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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대한민국 탈핵의 차선, 프랑스

대한민국 탈핵의 차선, 프랑스

 

진상현(경북대 행정학부)


 

 

 

< 프랑스의 핵시설. 사진출처 : http://archives-lepost.huffingtonpost.fr/article/2009/02/11/1420238_dechet-nucleaire.html >

 

2014년 월드컵에서는 유럽의 축구 강호인 독일이 우승을 차지했다. 당연히 개최국인 브라질이 가장 시샘했겠지만, 한국의 축구팬들도 4강까지 올랐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떠올리며 내심 부러워했을 것이다.

한편 한국의 탈핵운동가들이 가장 선망하는 나라도 독일이지 않나 싶다. 왜냐하면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 가장 발 빠르게 탈핵을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대안으로서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의 보급을 가장 활발히 추진하는 나라가 독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경단체의 활동가들이 독일을 방문했던 경험을 토대로 수많은 해외출장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으며, 유학생들로부터 전해지는 탈핵 전환의 동향도 시시각각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탈핵 선언과 에너지전환 중인 독일, 탈핵한국이 지향할 목표

그렇지만 필자는 독일이 탈핵 한국의 머나먼 지향점일 수는 있지만, 당장에 실현가능한 선택점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과 독일은 달라도 너무 다른 나라이기 때문이다. 첫째, 정부구조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중앙과 지방이 분리되지 않은 단일정부 조직체계인데 반해, 독일은 입법과 사법을 포함한 지방의 자율권이 보장되는 연방제 구조를 갖고 있다. 둘째, 정치구조라는 측면에서도 한국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틈새에서 녹색당이 0.5%에 불과한 양당제 구조인데 반해, 독일은 녹색당이 8~10%의 지지율로 제3당이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정당비례제와 의원내각제 구조를 갖고 있다. 셋째, 탈핵의 역사와 내공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국은 핵발전소사고를 직접 옆에서 경험한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독일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목격한 이후 30여년의 고민과 대안이 축적된 나라이다. 이런 세 가지 측면에서 독일은 한국이 지향할 목표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한국과 유사한 정치구조의 프랑스, 2년전 핵발전 축소로 방향전환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적 상황에서 필자가 추천하는 차선의 롤모델은 프랑스이다. 프랑스와 한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첫째, 핵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똑같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애착이 강한 나라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둘째,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통치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라는 구조적인 특성도 직접적인 정책모방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셋째,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프랑스는 핵발전소를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경쟁국으로 동일하게 분류되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 한국의 친핵발전 세력들이 본받아야 할 국가로 제시했던 나라라는 측면에서도 장점이 될 수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당시 프랑스는 우파 정당의 사르코지가 대통령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여러 차례의 연설을 통해서 촛불을 쓰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강변하며, 사고 때문에 핵발전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친핵발전 정책기조를 굳건히 유지함으로써 프랑스를 찬핵세력의 메카로 만들었었다. 국내에서는 원자력공학과 교수들의 추천으로 원자력 대안은 없다: 원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라는 프랑스 책이 20116월에 출간되었을 정도였다.

이처럼 찬핵세력들이 선망했던 프랑스는 정작 2년 전부터 핵발전축소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20125월에 개최된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의 올랑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친핵발전 정책기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대선 패배 이후로도 높은 정치적 지지를 받았던 사르코지는 현재 권력남용과 불법자금 때문에 전직 대통령으로는 유례없는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반면에 올랑드는 80%라는 세계 최고의 핵발전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제시함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프랑스, 핵발전 축소 국민대토론 진행에너지전환법의회 제출

게다가 한국의 고리핵발전소처럼 논란을 빚고 있는 페슨하임(Fessenheim) 핵발전소를 2016년까지 폐쇄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었다. 현재 집권 2년차인 올랑드는 동거녀와의 스캔들, 동성결혼 입양, 아프리카 말리에 대한 군사 개입 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많이 하락하기는 했지만, 핵발전 축소라는 정책기조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올랑드는 현재 핵발전 축소 공약을 체계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가고 있다. 프랑스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대통령 혼자가 아니라 국민들과 함께 논의해서 결정하는 국민대토론(etats generaux)’라는 전통을 700년째 유지하고 있다. 올랑드는 핵발전 축소와 관련해서도 국민대토론을 201211월부터 20137월까지 진행했다. 1000여회의 지역토론에 17만명이 참여한 국민대토론을 통해 취합된 1200개의 의견을 토대로 핵발전 축소를 법으로 규정한 에너지전환법(Energy Transition Law)’이 현재 의회에 제출된 상태이다. , 앞으로는 사회당이 아닌 다른 어떤 정당의 어떤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핵발전 축소라는 경향을 되돌릴 수 없도록 법적인 명문화뿐만 아니라 국민적 지지기반의 형성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적인 차선 롤모델, 핵발전 축소 과도기적인 전환국가 프랑스

그렇다고 프랑스를 탈핵국가라고 섣불리 규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플라망빌(Flamanville)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지속하겠다는 이중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프랑스는 탈핵국가가 아니라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핵발전의 위험성을 깨닫고 핵발전의 비중을 대폭적으로 축소하려는 과도기적인 상태의 전환국가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한국은 독일 같은 탈핵국가로 탈바꿈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를 앞에서 제시한 바 있다. 한국은 여전히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1번이 친핵발전계 인사로 국회의원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이고,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 여전히 핵발전 건설을 확대하겠다는 나라이다. 한국의 경제산업구조는 핵발전과 불가분의 혈연관계를 맺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은 1959년 설립된 행정조직인 원자력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국가이다. 한국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환골탈퇴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상황에서 현실적인 차선책은 현행 핵발전 비중을 대폭 줄이는 프랑스 모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6·4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작은 변화들이 프랑스만큼의 희망이나마 만들어나가길 바라는 바이다.

 

발행일 : 2014.7.28