 상식과 감정에 충실한 예견을 나누고자 했을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융크는 생명의 위협과 냉대 속에서도 핵발전과 핵무기의 진실을 알리고 핵에너지의 ‘무자비한 길’ 대신, 순환적 에너지 소비 시스템의 ‘부드러운 길’이 가능하고 필수적임을 알리는 ‘대항 전문가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들이 함께 성장해왔음도 지적한다.
기술의 폭정이 이전의 무력 지배보다 더 강하긴 하지만 동시에 더 손상되기 쉬우며, 결국은 물이 돌보다 더 강할 것이라는 저자의 믿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발행일 : 20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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